2024년 4월 20일(토)

[미래 스테이지-①] 손가락 터치로 오가는 대화… 청각장애 운전사의 ‘고요한택시’는 오늘도 달린다

더나은미래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우리 사회 체인지메이커들을 소개하는 ‘미래 스테이지’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첫 번째 편에서는 청각장애인이 택시 운전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솔루션을 개발한 ‘코액터스’를 소개합니다.

지난 6월 ‘특별한 택시’가 서울 및 경기 남양주, 경주 등지에서 운행되기 시작했다. 겉모습은 일반택시와 똑같지만 조수석 뒷면에 태블릿이 설치돼 있다. 승객이 택시에 올라타면 태블릿에서 ‘목적지를 입력해주세요’라는 안내음성이 나온다. 승객이 태블릿을 터치해 목적지를 입력하면, 기사가 손가락으로 ‘OK’를 그려 보인다.

‘말’ 대신손가락으로 소통하는 택시 운전기사는 청각장애인이다. 지난해 동국대 재학생 송민표(25·컴퓨터공학과), 노정빈(25·컴퓨터공학과), 이준호(24·경영학과), 황하연(22·경영학과)씨는 청각장애인 택시기사가 승객들과 쉽게 소통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고요한택시를 개발했다. 덕분에 전국에 단 한 명도 없었던 청각장애인 택시기사가 현재 7명이나 생겼다.

지난 14일 코액터스 4인방을 서울 혜화동 공공그라운드에서 만났다.

지난 14일 대학로 공공그라운드에서 소셜벤처 코액터스 멤버들을 만났다. 왼쪽부터 황하연 홍보마케팅 매니저, 이준호 전략팀장, 노정빈 이사, 송민표 대표. ⓒ박민영 기자

◇손가락 터치 한 번이면 승객과 소통…장애의 벽 허무는 ‘고요한택시’

동국대 4인방은 고요한택시를 사업 모델로 지난 4월 소셜벤처 코액터스를 설립했다.

우리 네 사람은 공익활동 대학 연합 동아리인액터스동국대 지부에서 만났어요. 동아리 활동 중에 청각장애인들이 장애로 인해 직업 선택에서 많은 제약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기술이 이런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고요한택시를 기획하게 됐습니다.”(송민표 코액터스 대표)

고요한택시의 운영 원리는 간단하다. 해당 어플리케이션이 설치된 태블릿을 승객 자리 앞에 설치해 택시 기사와의 소통을 돕는다. 승객은 3가지 소통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화면에 손으로 글자를 직접 쓰거나, 자판을 눌러 입력해도 된다. 음성으로 말하는 것도 가능하다. 앱이 승객의 목소리를 인식해 텍스트화한 다음 기사에게 전달해준다. 기사는 ‘알겠습니다’, ‘요금은 얼마입니다’, ‘감사합니다’와 같이 자주 쓰이는 문구를 미리 저장해 필요할 때 태블릿으로 전달한다.

“기술 자체는 어렵지 않은데, 수요가 적고 이윤이 크지 않으니 그동안 개발되지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 이윤만 추구하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소비자들도 ‘착한 기술’, ‘착한 서비스와 제품’을 원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들 창업을 만류할 때 개의치 않고 창업에 뛰어들었죠.”(이준호 전략팀장)

택시 앞좌석 뒤에 고요한택시 솔루션이 깔린 태블릿이 설치돼 있다. ⓒ코액터스

코액터스의 전략은 통했다. 고요한택시 사업 모델로 14개의 창업 공모전을 휩쓴 것. 이 덕분에 수상 상금에 코액터스 멤버들이 돈을 보태 1억원의 종자돈을 모아 회사를 창업을 할 수 있었다. 

창업 후에는 한국농아인협회, 서울장애인일자리통합지원센터와 경기도지체장애인협회로부터 지원을 약속 받는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두 달 후 서울, 경기도 남양주, 경주 등 전국의 택시회사 5곳과 계약에도 성공했다.

노정빈 이사는 “현재 5곳의 택시회사와 계약해 7대의 청각장애인 운전기사가 택시를 운행하고 있으며 구두계약까지 합하면 총 17곳의 회사와 계약했다”면서 “지난 7월 참가한 인액터스 국내 대회에서 1등을 수상, 이달 독일에서 열린 국제 발명전시회에서도 특별상도 받았다”고 설명했다.

◇“소셜벤처 성공, 협력과 탄탄한 초기 사업모델이 관건”

‘콜렉티브 임팩트(collective impact)’*도 코액터스의 성공 비결 중 하나다. *콜렉티브 임팩트: 다양한 분야의 이해관계자가 공동의 사회적 가치를 위해 힘을 합치고 협력하는 전략

고요한택시는 ‘한국농아인협회’를 통해 청각장애인 택시기사 지원자를 지원 받고, 지자체 장애인지원기관과 택시회사에서 택시운전기사 자격시험에 필요한 정밀검사와 운전자격시험 비용을 지원 받는다. 합격자들은 코액터스와 계약한 회사에 정규직 운전기사로 고용된다.

송민표 대표는 “고요한택시는 코액터스 힘만으로 성공할 수 없었다”면서 “택시회사, 지자체, 비영리단체 등의 협력이 잘 작동한 모범 사례”라고 이야기했다.

사업 모델 자체가 사회 문제를 해결하면 할수록 돈이 벌리는 방식으로 구성된 것도 성공에 도움이 됐다. 택시회사와의 계약이 늘어 청각장애인 택시기사가 많이 채용되고 이들이 활발히 활동할수록 코액터스는 수익을 더 낼 수 있다.

노정빈 이사가 청각장애인 택시기사에게 고요한택시 솔루션 이용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코액터스

송 대표는 “많은 소셜벤처들이 비즈니스적 가치와 소셜미션을 분리해 각각 추구하려다 보니 힘이 부쳐 초기 단계에서 성숙단계로 진입하지 못하한다”면서 “초기단계부터 탄탄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수익 구조를 최대한 단순화하는 게 관건”이라고 밝혔다.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기술로 비즈니스적 가치 만들고파

지난 4월 설립된 코액터스는 서울 충무로역 폐 지하상가를 스타트업 창업공간으로 리모델링한 ‘충무창업큐브’에 사무실을 뒀다. 동국대가 사무실 월세 비용을 지원한 덕에 회사 운영에 큰돈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이들 모두 대학생 신분이기에, 학업과 회사운영을 병행하는 게 코액터스 멤버들의 요즘 고민이다.

“원래는 학교를 다니면서 회사 업무도 봤는데, 코액터스 사업이 커지면서 학교를 자주 빠지게 됐어요. 얼마 전에 학교를 휴학하고 고요한택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황하연 홍보마케팅 매니저)

다른 멤버들도 현재 휴학을 했거나 업무 때문에 학교를 거의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고요한택시에 대한 애정만큼은 변함이 없다. 송 대표와 노정빈 이사, 이준호 팀장은 졸업 후 코액터스 운영에 집중할 계획이며, 황 매니저도 코액터스 합류에 긍정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코액터스 멤버들은 “따뜻한 기술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민영 기자

송민표 대표는 “어떤 분은 지금까지 여러 가지 일을 했지만 제대로 된 대가를 받으며 돈을 벌어본 건 택시운전이 처음이라며 기뻐하셨다”면서 “고요한택시를 통해 삶이 나아진 기사님들을 보며, 우리 사업이 지속돼야 함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코액터스의 목표는 청각장애인 택시기사를 더 많이 모집하고, 이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사업 모델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후에는 청각장애인 택시만의 차별화된 서비스를 개발해 경쟁력 확보하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외부 투자는 지양할 생각이다. 송 대표는 “사업 모델을 확장하자며 투자 제의를 많이 받지만 아직 우리 힘으로 발전시키고 싶다”면서 “자생력과 안정성이 부족한 상태에서 외부 투자를 많이 받으면 외부 목소리에 좌지우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따뜻한 기술로 세상을 바꾸는 기업이라는 미션을 가지고 시작했어요. 지금은 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하지만 장애, 여성, 노인, 아동 등 보다 다양한 대상과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모델을 만들 계획입니다. 그래서 소셜벤처 창업을 꿈꾸는 여러 대학생들에게 길을 비춰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송민표 대표)

 

[박민영 더나은미래 기자 bad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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