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못 믿을 ‘어린이집 평가인증제’ 실효성 없이 교사 업무만 가중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최근 마무리된 올해 국감에서 ‘어린이집 평가인증 제도’의 실효성 문제가 지적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평가인증에서 95점 이상을 받은 어린이집은 전체의 70.5%였지만, 불시 확인 점검 결과 그 비율은 13.2%에 불과했다”고 지난 18일 말했다.

2005년 도입된 어린이집 평가인증제도는 정부가 마련한 인증 지표에 따라 보육 서비스 수준을 평가하는 제도로 한번 인증받으면 3년간 유효하다. 기간이 만료되면 재인증을 받아야 한다. 평가인증 상태를 유지하는 어린이집은 9월 기준 전국 3만9246곳 중 3만1474곳(80.2%)에 달한다.

한국보육진흥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아동 학대 사건이 발생해 인증 취소된 어린이집은 139곳에 이른다. 실제 아동 학대로 인증이 박탈된 어린이집은 2014년 16곳에서 2015년 40곳, 2016년 44곳, 지난해 55곳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해당 어린이집은 모두 평가 당시 90점 이상 ‘우수’ 등급을 받았다. 평가인증제가 ‘수박 겉 핥기식’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보육 교사들도 평가인증제를 보육 서비스의 질을 오히려 떨어뜨리는 실효성 없는 제도라고 말한다. 서울 지역의 한 어린이집에 근무하는 A씨는 “인증 한번 받으려면 준비해야 할 서류가 수십 가지인데, 어차피 아이들 돌보는 시간에는 할 수 없는 작업들이 대부분”이라며 “올해 평가인증이 설 연휴 직후여서 한 달 전부터 휴일을 반납했고 연휴에도 내내 나와 일했다”고 말했다. 보육 교사들은 한 달간 보육 일지를 따로 작성하고 생활기록부, 건강검진 서류, 특별활동 부모 동의서, 놀이시설 설치 검사 등 수많은 서류를 준비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3월부터 평가인증 간소화를 적용했지만, 여전히 평가 항목은 21지표 79개에 달한다.

평가는 단 하루에 이뤄진다. 평가 업무를 담당하는 현장 관찰자는 올해 8월 기준으로 전국 191명이다. 1인당 어린이집 205곳을 맡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평가인증 이후 관리는커녕 아동 학대 방지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일부 보육 교사는 평가인증제를 강요하는 업계 분위기를 지적하기도 했다. 보육 교사 B씨는 “시청에서 인증을 통과하면 도서 구입비나 인건비 지원을 제안하는 경우가 있는데, 원장 입장에서는 마다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보육 교사 10년 경력의 C씨는 “평가인증이 코앞에 닥치면 새벽까지 일하고 어린이집에서 잠을 자는 경우도 많다”면서 “육체적으로 신체적으로 무너진 상태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하고, 일부 선생님은 죄책감을 느껴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평가인증을 신청하면 사직서를 제출하는 보육 교사들도 있고, 몇몇 부모는 평가인증을 한다고 하면 아이들에게 소홀하다는 이유로 어린이집을 옮겨버리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평가인증 자체가 부실하게 운영되는 어린이집의 면죄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제도 확대보다는 문제점과 한계를 점검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10여 년간 지속된 평가인증제의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황옥경 서울신학대 보육학과 교수는 “과거 지역별로 편차가 심했던 보육 서비스 질이 평가인증을 통해 많이 끌어올려졌다”면서 “어느 정도 성숙기에 접어든 만큼 보육 교사들의 업무를 가중시키는 양적 평가보다는 학부모 면담이나 특성화 프로그램 운용 등 질적 평가로 정책 방향이 전환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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