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목)

“기다리는 분들 있어 행복… 이런 게 살아 있다는 느낌이구나”

나눔 실천하는 이발사 아저씨

미상_사진_이발봉사_조병헌_2010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이 되면 양천장애인종합복지관은 아침부터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평상시 복지관에 얼굴을 잘 비추지 않던 사람들까지 지하 2층에 마련된 간이 이발소 앞을 서성거린다. 조규동씨가 익숙하게 간이 철제 의자에 앉자 조병헌(63세)씨가 이발 가운을 두르고 가위질을 시작했다. 조병헌씨가 이곳에서 이발 봉사를 한 것은 3년째. 규동씨는 “아침 10시부터 어두워지도록 하루 종일 머리를 깎는데도 매번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고 했다.

조병헌씨가 이발 봉사를 시작한 것은 30년째이다. 이곳을 포함, 이발소가 쉬는 매주 수요일마다 여러 복지기관을 찾아다니며 봉사를 한다. 한 번 갈 때마다 보통 50명 정도의 ‘단골’이 눈 빠지게 기다린다. 사람들이 몰려 점심도 국에 만 밥만 꿀떡 넘기고 다시 가위를 잡는다.

6남매 중 장남인 조씨는 18살에 혼자 상경해 이발 기술을 배웠다. 32살에 결혼하고 집과 직장이 자리를 잡아 갈 무렵 어머니와 아버지가 1년 새 모두 돌아가셨다. 그가 이제 막 부모님께 따뜻한 밥 한 그릇 올릴 수 있겠구나, 마음먹은 찰나였다. 고향인 홍천에서 아버님 상을 치르고 서울에 올라오는 길, 만나는 어르신들이 모두 아버지처럼 보였다. 노인정 봉사를 처음 시작한 것도 부모님을 제대로 모시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노인정이 재개발로 철거될 때까지 자원봉사를 나갔어요. 어려운 형편의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더 나이가 들면 아예 조그만 복지시설을 마련해 오갈 데 없는 분 20명 정도를 모시고 살아야겠다는 꿈도 생겼습니다.”

조씨는 이 꿈을 이루기 위해 2002년부터 3년 동안은 아예 가게 문을 닫고 명지대를 다니며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땄다. ‘천사 아저씨’소문이 났겠다고 묻자 그가 손사래를 쳤다.

“지난 30년 동안 쉬는 날마다 봉사를 하느라 가족 여행 한 번 못했습니다. 아내가 없었으면 이렇게까지 할 수는 없었을 거예요. 저보다 아내가 더 고마운 사람이지요.”

처음에는 봉사 다닌다고 생색내고 어깨에 힘도 들어갔지만, 이제는 오히려 갈 곳이 있어 자신이 축복받은 것 같다는 조씨. 서대문구 홍제동 가게 주변을 돌아다니다 보면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인사할 때도 있다. 누군지 물어보면 자신이 예전에 머리를 깎아 준 아이였단다. 은평천사원에서 30년 전 처음 만나 머리를 깎아 준 아이가 이제는 나이 마흔이 되어 다른 장애인을 돕고 있다고 했다.

“이제는 그만두고 싶어도 못 그만둡니다. 수요일마다 저만 기다리는 분들이 있잖아요. 이런 게 살아 있다는 느낌이구나 싶습니다. 봉사가 자기 스스로를 위한 거라는 건 한 번만 해보면 다 압니다.”

천사표 이발사 아저씨의 웃음 소리가 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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