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배원기 교수의 비영리 회계와 투명성-⑦] 韓·美·日 기본재산제도 비교

기본재산제도 A to Z (2)

지난 글에서는 국내 기본재산제도에 대해 살펴봤다. 그렇다면 외국에도 우리나라의 기본재산제도와 유사한 제도가 있을까? 기부 문화가 비교적 활발한 미국은 우리나라의 기본재산제도처럼 공익법인이 기부원금을 사용하지 못하고, 이를 운용해서 얻은 수익만 목적사업에 사용할 수 있다. 미국의 영구기부재산(Endowment)은 법률로 강제되지 않고, 기부자와 합의한 기부약정(gift instrument)’에 정한 용도에 따라 집행된다. 즉 기부원금에서 발생하는 이자 또는 배당 등의 수익을 목적사업에 사용하거나, 용도 지정 없이 수증단체(증여 받은 단체)의 결정에 따라 자유롭게 쓰기도 한다. 또 기한을 정해 몇 년 이내에 특정 목적사업에 사용하도록 한정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기부 유형은 국내와도 유사하다.

우리나라는 공익법인의 기본재산을 ▲설립시 기본재산으로 출연한 재산 ▲기부에 의하거나 기타 무상으로 취득한 재산(다만 기부목적에 비춰 기본재산으로 하기 곤란해 주무관청의 승인을 얻은 것은 예외) ▲보통재산 중 이사회에서 기본재산으로 편입할 것을 의결한 재산 ▲세계 잉여금 중 적립금으로 규정된 재산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주무관청의 승인을 얻은 기부는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원칙적으로 모든 기부금을 기본재산으로 해야 한다는 경직성을 가지고 있다.

 

◇미국, 기본재산 운용은 이사회 고유 권한으로

국내 공익법인법은 출연재산의 종류에 대한 별도규정 없이 민법의 적용을 받는다. 민법에서는 부동산, 동산의 소유권을 비롯한 각종 물권뿐 아니라 각종 채권 또는 무체재산권 등과 같은 재산권 등도 모두 출연재산이 될 수 있다. 흔히 예금이 대부분이지만 토지, 건물, 상장주식, 비상장주식, 차량, 집기비품 등도 기본재산으로 삼고 있다. 출연재산의 종류를 폭넓게 인정하는 셈이다.

문제는 출연재산이 출연 당시의 가치보다 감소하는 일이 발생했을 때다. 상장주식이나 비상장주식에서 많이 일어나는데, 특히 비상장주식의 경우 발행회사가 도산해 공익법인의 기본재산 가치가 없어져 아예 법인이 소멸하는 사례도 있다. 필자가 돕는 모 재단법인(민법 규정에 따라 설립)10여 년 전에 운영재산의 일부를 차이나펀드에 넣었다가 그 가치가 폭락해 원금의 절반 정도만 회수할 수 있었다. 토지 역시 출연 당시의 가치를 유지한다고 장담할 수 없고, 건물 등 유형고정자산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치가 감소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떨까? 국내의 경우 대기업이 출연한 재단 외 주식을 보유한 공익법인이 많지 않지만 미국의 대학이나 병원, 비영리 예술단체 등 공익법인들은 기부받은 재원을 정기 예금에만 예치하지 않고, 채권 또는 주식 등에 투자하고 그 수익을 목적사업에 사용하고 있다. 실제 지난 2009 3월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 심포니(North Carolina Symphony)는 약 700만 달러( 70억원)의 기부자산을 가지고도 한 푼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에 처하기도 했다. 그 이유는 당시 노스캐롤라이나 주()가 채택하고 있던 UMIFA(기관기금 관리에 관한 표준법률)에서 기부 재산의 시가(市價)역사적 원가를 밑돌 경우 기부 재산 사용을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스캐롤라이나 주는 UPMIFA(기관기금의 신중관리에 관한 표준법률)을 새롭게 도입했다. UPMIFA는 기존 UMIFA‘Prudent(신중)’이라는 용어를 법령에 추가하면서 기부 재산의 역사적 원가 한도 개념을 없애고, 기부 재산 운용의 책임은 그 단체의 이사회 고유 권한임을 명시했다.

 

◇국채투자 실패로 기본재산폐지한 일본

국내 공익법인이 정기예금에 넣어둔 돈을 미국처럼 주식으로 옮겨 운용할 수 있을까? 법무부에 따르면, 안정적 기본재산인 정기예금으로 유가증권(채권·주식)을 매수하거나 금융펀드에 가입하는 것은 기본재산 감소 위험을 증대시키는 일이다. 이는 통상적 관리행위범위를 벗어나기 때문에 기본재산인 정기예금을 채권·주식·펀드로 변경해 운용하고자 할 때는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무상 허가를 취득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장학재단 등이 기본재산을 채권·주식 등 금융상품으로 전환하려면 원금손실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한 기본재산 보전계획서(확약서)’를 첨부해야 기본재산의 변경(처분)허가를 내주는 것으로 돼 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일본도 과거 우리나라와 비슷한 제도를 갖고 있었다. 지난 1996년 제정된 일본의 공익법인의 설립 허가 및 지도감독 기준 및 운용지침에서는 재단법인이 그 기본재산을 주식 및 주식투자신탁, 외화 자산 등으로 운용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적당하지 않다고 규정했다. 또 운영재산(우리나라의 보통재산)은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으로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일정한 리스크는 있지만 높은 운용수익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방법으로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못박았다.

이 때문에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 주식·펀드·외화자산에는 투자하지 않고 예금이나 국채 등에만 투자했다. 그런데 엔화 예금이나 일본 정부의 국채의 이자율이 연 0.5%에도 못 미치는 저금리가 지속하자, 아르헨티나 정부가 엔화로 발행한 높은 이자율의 아르헨티나 국채에 손을 뻗었다. 하지만 2001년 아르헨티나 정부가 디폴트 선언을 하면서 아르헨티나 국채에 투자했던 수많은 공익법인, 농협, 신용조합들이 투자 원금을 회수하지 못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공익법인 이사장이 개인 재산을 추가 출연하거나 출연자인 지방자치단체가 이사장과 이사들을 고발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이는 아르헨티나 국채스캔들이라고 불린다. 이 충격으로 일본에서는 국채도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이 생겼고, 상당수 일본 공익법인들은 자체적으로 자산운용규정을 제정하는 등 자산운용방식을 정비하고 이사회 승인 등 적법한 절차를 도입했다. 결국 기본재산 개념을 폐지하고 일정액 이상의 순재산 유지방식으로 전환했으며, 기본재산에 대한 정부 당국의 허가 제도 역시 폐지됐다.

 

◇공익법인도 시대 변화에 대처하도록…규제보단 자율권 보장해야

공익 재단법인은 환경 변화에 따라 목적사업을 변경할 수 있을까? 목적사업을 변경하는 일은 법인 설립 취지와 기부자가 제시한 기부 용도의 제한을 임의로 바꾸게 되는 것으로, 법률상 가능 여부에 논란이 있는 사안이다.

일부 공익법인들은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아 목적 사업을 변경하기도 한다. 실제로 한 장학재단은 저금리 기조로 이자 수익이 낮아지고 저소득층 수혜자 학생의 발굴도 어려워지자 주무관청에서 목적사업의 변경을 제안하기도 했다.

미국의 경우, 목적사업을 변경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기부자가 문서로 사용 용도 변경에 동의할 경우, 또는 당초 목적사업이 현실적으로 어렵게 되거나, 법률상으로 제한되는 경우 등이다. 이럴 경우 미국은 법원의 허가를 받아 변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해당 이슈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한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 즉 영리법인이나 공익법인이 의도하는 사업을 계속 수행하면서 존속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대응 방법은 시대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익법인이 환경 변화에도 계속 공익활동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규제보다는 자율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법률적으로는 공익법인이 기본재산을 안전하게 보전하도록 강제하기 보다 이사회가 시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나라는 해외보다 관()에 의한 통제가 심한 편이다. 일부 몰상식한 공익법인을 규제하기 위한 제도가 오히려 다른 정상적인 공익법인의 활동을 묶어버리는 건 아닐까?

 

[배원기 홍익대 경영대학원 세무학과 교수]

–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배원기 교수는 1978년부터 2010년까지 32년간 회계사 삼일회계법인, 삼정KPMG 등에서 32년간 회계사로 일했고, 2010년부터 홍익대 경영대학원에서 세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약 15여년 전부터 비영리단체 4~5곳의 비상근 감사직을 맡으면서 공익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이후 비영리 공익법인 회계기준의 제정과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11년 1월 '비영리법인(NPO)의 회계와 세무'라는 책을 펴냈고, 홍대 경영대학원에서 “비영리법인의 회계와 세무” 등을 가르치고 있다. 현재 신한회계법인 비영리 회계 세무그룹의 고문이기도 하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