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연대책임·과열 취재로 두 번 상처받는 수용자 가족… 韓·日 함께 해법 찾아요”

수용자 가족 지원하는 일본 NPO ‘월드오픈하트’

아베 교코 이사장 인터뷰

지난 4일, 서울 마포구의 ‘아동복지실천회 세움’ 사무실에서 아베 교코 월드오픈하트 이사장. ⓒ양수열 C영상미디어 기자

수용자(범죄로 인해 교도소에서 지내는 사람) 가족에 대한 지원이 사각지대에 있다. 수용자 가족 지원을 명문화한 미국, 민간 차원의 지원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마련한 유럽 등과 달리 국내 5만4000명 수용자 자녀와 그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사법체계와 복지체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더나은미래는 ‘2018 신(新)복지 사각지대’ 시리즈를 연재하며 수용자 자녀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보도하기도 했다.더나은미래 5월 29일자 E6면 이웃 나라 일본의 상황은 어떨까. 일본 최초로 수용자 자녀와 가정을 지원한 비영리단체 ‘월드오픈하트(World Open Heart·WOH)’를 설립한 아베 교코(40) 이사장을 지난 4일 서울에서 만났다. 그는 한국의 수용자 자녀 지원 단체인 ‘아동복지실천회 세움’이 주최한 ‘한·일 수감자 자녀 양육 지원 사례 경험 세미나’ 참석을 위해 방한했다.

 

◇일본에서도 ‘가해자 가족’은 사각지대

“10년 전엔 가해자 가족을 돕는 조직도 없었고, 사회적인 인식도 부재했습니다. 사회에선 ‘살인자 가족’ ‘범죄자 가족’이라 불렸고, 매스컴에도 ‘살인자의 가족이 자살했다’는 기사만 떴어요. 여기서 문제의식을 느끼고 센다이시(市)에서 ‘가해자 가족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이 모임이 우연히 지역 온라인 신문에 소개됐는데, 다음 날 일본 전역의 가해자 가족으로부터 전화가 쏟아졌어요. 그들이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지 몸소 깨닫고 단체를 만들게 됐습니다.”

아베 이사장은 2008년 월드오픈하트를 설립해 24시간 전화 상담(핫라인), 변호사 지원, 가해자 가족 모임 운영, 일자리 지원 등의 활동을 하며 가해자 가족을 도왔다. 올해로 만 10년, 그간 1000여 가정이 단체를 거쳐 갔다.

“개인의 범죄를 가족·친척 등의 ‘연대 책임’으로 여기는 일본 사회의 분위기가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일본은 가족을 하나의 단위로 보기 때문에 가해자의 가족이 되는 순간 사회적 지위가 땅에 떨어지죠. 집안에서 범죄자가 나오는 순간 회사를 그만둬야 해 경제적 피해가 큽니다. 학교에서 대놓고 아이들에게 ‘전학 가라’고 얘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흥미 위주의 범죄 보도도 가해자 가족에겐 큰 상처다. 일본 언론은 가해자의 이름과 나이, 주소 등을 그대로 공개한다. 특히 흉악범죄나 성범죄의 경우는 무조건 기사로 내보내며, 심지어 범죄자로 확정되지 않은 용의자 상태에서 신분을 공개하는 경우도 있다. 아베 이사장은 “일본은 강력사건이 발생하면 방송국에서 가해자가 살던 집까지 찾아와 과열 취재를 해 남은 가족들은 동네를 떠나야 한다”며 “가해자 가족 중 95%가 이로 인한 자살 충동을 토로할 정도라 보증인 없이 구할 수 있는 집을 알아봐 주는 등 가족의 사생활을 지켜주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용자 가족을 위한 캘리그라피 앞에서 아베 교코 이사장. ⓒ양수열 C영상미디어 기자

 

복지는 지자체, 상담 등 전문 영역은 민간 담당

일본의 가해자 가족이 마주한 상황은 여러모로 한국과 유사하다. 일본의 월드오픈하트와 한국의 세움이 2015년부터 매년 세미나를 개최하며 활발하게 교류하는 이유다. 월드오픈하트는 주로 법률 지원과 자조 모임 위주로 운영되는 반면, 세움은 경제적 지원이나 ‘아동친화적 가족 접견실’ 조성 등 복지 차원의 지원을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아베 이사장은 “일본의 경우 복지 지원은 지자체에서 담당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외 인식 개선이나 전문적인 지원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국 모두 가해자 가족을 위한 개별법은 없지만, 일본은 기존 제도 안에서 가해자 가족이 지원받을 수 있는 방법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피해자 가족만을 지원하던 ‘범죄 피해자 등 기본법’이 친족 범죄로 인해 가해자 가족이면서 피해자 가족이 된 사람들을 최근 ‘피해자 가족’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이 외에도 가해자 가족들은 ‘자살 대책 기본법’을 통해 관련 상담소에서 상담받고, 약물중독 지원 단체를 통해서도 상담 등 관련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가해자 가족들이 용기를 내야 합니다. 자신의 처지를 솔직하게 알리고 도움을 청해야 해요. 주변 사람들은 아빠가 교도소에 있는 아이에게 ‘그럴 수도 있지’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줘야 합니다. 이번에 한국에 와서 여주교도소의 ‘아동친화적 가족 접견실’이나 세움의 ‘수용자 자녀 양육 지침서’ 등을 보고 많이 놀랐어요. 한국과 계속 사례를 공유하며 함께 해법을 찾아나갈 계획입니다.”

아베 교코 이사장(앞줄 가운데)은 ‘세움’과 함께 여주교도소를 방문해 ‘아동친화적 가족접견실’ 등을 둘러봤다. ⓒ세움

 

[박혜연 더나은미래 기자 hone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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