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연봉 절반 줄었지만 내 열정, 사람 위해 쓸 거예요”

“내가 마음 먹는 만큼 세상이 변하겠구나…”
영리에서 비영리로 옮긴 사람들
“비영리의 사람 중심 마인드와 영리의 효율성이 합쳐지면 엄청난 변화 가져올 것”

국제 구호단체인 월드비전은 2010년 공채를 진행하면서 ‘세상 변했다’는 것을 실감했다. 대기업 근무자, 해외 MBA 출신, 고연봉의 쟁쟁한 사람들이 다수 지원한 것이다. “좀 더 보람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다음세대재단 역시 최근 프로젝트 담당자를 채용하는 과정에서 같은 경험을 했다. 방대욱 총괄실장은 “얼마 전만 해도 마음에 딱 맞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는데, 올해는 실력과 열정을 모두 갖춘 지원자가 많아 누구를 뽑아야할지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쟁쟁한’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비영리로 옮기는 이유는 뭘까. 그 궁금즘을 풀기 위해 최근 1~2년 새 영리 부문에서 국제구호 비영리 단체로 ‘이적’한 4명의 전문가들을 만나봤다. 한국컴패션의 지경영 홍보팀장(39·LG전자 근무),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채정아 미디어팀장(36·MTV 근무), 월드비전 길연수 해외사업본부과장(33·인천국제공항공사 근무), 굿피플 김기원 해외사업팀 주임(29·삼성전자 근무)은 만나자마자 비영리의 ‘경쟁력’에 대해 얘기를 풀어놨다.

사진 왼쪽부터 길연수, 지경영, 채정아, 김기원씨가 사랑의 ‘하트’를 그리며 활짝 웃고 있다. /이경섭 객원기자
사진 왼쪽부터 길연수, 지경영, 채정아, 김기원씨가 사랑의 ‘하트’를 그리며 활짝 웃고 있다. /이경섭 객원기자

“비영리 조직의 가장 큰 장점은 ‘사람 중심’의 일 진행에 있는 것 같아요. 한 명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아주 크고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 운영까지 본인이 마음만 먹으면 다양한 일을 할 수 있거든요.”기원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삼성전자에서 근무할 때는 모든 사람이 딱 자기 분야의 일만 했어요. 저는 엔지니어 출신이라 제품 개발을 맡으면 끝까지 그 일만 해요. 그 제품을 어떻게 하면 더 잘 팔수 있을까 같은 마케팅 아이디어는 낼 엄두도 못 내죠. 이곳에 오니까 책임감은 막중하지만 내가 마음 먹는 만큼 세상이 변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기원씨 말에 연수씨가 말을 거들고 나섰다.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을 설득하고 만족시키면서 일을 하는 것이 NGO의 본질이다 보니 아마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만들어진 것 같아요. 처음 왔을 때는 느린 의사 결정에 답답했는데, 지나놓고 보니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과 마찰 없이 일을 하는 방법이었던 거였어요. 일에 대한 평가와 접근 자체가 다른거죠.”

경영씨는 “처음 한국컴패션에 왔을 때는 단기간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바심이 있었다”며 “이제는 내가 지시하고 주도해서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후원자와 내부 조직들의 충실한 손발이 되는 것이 더 큰 성과를 낸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런 장점 때문에 영리 기업에서 누릴 수 있었던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왔다. 대표적인 것이 연봉이다.

경영씨는 “절반 정도 내려놓고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일의 강도 역시 기업과 다르지 않아요. 절 아는 분들은 왜 그렇게 손해나는 일을 했냐고 하시죠. 하지만 이곳에 와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배우고 있어요. 최근엔 폐휴지를 팔아 월 몇십만원 버시면서 직원들 고생한다고 떡을 가져오신 분이 있었는데, 이런 분들 보면서 가슴 뭉클하죠.”

정아씨는 “연봉을 많이 받을 때는 비싼 음식 먹고 씀씀이도 컸는데, 연봉이 주니까 저절로 쓰는 돈도 줄어서 큰 어려움은 없다”고 말했다.

“저는 계속 홍보업무만 해서 이왕이면 세상에 좋은 일을 알리는 역할을 하자고 생각했어요. 부모님이 남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꼭 잡으라고 오히려 격려해주셔서 큰 힘이 됐죠.” 정아씨의 부모님은 어렸을 때 유니세프가 나눠줬던 분유를 받았던 세대라며 그녀를 북돋았다.

그렇다면 이들이 비영리 조직에서 아쉬워 하는 점은 뭘까. ‘속도’와 ‘실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리 기업에서 일했던 이들은 한결같이 ‘성과 관리’와 ‘프로세스 혁신’을 얘기했다.

이경섭객원기자_사진_비영리_길연수외3인2_2010“처음 비영리 쪽에 왔을 때는 오늘 해도 그만, 내일 해도 그만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태도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한동안은 제가 성격 파탄인가도 생각했지요.”기원씨가 웃었다.

“기업에서는 언제까지 일을 마무리 해야 한다고 하면 밤을 새워서라도 하는데 NGO는 아니에요. 일 자체보다는 어젠다나 서로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기업보다 느릴 수밖에 없죠. 목표 자체도 아이들을 가난에서 구제하자는 식으로 크고 방대하게 세워서 그런 것 같아요.” 정아씨는 NGO에서도 큰 미션을 수행하기 위한 세부적인 목표 설정과 데드라인이 필요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직장에서 사람들이 가정이나 아기 보는 극히 개인적인 일까지 다 얘기하는 분위기예요. 처음엔 이래도 되나 싶었는데, 지금은 저도 익숙해져서 같이 수다를 떨어요. 성과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속도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에요.”연수씨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모든 사업을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진행하다 보니 자금 대부분이 사업장이나 아이들에게 분배돼요. 그러다 보니 업무 시스템이 많이 낙후되어 있어요. 아직도 결재판을 들고 팀장님 사무실 앞에 서 있어야 해요.” 프로세스 혁신의 필요성을 지적하는 얘기도 나왔다.

영리와 비영리 양쪽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경영씨는 “비영리의 사람 중심 마인드와 영리의 효율성이 합쳐진다면 엄청난 변화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기원씨는 “양쪽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직장 이동을 통해 기업의 사회 공헌과 NGO 활동의 다리 역할도 할 수 있다”며 언젠가는 꼭 그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4명의 얘기를 들으면서 어쩌면 이 얘기는 비영리 조직보다 오히려 영리 기업을 운영하는 CEO가 관심을 가지고 들어야 할 얘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수한 인재가 조직을 떠나는 이유는 ‘사람 중심’이 아닌 ‘기능 중심’의 조직 문화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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