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아동 보호 최전선의 상담원들 폭염 속 길거리에 나선 까닭은?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에게 들어본 ‘릴레이 1인 시위’ 배경

유난히도 더웠던 올여름, 아동 보호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상담원들이 거리에 섰다. 뙤약볕 아래 몸을 곧게 세우고 팻말을 들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이하 ‘아보전’)의 직원들이다. 아보전은 지난달 16일부터 이달 24일까지 서울 광화문광장과 세종시 기획재정부 청사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이번 시위는 2001년 아보전 출범 이후 첫 집단행동이다. 이들은 왜 현장이 아닌 광장에 나오게 됐을까. 장화정(54)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을 만나 40일간의 투쟁을 되돌아봤다.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장이 아동 복지 사업의 현주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종연 C영상미디어 기자

◇”지금 이 순간에도 아동 학대는 계속되고 있다”

“한계 상황에 다다랐다고 판단했어요. 수많은 아이가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재의 인력과 예산으로는 전국의 아동 학대 사건을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내부에서도 고민이 많았고, 수많은 회의 끝에 시민들 앞에 섰습니다. 저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은 릴레이 1인 시위밖에 없었어요. 우리가 모두 거리로 나와버리면 아이들은 어떡합니까?”

장화정 관장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보전은 학대 아동을 발견하고 치료·예방 사업을 하는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이다. 전국에 배치된 62곳 상담원 715명이 지자체 226곳을 맡는다. 지난해 아동 학대 신고는 3만4185건으로, 5년 전보다 3배가량 늘었다. 장 관장은 “상담원들이 24시간 당직 근무 체제로 일해도 쏟아지는 신고 건수를 감당하기 어렵다”며 “상담원 한 명이 연 50건 가까이 담당하는 이런 위태로운 구조를 국민에게 알려야 했다”고 말했다.

시위 시작과 동시에 진행한 청와대 국민 청원에는 6만5060명이 동참했다. “청와대가 답변 의무를 갖는 20만명이 넘었으면 좋았겠지만, 6만명도 정말 많은 숫자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111년 만의 폭염 속에서 시위한 게 헛되지는 않았구나 싶었죠. 시위에 참여했던 상담원 중 한 분은 ‘시민들의 작은 관심에서 이제 변화의 시작을 발견했다’고 하더군요.”

아보전 상담원들이 1인 시위를 통해 요구한 바는 예산 확대다. 상담원들의 과중한 업무를 덜기 위해서는 인력이 늘어야 하는데,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서는 예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보전에 배정되는 한 해 예산은 254억원(2017년 기준)으로 정부 예산(428조원)의 0.006% 수준이다.

“예산이 부족하니 연봉은 직급·호봉과 무관하게 전 직원이 같은 금액으로 받습니다. 관장부터 갓 들어온 신입 사원까지 2703만원으로 똑같아요. 상담원을 한 명이라도 더 배치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죠. 예산이 적어도 2배는 늘어야 합니다.”

장 관장은 예산의 편성과 지급이 이원화돼 있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했다. 아보전의 소관 부서는 보건복지부지만, 예산은 법무부에서 나온다는 것. 법무부가 편성하는 범죄피해자기금이 아보전의 재원이다.

“아보전 예산을 증액하려면 복지부가 법무부를 설득해야 하고, 법무부는 이 사안을 전체 예산을 짜는 기획재정부에서 허가받아야 합니다. 복지부에서 예산을 편성하고 지급하는 방식으로 일원화돼야 합니다. 기획하는 사람과 예산을 꾸리는 사람이 같아야 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겠어요?”

‘릴레이1인 시위’ 첫날인 지난달 16일 장화정 관장이 서울 광화문과장에서 아동 학대 사업 지원 확대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는 모습.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제공

◇아이가 희생돼야 관심받는 아동 복지, 앞서가는 지원 필요해

아동 복지에 대한 지원 부족은 2001년 아보전 출범 때부터 제기됐던 문제다. 구성원들은 그렇게 18년을 버텼다. 장 관장은 지난 과거를 떠올리며 “후퇴가 아닌 걸 다행으로 여긴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상담원들이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뭔지 아세요? ‘너희가 뭔데?’예요. 경찰이 하는 말은 듣는 척이라도 하지만 상담원들은 아예 무시하거든요. 그래서 조사는 공무원이 하고 사례 관리는 아보전이 하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하고요. 전국 법인 18곳이 나눠서 위탁 운영하는 아보전을 하나로 통합 운영하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고요. 결국 아보전의 공공성이 강화돼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거죠.”

상담원들은 현장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 앙심을 품은 아동 학대 범죄자에게 미행을 당하거나,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들어오면 망치로 때려죽이겠다’는 협박을 받기도 한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아동을 친부에게서 분리 보호 조치한 가정을 찾은 상담원 앞에서 친부가 손등과 발등을 칼로 찍으며 불만을 표출한 거예요. 이런 사람들을 상대하는 상담원 중에는 트라우마를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동 학대 행위자에게 소송을 당하는 경우에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더해진다. 아무리 사명감으로 일하는 상담원이라도 소송에 휘말리게 되면 위축되는 법. 장화정 관장은 상담원들의 법률 지원을 위해 최근 중앙아보전에 상임 변호사를 채용했다.

국내 아동 복지 사업의 발전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1960년대 전쟁 고아를 위해 만들어졌던 아동복지법이 2000년이 돼서야 대폭 개정될 수 있었던 건 1998년 딸을 굶겨 죽이고 당시 다섯 살이던 영훈(가명)군을 학대했던 ‘영훈이 남매 사건’이 화제를 모으면서다. 2014년 아동 학대 사건에 경찰과 상담원이 함께 출동하도록 한 아동 학대 특례법 역시 전년도 울산에서 여덟 살 서현(가명)양이 갈비뼈 16대가 부러져 사망한 ‘서현이 사건’이 계기가 됐다. 장 관장은 “아이들이 희생된 뒤에야 아동 복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세상이 안타깝다”고 했다.

“상담원들이 보호받아야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저도 1인 시위는 처음 해봤어요. 광화문 광장에 이순신 동상을 등지고 서 있으면 신호등이 한 번 바뀔 때마다 수십 명이 제 앞으로 지나가요. 시선을 건네는 분은 손에 꼽을 정도였죠. 그래도 봐주시는 것만으로도 힘이 됐어요. 우리의 처우 개선이 아니라, 아이들의 행복을 위한 발걸음을 위해서라고 생각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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