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하트하트 수술캠프 현장 르포] “눈에 이상 있는 분 모두 모이세요” 지팡이·아이 손 잡고 3시간 걸어와

탄자니아 음트와라 시내에서 1시간 반 정도 떨어진 ‘음티니코 디스펜서리'(마을 보건소)는 마치 시골 마을의 버스 대합실을 연상시켰다. 보건소 양철지붕 아래에 70명이 넘는 사람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수술캠프에 모인 사람들이 간이접수대에서 접수를 진행하고 있다.
수술캠프에 모인 사람들이 간이접수대에서 접수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4월 11일 하트하트재단은 이곳에서 ‘트라코마 수술캠프’를 열었다. “눈에 이상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모이라”는 마을 리더들의 공지에 음티니코 마을뿐 아니라 먼 이웃 마을에서까지 환자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모두 지팡이를 들었거나, 아이 손을 꼭 잡고 주춤주춤 걸었다. 보건소 벽 흙기둥에 몸을 기댄 사다치(45)씨도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그는 “두 눈이 희미하게 보여서 일하는 데 너무 괴로웠다”며 “마을 사람들이 (수술캠프)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찾아왔다”고 했다. 반가운 얼굴도 있었다. 트라코마로 실명된 부모 때문에 가장(家長)역할을 하던 라시디군이 부모와 함께 캠프를 찾았다. 라시디는 “행복하다. 엄마가 수술 잘 받고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며 들뜬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음티니코 마을 이장인 모하메디(62)씨는 “오전 10시에 캠프가 열리는데 8시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며 “걸어서 3시간 이상 걸리는 마을에서 온 사람도 있다”고 했다.

의료진 4명이 참여한 캠프는 시력 검사와 개별 진료, 수술 등으로 진행됐다.

10m가 훌쩍 넘는 거대한 망고나무 아래, 손으로 그려 붙인 시력검사표를 통해 시력 검사가 이뤄졌다. 시력 검사 결과를 들고 개별 진료소로 향하던 아샤(45)씨는 “눈 안쪽이 아파서 시력 검사표도 잘 보이지 않더라”고 했다. 아샤씨는 보건소로까지 50m가량을 아이의 부축을 받아 걸었다. 보건소 내부는 무척 진지했다. 진료실 의자에 앉은 사무에(42)씨 “내 눈에 정말 문제가 많은 것 같아요. 눈도 잘 보이지 않고요”라고 호소하자 안과진료를 맡은 투마이니(33)씨는 “눈 안에 점들이 많이 보이네요. 트라코마 감염 증상 중 하나예요. 수술 단계는 아니고, 약 처방으로 충분합니다”라며 항생제를 건넸다.

‘트라코마 수술캠프’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지만 다른 안질환으로 찾아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날 캠프 의료진으로 참여한 레지와(34·네왈라병원 안과)씨는 한 노인의 눈을 진찰한 후 “왼쪽 눈에 백내장이 걸려 있어요. 다른 지역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연결해 드릴게요”라고 했다. 진료를 통해 수술이 필요한 트라코마 환자라고 판단되는 경우, 곧바로 수술대에 오른다. 보건소 뒤편의 간이침대에서 녹색 천으로 얼굴만 가린 채 진행되는 수술은 10분 내외가 소요된다. 수술을 마친 하사네(45)씨가 긴장이 풀렸는지 털썩 주저앉는다. 검은 얼굴 탓에 오른쪽 눈을 감싼 붕대가 유난이 희게 보이는 하사네씨는 “마란제 마을에서 걸어왔는데, 3시간 정도 걸렸다”면서 “수술이 많이 아팠지만 지금은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캠프에 소란이 발생했다. 수술을 기다리던 라시디군의 엄마 아미나씨가 울면서 도망쳐 버린 것. 하트하트재단 최주용 지부장은 “현지인들은 몸에 칼 대는 것 자체를 무서워하고, 토속신앙 등의 이유로 거부하는 경우도 잦다”며 “마을 이장 등 현지 지도자를 활용해 문화적 괴리감 없이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유도한다”고 전했다. 이날 수술을 집도했던 투마이니씨는 “오늘 수술을 받아야 하는 트라코마 환자는 총 11명이었는데, 3명은 수술을 거부해 8명만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캠프가 끝날 무렵 라시디군을 다시 만났다. 엄마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캠프는 또 있어. 꼭 설득해서 수술받게 해줄게”라는 하트하트재단의 약속에 아이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신이 받은 항생제를 손에 꼭 쥔 채.

탄자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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