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수)

성차별 없는 투자, 스타트업 생태계 바꿀까

6.5%

지난 2016년 국내 스타트업 중 투자를 유치한 여성 창업가의 비율이다(244곳 중 16곳). 이들 기업이 유치한 투자 금액은 총 450억원. 전체 스타트업에 흘러간 투자금(1조724억원)의 4.1%에 그치는 액수다. 여성 창업가가 여성 심사역을 만날 기회도 희소했다. 2015년 기준, 여성 심사역은 전체의 7.1%에 불과했다. 해외의 투자 환경도 별반 다르지 않다. 미국내 벤처 투자금 중 3%만이 여성 CEO가 있는 기업에 지원됐고, 여성 심사역은 전체의 6% 수준이었다. 

투자 환경에 존재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한 개념이 ‘젠더 관점의 투자(Gender Lens investing)’다. 젠더 관점의 투자란 ‘젠더 평등(성 평등)’을 전제로 한 투자를 지칭한다. 심사부터 실제 집행에 이르는 투자 과정에 성차별적 관점이나 발언 등이 개입하는 것을 막고, 여성 창업 기업의 불리한 상황을 고려해 투자한다는 것이다. 젠더(gender)란 생물학적 성별과 구별되는 ‘사회적인 성’으로,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남녀의 역할이나 태도, 이미지, 기대 등을 일컫는다. 

국내외 투자사들 사이에서는 이미 젠더 관점의 투자 움직임이 시작됐다. 해외에서는 루트 캐피털(Root Capital)빌리지 캐피털(Village Capital) 등의 투자사가 대표적이다. 사회적 기업에 투자 및 역량강화를 지원하는 빌리지 캐피털은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서로를 평가하는 상호평가(Peer Selection)제도로 심사를 전환, 투자를 받는 여성 창업가의 비중을 40%까지 높였다. 지원자 중 여성 창업가 비율은 전체의 15% 수준이었지만, 투자 비율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면서 90% 수준의 생존율을 유지하고 있다. 

ⓒpixabay

국내에서는 소셜벤처 임팩트 투자사 에스오피오오엔지(대표 한상엽, 이하 sopoong)가 나섰다. sopoong는 올해 상반기 정기투자부터 젠더 관점의 투자를 전면에 적용, 서류 심사부터 심의 위원회까지 투자 선발 과정 전반을 다시 설계했다. 우선, 투자 결정 시에는 최소 1개 이상의 여성 창업 기업이 포함돼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평균 25% 수준이었던 여성 창업가의 투자 유치 비율을 마지노선으로 삼은 것. 지난 2017년 여름 정기투자 집행을 결정한 4개 기업 중 여성 창업가 팀이 한 곳도 없었던 것이 이같은 논의의 시발점이 됐다. 

sopoong는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투자 과정에 젠더 관점을 도입했다. 서류 평가시에는 대표자를 포함한 구성원 전체의 성별을 기입하게 하고, 여성 대표자 팀 비율이 일정 비율 이상이 되도록 하는 심사원칙을 적용했다. 사전 액셀러레이팅(대면 면접)에는 ‘젠더 관점 관찰자’가 참석해, 여성 대표자가 면접 과정에서 젠더 편향적인 발언·행동을 경험하지 않는지 진단한다. 투자 심의 항목에 ‘다양성과 젠더 렌즈’ 항목을 추가했고, 계약 시에는 팀이 지켜야할 젠더 평등적 조항을 계약에 포함하고 젠더 관점의 경영을 권고하는 가이드라인(‘Creating Change Guideline’)을 배포한다. 

결과는 어땠을까. 올해 상반기 정기투자 지원 기업들 중 여성 창업팀(남성 공동대표 포함)은 전체의 30% 였다. 2017년 하반기 당시(19.2%)에 비해 대폭 상승한 수치다. 기존에 30% 수준이었던 서류 통과 비율은 43.8%까지 상승했으며, 현재 최종 투자 심의에 진출한 여성 창업자 비율은 42.9%에 달한다. sopoong는 “소셜 임팩트 등 투자시 고려하는 엄격한 기준을 충족한 상태로 선발된 것이기에 더욱 의미있는 수치”라며 “국내에도 젠더 관점의 투자 움직임이 확산될 수 있도록 생태계를 주도하는 역할을 수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올해 상반기 중에 최종 선발될 여성 창업가 팀의 비율은 투자 계약이 끝나는 3월 말 발표될 예정이다.

ⓒsopoong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sopoong은 지난 3개월간 수행한 연구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펴낸 보고서(‘젠더 안경을 쓰고 본 기울어진 투자 운동장’)를 공개했다. 보고서에는 젠더 관점 투자에 대한 소개와 투자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젠더 평등 원칙, sopoong의 변화한 투자 프레임 등이 담겨있다. 보고서의 PDF 파일은 sopoong 홈페이지를 통해 다운받을 수 있다.

 

젠더 관점의 투자를 위해 경계해야 할 투자생태계의 인지적 편견 5가지

1.기혼 여성은 사업에 집중할 수 없다.

기혼 여성이 가사나 육아 대부분을 전담하므로 상대적으로 업무 투입시간이 낮을 거라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가사나 육아 전담율이 높은 것은 일가정양립을 위한 제도와 조건이 미비한 것이지, 여성의 역량 부족 때문이 아니다. 가사와 육아는 여성만이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닐뿐더러, 기혼 여성이 모두 출산을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사업 평가시 고려할 사항이 아니다. 

2. 여성은 남성보다 체력이 좋지 못하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약한 체력을 가졌고, 여성은 일에 있어서도 집중도가 낮을 거라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체력은 개인의 습관이나 타고난 기질에 영향을 받는 부분으로 성별에 따라 판단하는 것은 편견이며, 단순히 체력을 일의 집중도나 성과와 연결할 수도 없다.

3. 여성은 기술 기반의 전문성이 없다.

남성은 IT에 전문성이 없어도 손쉽게 문제 해결이나 취업을 할 수 있다고 보는 반면, IT 전문성이 없는 여성의 경우 사업의 실현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과거 사회·문화적으로 여성이 공학적 지식을 학습하는데 불가피한 제한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여성에게 IT 전문성이 없을 거라는 전제 자체를 견제해야 한다.

4. 여성은 리더십이 없다.

여성에게는 배려와 소통을 중심으로 한 부드러운 리더십을 강조하는 반면 남성에게는 강한 추진력과 대담함을 중심으로 한 강한 리더십을 강조하곤 한다. 흔히 스타트업계에서 강한 추진력과 대담함을 갖춘 리더십을 추구하고, 여성은 카리스마가 없고 추진력이 없을 것이라 여겨 스타트업에 적합한 리더십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이 상대적으로 리더십 역할을 경험할 기회가 적으며 강인한 성향의 리더십에 훈련되지 않았음을 인지하고, 어떤 방식의 리더십이냐에 따라 대표자의 역량을 판단하는 것을 견제해야 한다.

5. 여성은 성과를 빠르게 내지 못한다.  

여성은 제한된 기회 안에서 자신의 역량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기에 성과에 대한 기준이 높고 또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할 수도 있다. 때론 여성이 성과를 드러내는 방식이 남성과 다를 수 있음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여성 창업자가 자신의 성과를 미미하게 소개할 경우에도 그 결과가 충분히 훌륭한 결과일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성이 뛰어난 성과를 만들어 낸다는 근거자료는 이미 충분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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