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수)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무조건적 ‘혜택’보다 낯선 땅에서의 적응 도와줄 ‘시스템’ 만들어야

“겪어보지 않으면 몰라요.”

다문화 취재를 통해 만난 몽근졸씨와 저는 말이 아주 잘 통했습니다. 낯선 나라에서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 그건 정말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를 일입니다. 2008년 여름부터 2년 동안 저는 미국에서 소위 ‘다문화 여성’으로 살았습니다. 매일 아침 다섯 살짜리 딸아이를 프리스쿨(어린이집)에 맡기고 돌아서면서 저는 선생님께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맴돌았지만 그냥 웃으며 “굿 모닝(Good Morning)”만 하고 돌아서야 했습니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선생님과 낄낄거리며 대화하는 미국인 학부모를 보며 자괴감을 느껴야 했지요. 마트에서도 “Plastic or Paper?(비닐봉지, 아니면 종이봉투에 담아갈래?)” 하고 재빠르게 묻는 종업원의 말을 못 알아들어 창피당한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서커스장에서 모든 관객이 일어나 미국 애국가를 부르는 통에 우리 가족만 어색한 채 입만 벙긋벙긋한 기억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었습니다. ‘영어를 제대로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주위를 둘러본 순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제 스케줄을 채워줄 다양한 프로그램이 눈에 보였습니다. 월요일엔 도서관, 화요일엔 초등학교, 수요일엔 지역 커뮤니티센터, 목요일엔 미국인 자원봉사 할머니집, 금요일엔 교회를 다니며 생활영어를 배웠습니다. 도서관에서 40년 넘게 자원봉사로 일한 70대 애비(Evy)할머니 부부는 매주 목요일 자신의 집으로 저와 몇몇 한국 여성들을 초대해 토크타임을 갖고, 미국 문화와 미국 생활에서 겪는 아주 사소한 어려움을 상담해주기도 했습니다. 운전면허증을 딸 때 유의할 점, 식당에서 팁(tip)은 얼마나 줘야 하는지, 할로윈 데이에는 아이에게 무슨 옷을 입혀서 학교에 보내야 하는지 등을 말입니다. 이렇게 2년쯤 지나 귀국할 때쯤, 저는 전화 통화를 통해 “왜 동의 없이 여행 사이트에 자동 가입시켜 내 통장에서 매달 12.99달러를 6개월 동안 빼갔느냐. 환불해달라”고 항의해 돈을 환불받는 경지(?)에 올랐습니다.

언제부턴가 ‘다문화’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이 용어는 동남아시아에서 온 결혼 이주 여성,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어눌해 한국 사회에 적응 못 하는 아이들로 인식되는 것 같습니다. 정부와 기업에서 다문화 지원 혜택을 쏟아내다시피 하며, 소위 ‘다문화 가정’은 장애인이나 아동·노인 등과 같은 복지 혜택의 수혜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모 교수는 “기업체 사회 공헌 담당자들은 다문화 프로그램을 해도 얼굴색이 티가 나야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몽근졸씨는 저에게 “다문화란 말이 너무 싫다”고 했습니다. 그녀의 아이가 ‘다문화’라는 말 때문에 낙인찍히는 게 싫다고요. 저도 공감했습니다.

다문화 정책은 단선적이고 일괄적이면 안 됩니다. 사진을 찍기 위한 이벤트성 행사에 다문화를 한 코드로 이용해서도 안 됩니다. ‘다문화’를 한 조건으로 내걸어 무조건적인 지원이나 혜택을 주는 것은 국내 저소득 가정과 또 다른 역차별 우려를 낳습니다. 이들이 대한민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어려움 없이 잘 살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모든 걸 국가가 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장기적으로 지역사회가 이를 담당하도록 풀뿌리 단체와 인력을 잘 지원하는 게 좋습니다.

다문화 정책은 어렵습니다. “다문화사회 건설 시도는 완전히 실패했다”(독일 메르켈 총리, 2010년 10월). “우리는 이민자들의 정체성에 대해 너무 걱정한 나머지 그들을 받아들인 국가(프랑스)의 정체성을 소홀히 했다”(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 2011년 2월). 이민자 폭동과 실업률 등의 문제로 유럽은 ‘다문화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반이민 정서로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며칠 전 이태원을 거쳐 회사로 들어오는 택시를 탔는데, 흑인이 운전하는 용달차가 끼어들었습니다. 택시기사는 “×× 새끼가 남의 나라에 와서 설치고 난리야”라고 욕을 하더군요. 다문화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 내부의 포용력을 키우는 것, 이것도 물론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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