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목)

개도국 빈곤층 돕기 ‘깨끗한 물 공급’ 가장 시급

물의 날 특집 “물이 없으면 생명도 없다” ―개발도상국, 식수지원 프로그램
개도국 빈곤층 돕기 최선은 깨끗한 물 공급펌프 하나 설치하면 3000명이 마음껏 물마셔

지표수 25%가 고갈된 동아프리아는 우물 개발 지하수에 독극물 함유된 동남아시아 빗물 저장

지질·강수량·문화 고려한 수자원 개발 이뤄져야… 재정과 위험부담 크지만 꼭 필요한 수자원 개발

매년 3월 22일은 UN이 제정한 ‘세계 물의 날’이다. 현재 깨끗한 물을 공급받지 못하는 인구는 8억8400만 명이다. 그 대부분은 개발도상국에 편중돼 있다. 개발도상국에서 발생하는 질병의 80%가 수인성(水因性)인데, 주로 인간의 배설물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발생한다. ‘유엔미래보고서’는 2025년쯤 세계 인구의 절반이 물 부족 상태에서 생활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에 조선일보 공익섹션 ‘더나은미래’는 개발도상국의 식수 부족과 오염 현황을 파악하고, 각 지역의 특성과 문화에 맞는 수자원개발 문제를 짚어봤다. 편집자주


자료제공: 팀앤팀
자료제공: 팀앤팀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개발도상국의 빈곤층을 돕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지난 2월 미국의 발전경제학자 16명은 ‘깨끗한 물 공급’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구충제 보급(2위)과 모기장 보급(3위)이 그 뒤를 이었다. “1년에 1인당 10달러의 비용으로 유아 사망률을 35~50% 낮출 수 있는 저렴하고 효과적인 방법”(세계보건기구 조사)이 그 이유다. 펌프 하나를 설치하면 3000명이 마음껏 물을 마실 수 있다.

◇새 우물만큼 버려진 우물도 늘고 있어

지금까지 가장 널리 알려진 식수보급 방법은 ‘우물 개발’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새로운 우물이 만들어지는 만큼 버려지는 우물도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한다. 왜일까. 버려진 우물 대부분이 펌프 너트를 조이거나 고무 패킹을 교체하면 곧바로 사용이 가능한데, 이를 모르는 주민들은 펌프가 작동하지 않으면 고장 난 줄 알고 우물을 폐기한다는 것이다. 버려진 우물은 환경오염의 원인이 된다. 우물 입구로 유입된 유기물이 지하수를 오염시켜 주변지역 전체에 수인성 질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해외원조협의회 신재은 과장은 “마을 주민들로 구성된 물 관리 위원회를 조직하고, 리더를 세워, 그들 스스로 식수를 얻고 이용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면서 “개발 초기 단계부터 함께 한 주민들은 자연스레 주인의식을 갖게 된다”고 조언했다. 국제개발 NGO는 보조자일 뿐, 수자원 개발 주체는 주민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동아프리카엔 우물 개발, 동남아시아에는 빗물 저장장치가 효과적

우물, 빗물 탱크, 워터팬(Water Pan), 라이프 스트로우(Life Straw), 핸드 펌프(Hand Pump) 등 개발도상국에 식수를 공급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러나 지역마다 물의 성분과 오염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그에 맞는 장치를 찾아 개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신 과장은 “극심한 가뭄으로 지표수의 25%가 완전히 고갈된 동아프리카의 경우 우물을 파서 지하수를 개발하는 게 가장 기본적인 방법인 반면, 동남아시아 지하수에는 비소와 같은 독극물이 함유돼 있기 때문에 우물보다는 빗물 저장 장치를 설치해야 한다”고 비교했다.

식수 공급의 양극화 현상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자료 팀앤팀
식수 공급의 양극화 현상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자료 팀앤팀

◇전기 없는 곳엔 핸드 펌프, 학교 있는 지역엔 플레이 펌프를

지질·지형·강수량에 따른 필요한 적정기술도 다르다. 전기가 없어 수중모터펌프를 사용할 수 없는 오지의 경우, 핸드 펌프(손으로 위아래 펌프질을 해 물을 끌어올리는 장치)를 활용할 수 있다. 핸드 펌프는 최고 100m 아래의 물까지만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에, 그보다 더 깊은 땅속의 물을 사용하려면 ‘워터팬(Water Pan, 저수지 규모의 물 웅덩이)’을 설치하는 것이 좋다. 주민들은 워터팬에서 가축의 목을 축이고, 가축의 배설물 등으로 물이 오염될 경우 바이오 샌드 필터(Bio-Sand Filter, 미생물 막과 모래층이 더러운 물을 걸러주는 장치)를 이용해 깨끗한 물을 공급받을 수 있다.

산속 깊이 숨어 있는 물을 끌어오려면 ‘샘물집수장치(Water Supply System)’가 필요하다. 지구촌 오지에서 수자원 개발사업을 벌이고 있는 국제개발 NGO 팀앤팀은 지난 2002년부터 4년 동안 남수단 보마(BOMA) 지역의 샘물을 메인 탱크에 저장, 이를 마을에 연결하는 파이프를 설치했다. 주민들은 건기에도 곡식·과일 재배가 가능해졌고, 물을 긷는 노력과 시간을 위생 관리와 교육에 투자할 수 있게 됐다.

주변에 학교가 있는 지역일 경우엔 플레이 펌프(Play Pump, 아이들이 놀이기구를 타고 빙글빙글 돌면 그 운동에너지를 통해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장치)를 활용해, 재미와 식수 공급을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 라이프 스트로우(Life Straw, 오염된 물이 99.9% 정화되는 휴대용 정수 빨대)는 물이 오염된 산악 지역 주민이나 여행자, NGO 활동가에게 보다 유용하다.

◇지역 문화와 상황 고려한 개발 이뤄져야

한편, 지역 문화를 고려하지 않은 개발은 현지 주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팀앤팀 김두식 대표는 “마사이족은 대지를 어머니로 여기기 때문에, 땅을 파서 우물을 개발하는 것에 반감을 가진다”면서 마을 전통을 이해하지 않은 식수 개발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수인성 질병 예방을 위해 지하수 개발을 지속해온 국경없는 의사회(MSF) 에릭 푸조(Eric Pujo) 물류 감독은 “물속의 불순물이 질병을 야기할 수 있다”며 특히 재난 지역에서 수질 평가가 중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홍수가 나면 대부분의 지표수가 오염되는데, 분뇨 오염이 있으면 콜레라가 창궐하므로 반드시 탁도를 검사해야 한다. 수인성 질병인 간염이 유행하는 지역에선 자외선 살균 처리를 거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개발도상국 수자원 개발, 어려움 많아

수많은 국제개발 NGO들이 안전한 식수 공급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재정적인 어려움과 위험 부담 때문에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이들이 수자원 개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비용 때문이다. 지하 150미터까지 땅을 팔 수 있는 장비의 풀세트 가격은 최대 2억원, 오염된 물을 정수하는 필터 역시 2000만원 내외다.

현지 식수 업체와의 갈등도 또 다른 고비다. 비싼 가격에 물을 판매하는 현지 업체와 무료로 식수를 공급하는 국제개발 NGO는 항상 긴장 상태에 놓이기 마련이다. 잘못된 소통은 부작용을 낳는다. 실제로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에서 국제개발 NGO의 식수 공급으로 현지 업체가 문을 닫았고, 이후 NGO가 해당 지역에서 철수하는 바람에 갑자기 물을 구할 수 없게 된 주민들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수자원 개발은 사업이 쉽지는 않지만, 꼭 필요한 프로젝트이자 비용 대비 효과가 크게 나타나는 사업”이라고 입을 모은다.

메마르고 잊혀진 땅. 그곳에 가득 찬 절망을 소망으로 바꿀 또 하나의 물줄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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