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두 눈이 나으면 학교에 가서 마음 껏 책을 읽고 싶어요”

하트하트재단 캄보디아 실명 예방사업 현장
열두 살 ‘초이 쁘럭’ 다섯 살 때 백내장 앓아 치료비 없어 치료 못 받아
캄보디아 여성 대부분 풍진 등 예방주사 못 맞아
선천적 백내장 많이 앓아 1분에 1명씩 시력 잃어

벌판 위로 뿌연 모래 바람이 일었다. 뜨거운 햇살에 피부가 욱신거렸다. 캄보디아의 씨엠립(Siemreap)주에서 한 시간 떨어진 꼬스머 마을에 들어서자, 더위에 축 늘어진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흙먼지를 옷에 가득 묻힌 열두 살 초이 쁘럭(Choi Phruck)이 맨발로 뛰기 시작했다. 나무로 사방을 덧대어 만든 판잣집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쁘럭 엄마는 탁자 위에 가득한 먼지를 한참 동안 손으로 털어내더니, 고개를 돌려 미소를 건넸다.

양쪽 눈에 백내장을 앓고 있는 열두 살 초이 쁘럭이 기창원 교수에게 검진을 받고 있다. 초이 쁘럭 은 시력을 회복해 다시 학교에 가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양쪽 눈에 백내장을 앓고 있는 열두 살 초이 쁘럭이 기창원 교수에게 검진을 받고 있다. 초이 쁘럭 은 시력을 회복해 다시 학교에 가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낡은 의자에 걸터앉은 쁘럭은 눈을 계속 찡그렸다. 다섯 살 때 몸에 열이 나더니 갑자기 앞이 잘 안 보이기 시작했다. 눈을 크게 떠보고, 손으로 비벼도 봤다. 뿌옇게 흐려진 앞은 밝아지지 않았다. 후발백내장(수정체가 혼탁해져 앞이 잘 안 보이는 것)이었다. 3년 전부터는 학교에 가는 날보다 안 가는 날이 더 많아졌다. 그마저도 매번 엄마가 데려다 줘야 한다. 쁘럭은 “글씨를 읽을 수 없게 돼서 제일 속상해요”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캄보디아에는 쁘럭처럼 눈에 질병을 가진 아이들이 많다. 선천적 백내장은 물론 외상 등 후천적인 영향으로 한쪽 눈을 잃거나 약시(교정시력이 나오지 않는 상태)가 된 이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가까운 곳에 병원이 없는 데다 치료비가 없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쁘럭네 가족은 총 8명이다. 아빠가 숯을 피우거나 토목 일을 도와 하루에 3달러를 벌어온다. 쁘럭은 오리를 키워 1㎏당 2달러를 받는다. 그러나 병원에 가려면 5달러를 주고 오토바이를 빌려야 한다. 치료비는 물론 병원 가는 교통비도 부족하다.

하트하트재단 해외사업부 문후정 팀장은 “캄보디아 여성들 대부분이 풍진 등 바이러스 감염 예방 주사를 맞지 못하는데, 임신 중에 풍진균에 감염되면 태아가 선천적으로 백내장이나 심장병을 앓게 된다”며 “예방도 어렵고 치료도 받지 못하니 실명되거나 사망하는 아이들이 줄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중 모래 위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쁘럭 엄마는 손으로 나무 기둥을 가리켰는데, 1m 높이마다 기둥 색깔이 달랐다. 그녀는 “캄보디아에서는 비가 많이 올 때마다 강이 넘쳐 모든 것이 잠긴다”며 걱정스러워했다. 잦은 홍수는 수인성(水因性) 질병을 일으킨다. 캄보디아는 물 성분 자체에 비소 등 독소가 있기 때문에 비가 온 뒤엔 안질환이 생긴 환자들이 넘쳐난다.

지난 3월 22일 쁘럭은 하트하트재단의 도움으로 앙코르 어린이병원에서 눈 상태를 검사받았다. 약물치료만으로는 혼탁이 발생한 수정체가 다시 맑아지지 않지만, 수술을 받으면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는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결과였다. 태어나 처음으로 병원을 찾은 쁘럭이 금방이라도 나을 듯 얼굴 가득 활기찬 웃음을 보였다.

“두 눈이 나으면 학교에 가서 마음껏 책을 읽고 싶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적절한 의료 지원을 받지 못한 아동은 1분에 1명씩 시력을 잃고 있다. 간단한 예방접종이나 수술만 받으면 나을 수 있는 아이들이다. 실명은 빈곤의 중대한 원인이자 결과다. 쁘럭과 같은 아이들이 어둠 속에서 빛을 찾고, 가난 속에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많은 이들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하다.

※쁘럭과 같이 실명 위기에 처한 아이들을 도우려면, 하트하트재단(02-430-2000, www.heart-heart.org, 우리은행 1005-101-413016 (사)하트하트재단)으로 연락하면 됩니다.

씨엠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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