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Cover Story] 사회문제 해결의 새로운 아이디어, 사회 혁신을 말하다

[Cover Story] 하승창 청와대 사회혁신 수석 / 제프 멀건 네스타 CEO 특별 대담

 

“시민들이 문제를 직접 해결하도록 돕는 게 사회혁신수석실의 임무다.”

지난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청와대 비서실에 사회혁신수석을 신설했다. 한국에서 처음 시도되는 ‘사회혁신’ 정책을 이끌 수장으로는 하승창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낙점했다. 하 수석은 경실련, 함께하는시민행동 등 풀뿌리 시민사회 운동을 오랫동안 이끌어온 경험이 있다. 사회혁신의 역할과 방향이 궁금해지던 즈음, 행정안전부에 사회혁신추진단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이 지난달 들려왔다. 사회혁신 정책의 밑그림이 그려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에 조선일보 더나은미래는 하승창 청와대 사회혁신수석과 제프 멀건(Geoff Mulgan) 네스타 CEO와의 특별 대담을 진행했다. 영국 네스타(NESTA·National Endowment for Science, Technology and Arts)는 사회혁신 분야의 세계적인 싱크탱크로, 사회혁신에 대한 연구와 투자를 이끌고 있다. 1998년 450억원 규모의 복권기금으로 설립됐지만 2010년 말부터 독립적 민간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2011년부터 네스타를 이끌고 있는 제프 멀건은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전략기획관으로 오래 활동해 왔으며, 영국 사회적기업의 싱크탱크인 ‘영 파운데이션(Young Foundation)’ 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다. 지난 24일, 영국과 한국의 대표적인 사회혁신 리더들이 만나, 사회혁신을 둘러싼 전 세계의 흐름과 한국 정부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영국 사회 혁신 리더, 제프 멀건 그는 누구? 

지난 24일 오후 서울 정동 달개비에서 만난 하승창 청와대 사회혁신수석과 제프 멀건은 “사회 혁신은 곧 사회의 문제 해결하는 것”이라며 “정부는 혁신이 잘 일어나고 확산되도록 촉매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조현호 C영상미디어 기자

◇사회혁신,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아이디어’

사회=제프 멀건 대표님은 지난 7월 네스타 기고문에서 한국의 사회혁신수석실 신설과 관련해 긍정적 평가를 했다. 아직 한국에선 사회혁신이라는 개념이 낯설다 보니, 무슨 일을 하게 될지 궁금해하는 이가 많다. 어떤 기대를 하고 있나.

제프 멀건 네스타 CEO

제프 멀건(이하 제프)= 지난 10년간, 세계 각국에서 ‘사회 혁신’을 정책적으로 추진해 왔다. 크게 두 가지 흐름이 있다. 하나는 정부의 ‘혁신정책’ 방향이 바뀌었다. 과거엔 우주항공이나 제약기술 등 ‘하드웨어’에 투자하는 것만을 혁신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더이상 인구 고령화, 먹거리, 에너지 문제 등 우리 사회가 당면한 과제를 하드웨어 투자만으로는 해결할 순 없다는 걸 깨닫고 혁신을 시도하게 됐다.

두 번째로 시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려는 요구가 커졌다. 정부 관료 몇 명이 모여 일방적인 ‘해결책’을 내는 게 아니라, 시민들이 고안한 해결책을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유럽 전역에선 ‘시민을 위한 유럽’이라는 이름으로 유럽 시민 5억명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美) 대통령도 백악관에 ‘사회혁신과 시민참여실’을 설치했고, 캐나다·프랑스·덴마크·인도 등에서도 사회 혁신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사회 혁신 최전선에 있다. 앞으로 더욱 의미 있는 사회혁신을 만들어내리라 생각한다.

하승창(이하 하)=우리는 후발주자이다 보니 영국의 여러 사례가 큰 자산이 된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 목표인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만드는 핵심 정책 중 하나가 사회혁신이다. 지역에서 검증된 혁신 모델을 전국화하고, ‘광화문1번가’처럼 정책 플랫폼을 통해 시민 참여를 확대하는 것, 사회 혁신을 위한 기반 조성, 디지털 사회 혁신, 공유, 청년 정책 등 신규 사회 혁신 정책을 추진하고자 한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 철학을 담을 ‘정부 혁신’도 준비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국가의 자원과 역량을 연결하는 것, 이것이 이번 정부의 사회 혁신 정책 방향이다.

사회=사회 혁신이라는 용어는 곳곳에서 쓰이는데, 정작 사회 혁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이도 많다.

제프=사회 혁신은 거창한 개념도, 새로운 흐름도 아니다. 일상에 늘 일어나는 것이다.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하면 된다. 유치원, 호스피스병동, 협동조합, 소비자조합, 새로운 모델의 학교 등을 생각해보자.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이 제도도 처음엔 혁신적인 하나의 아이디어였다. 가령, 영국에선 인구 고령화와 헬스케어 문제가 가장 큰 화두다. 예전 같으면 정부에서 호스피스 병동을 늘리거나 신약 개발에 투자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 단체에서 각기 다른 질병을 가진 이들이 서로 돌보게 하는 ‘돌봄 시스템’을 시도했더니, 생존율과 만족감이 훨씬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네스타에선 심장마비 문제를 해결하는 앱을 개발하기도 했다. 심장마비로 즉사하는 경우가 많다는 데서 착안해, 앱으로 앰뷸런스를 부르면 인근에 있는 자원봉사자들이 빠르게 찾아가 조치를 하도록 했다. 실제로 사망률을 10% 낮췄다. 사회혁신 자체는 새로운 개념은 아니지만, ‘사회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몫이 있다고 생각한 건 최근의 일이다. 세계적으로 생태계도 점차 커지고 있다.

하=한국에도 사례가 없는 게 아니다. 마을 차원에서 에너지 문제를 고민하며 시작된 ‘성대골 에너지 전환마을’, 교육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한 ‘성미산 대안학교’ 등 시민들이 직접 문제를 풀어온 선례가 많다. 안전한 먹거리를 찾기 위한 생협 운동에서 출발한 ‘아이쿱’은 전남 구례에 대규모 생산단지를 둘 만큼 크게 발전했다. 공공기관의 정보 공개만으로도 훌륭한 서비스가 만들어진 ‘버스앱’ 사례도 마찬가지다.

다만 한국에선 정부와 시민사회가 분리됐고, 시민사회가 고군분투하며 자금이나 제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공동체 전체의 문제로 안 느껴졌던 게 있다. 좋은 사례들도 확산되지 못했던 면이 있고, ‘사회혁신’이라고 하면 낯설고 멀어 보인다. 이제부터는 그걸 연결해보려는 시도를 하려고 한다.

사회=전 세계적으로 사회혁신 생태계 트렌드는 어떤가. 한국에 시사할 만한 점이 있다면.

제프=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 등 사회혁신 아이디어나 조직에 투자하는 ‘임팩트투자’ 자금이 크게 늘었다. 영국 정부가 2012년에 1조2000억원 규모로 설립한 사회투자은행인 ‘빅소사이어티캐피털(BSC)’이 대표적이다. 두 번째로 ‘디지털’을 활용해 사회혁신을 만들어내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3D프린터 등으로 직접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뭔가를 제작하는 ‘메이커 운동’, 정보나 지식을 공개하는 ‘오픈 데이터 운동’ 등이다. 민주주의 제도를 혁신하는 디지털 앱을 만들기도 했다. 세 번째로 기본소득이나 새로운 형태의 복지국가 등 국가 자체가 새로운 사회실험을 시도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정부의 역할, 해결자 아닌 ‘촉진자’

사회=지난 9월, 본격적인 사회혁신 정책을 위해 행정안전부에 사회혁신추진단이 만들어졌다. 현 정부에서 추진하려는 구체적인 정책 방향이 궁금하다.

하승창 청와대 사회혁신 수석

하=사회혁신수석실에서는 지역에서 검증된 혁신 모델을 찾아내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대표적으로 지금까지 행정의 전달 체계 기능을 해오던 주민센터를 공공서비스 플랫폼으로 혁신하고자 한다. 

서울시의 ‘찾동’(찾아가는 동사무소) 모델의 전국화라고 할 수 있다. 찾동은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복지 서비스가 필요한 이들을 찾아가서 도와주는 모델이다. 사실 주민센터는 시민과 만나는 일선 현장이다. 이 모델을 확장시키면, 동 주민센터를 매개로 다양한 복지와 공공서비스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뿐 아니라 정책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시민 참여를 확대해나가는 국민 정책 참여 플랫폼 사업을 적극 확대할 계획이다.

정부 출범 이후 50일간 운영된 온오프라인 플랫폼 ‘광화문 1번가’의 상설화·전국화를 추진 중이다. 50일간 국민이 16만5000건의 정책을 제안했다. 이 제도를 상설화해, 홈페이지 외에 오프라인에서도 시민들이 의견을 내고 참여하는 공간을 설계할 것이다. 정부가 혁신적인 뭔가를 새롭게 직접 시작한다기보다는 마을이나 지역 단위에서 이뤄졌던 모델을 잘 포착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제프=지난 7월, 네스타에 ‘사회혁신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는 미니 보고서를 기고했다. 대원칙은 이것이다. 정부는 시민사회에서 사회혁신을 잘 해내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 시민사회의 움직임을 막는 법이나 제도를 개정하거나, 새롭게 제정할 수 있다. 공공서비스를 개선한다든가, 자금을 조성하고, 공공지를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것도 가능하다. 생태계를 키우고 시민사회를 활성화하기 위해 하는 것이 많다.

단, 핵심은 ‘장기적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 진보·보수 정당 관계없이 오랜 기간 사회혁신 관련 정책을 추진했다. 100년 전 ‘과학기술분야’에서 혁신을 이룰 때 필요했던 요소들이, 사회혁신을 이루는 데도 똑같이 필요하다. 적절한 제도와 기관이 갖춰져야 하고, 역량을 키워야 한다. 학술적인 토대를 닦는 대학과 그 밖에 기업을 포함해서 다양한 기관들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현재 영국에선 30대 대기업 CEO가 모두 사회혁신을 지원한다.

사회=한국은 지방정부에서 사회적경제 등 사회혁신의 중요한 역할을 맡아오고 있는데, 중앙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하=네스타와 같은 사회혁신기금 및 재단을 설립하고, 시민들이 모이고 연결되는 오프라인 플랫폼을 만드는 것, 시민참여형 사회혁신 프로젝트 등 생태계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공공데이터 개방 등 디지털 사회혁신이나 공유경제, 청년 정책도 새 정부의 중요한 사회혁신 정책으로 추진될 예정이다.

“‘사회혁신’에 대한 요구,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로 이어져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50일간 운영된 온·오프라인 플랫폼 ‘광화문 1번가’에는 16만5000건의 정책이 제안됐다. 하승창 사회혁신수석은 “국민의 정책참여 플랫폼을 상설화·전국화하겠다”고 밝혔다. ⓒ 조선일보DB

◇‘민주주의’, 21세기 맞는 혁신 필요해

사회=사회혁신을 위해 정부 내부 조직 문화나 제도 변화도 중요할 것 같다. 프로세스가 바뀌고, 시민 참여가 확대되는 등 정부 내부에도 ‘혁신’이 필요할 것 같은데. 어디에서부터 가능할까.

하=예전에는 ‘정부 혁신’이라고 하면 부서를 통폐합하고 예산을 조정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제는 정부가 일하는 방식이 바뀌어야 할 때다. 정부가 가진 정보를 공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본다. 이전 정부에서도 정보공개는 확대돼야 한다는 인식은 있었다. 

다만 시민이 알고 싶은 정보나 필요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기보다 정치적인 수사에 그치거나 시민들의 요구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시간이 걸리겠지만, 일하는 방식이나 조직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시민이 참여하고 협력하는 프로세스가 일상적인 행정 절차 안에 설계되도록 하는 게, 곧 정부와 시민사회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것이고 민주주의의 확대라고 본다.

제프=젊은 세대들은 현재의 민주주의 시스템에 대한 확신을 잃고 있다. 스마트폰이 보급된 이후 늘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실시간으로 의견을 교환하고, 쇼핑을 하고, 자료를 찾는 데 반해, ‘민주주의’만 여전히 몇 년마다 한 번씩 선거를 치르는 구시대적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회혁신’에 대한 요구는 곧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로 이어져야 한다. 전 세계의 사회혁신가들이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공론장을 만들기도 하고, 정부 데이터를 활용해 정책에 압박을 가하기도 한다. 미래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혁신은 민주주의에서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잃을 것이다.

사회=박란희 더나은미래 편집장 정리=주선영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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