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위계와 서열, 군사주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까요?’…피스모모 5주년 국제 컨퍼런스

분단시대, 평화교육을 묻다

 

“서열과 위계를 탈피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가르침이 권력이 되지 않는 배움은 없을까요?”

지난달 28일, 피스모모 창립 5주년 기념 국제 컨퍼런스가 열렸다. 피스모모는 ‘모두가 모두로부터 배운다’는 가치를 중심으로 2012년 설립된 평화교육 단체. 전쟁이나 통일, 안보를 이야기하는 소극적 차원의 ‘평화’를 넘어, 일상 속에 스며든 ‘구조적인 폭력’을 들여다보고, 평화의 관점에서 풀어가는 방식을 교육과 연결해 왔다. 서울시교육청과 공동주최한 이번 컨퍼런스의 제목은 ‘전쟁의 북소리에 춤추지 않는 교육’. 분단 상황에 놓인 한국 사회에서, 교육의 역할과 과제를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다. 

ⓒ피스모모

을지로 페럼타워에서 열린 이날 컨퍼런스에서, 문아영 피스모모 대표는 “세월호를 겪으면서 교육이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공포에 사로잡히기도 했고, 지난해 광장에서 촛불집회를 하면서 다시 위안을 얻기도 했다”며 “피스모모는 가르침이 권력이 되지 않고, 배우는 사람을 수동적인 위치에 두지 않는 배움이 어떻게 가능할지 고민해왔는데, 서열과 위계를 탈피한다면 세상이 달라질 것이란 믿음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이날 행사를 공동주최한 서울시교육청의 조희연 교육감은 “북한의 핵실험, 미국 트럼프의 대북 적대 정책 등으로 한반도 평화에 위기상황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평화와 교육을 생각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는 축사와 함께 컨퍼런스를 열었다. 조 교육감은 본인을 포함, 박정희 정권 유신세대 당시 ‘긴급조치 9호’ 피해자 6명이 국가로부터 받을 보상금을 모아 조성한 ‘아시아 민주주의 인권 기금’을 소개하며 “한국의 교육이 협소한 민족주의를 뛰어넘어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가도록 시각을 전환하면 좋겠다”고 했다.

‘비판교육학 세계적인 석학 마이클 애플 위스콘신대 석좌교수가 ‘교육은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라는 주제로 기조강연을 했다. ⓒ피스모모

이날 컨퍼런스에는 비판교육학 분야 세계적인 석학인 마이클 애플 위스콘신 대학교 석좌교수가 기조강연(‘교육은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을 맡았고, 이어 김엘리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공동대표와 이대훈 성공회대 NGO대학원 평화학 연구교수가 각각 ‘분단과 군사주의를 넘어서는 시민교육’, ‘평화교육의 관점에서 비판적 교육학 이해하기’라는 주제로 발제를 진행했다.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살아가는 한국 사회를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 비판적인 렌즈를 들이댔다. 컨퍼런스에서 나온 이야기를 세가지 꼭지로 정리했다. ☞마이클 애플 석좌교수 인터뷰 바로가기

#1. 분단사회, 한국을 움직이는 ‘적대감’

“일상을 보내는 공간이 ‘분단사회’라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전쟁이 끝난 게 아니라 멈추어 있고, 남과 북이 약 70년 동안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다는 상황은 우리에게 어떻게 작용하고 있을까요?”

김엘리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공동대표는 “분단은 일상적인 삶을 멈추게 하고, 관계를 단절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휴전선, 통일, 이산가족 같이 ‘나와는 크게 관련 없는’ 것 같은 분단 상황이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일상적인 삶과 무의식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 그는 “우리는 어려서부터 공습경보가 나오면 걷다가도 멈춰야 하고, 군대에 가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일상적 관계를 단절해야 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였다”며 생각보다 많은 부분에서 ‘분단’이 단절을 가져온다고 했다. 

“분단과 군사주의를 넘어서는 시민교육”에 대해 발제하는 김엘리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공동대표 ⓒ피스모모

남과 북의 단절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적대감’과 ‘군사주의’라는 키워드로 분단된 한국 사회를 설명했다. “남한과 북한 사이에 흐르는 ‘적대감’이 한국인의 무의식에서 분단을 지속하는 기제입니다. 또 적을 상정하고 적을 죽임으로써 내가 존재하는 ‘군사주의’ 문화가 한국사회 기저에서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어요. 언뜻 봐선 보이진 않지만 어디에나 흐르고 있어, 일상에 촘촘하게 스며든 것이죠.” 

그는 “안보교육, 통일교육, 전쟁을 기념하는 ‘전쟁박물관’ 등을 통해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계속해서 생성해 지속했고, 북한을 그린 다양한 영상이나 이미지에도 투영되어 왔다”고 했다.

“군사주의가 작동하는 나라에선 늘 ‘적은 누구’인지, ‘우리는 누구’인지 이야기 합니다. 적은 없어져야 할 악이고, 우리는 선하고 법과 평화를 준수하는 존재로 나뉘는 것이죠. 누군가는 ‘우리’로 받아들이고, 누군가는 배제합니다. 이런 적대감은 다른 곳으로도 흘러갑니다. 한국 사회가 다양한 ‘혐오’를 앓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여성, 성 소수자, 이주노동자, 종북세력…. 우리 사회가 적을 상정하게 되면, 불안감을 갖게 되고, 그건 다시 누군가를 의심하고, 적으로 상정하고 공격하는 기제가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2. “오빠가 지켜줄게”, 일상에서 얽힌 ‘군사주의’’가부장제’

“아이들의 ‘군사훈련 체험’, 교사나 부모가 아이에게 기합 주기, 선배들의 ‘엎드려뻗쳐’와 구타, 군대식 상명하복을 요구하는 교사나 선배와 상사….”

이대훈 성공회대 NGO대학원 평화학 연구교수는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면 군사주의가 촘촘하게 일상에 침투해서, 일상이나 학교에서도 가부장제와 결합한 군대의 언어가 넘쳐난다”며 “잘 들여다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을 세심하게 봐야 한다”고 했다.

이대훈 성공회대 NGO대학원 평화학 연구교수가 “평화교육의 관점에서 비판적 교육학 이해하기”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피스모모

“아이들에게 병영체험을 시키는 건 인권적으로 불법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선 불법이라는 인식조차 없고, 부모들이 나서서 아이에게 병영체험을 보내죠. 또 아이들이 고무줄 놀이를 하면서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하는 군가를 부르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어른들 노래를 따라 부른다고 단순하게 웃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사실은 군대와 학교·사회간의 접점이 큽니다. 전우의 시체를 넘는 정서가 대학 입시, 취업 서열을 강조하는 경쟁적인 사회 속에서 ‘학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경쟁하는 문화와 자연스럽게 연결되기 쉽습니다.”

그는 “‘오빠가 지켜줄게’ 라는 표현은 가부장제와 군사주의가 얽힌,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고유한 키워드”라고 했다. 만나면 나이를 묻고, 나이에 따라 어떤 언어를 쓰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수직적 권력’이 한국 사회에서는 강력하게 작동한다는 것. 집단에서 튀지 말아야 하고, 일사 분란해야 하는 것, 교사나 선배, 상급자의 말에 ‘복종’해야 하는 것도 군사주의와 가부장제의 교차점에 있다는 지적이다.

#3. ‘평화교육’,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기

새로운 접근은 가능할까. 분단상황인 한국에서, 평화교육은 어떤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 발표자들은 공통적으로 “익숙한 현실을 낯설게 바라봐야 한다”고 했다. 권력관계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성찰하면서 매 순간 쉽게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이날 기조연설을 맡은 마이클 애플 위스콘신대 석좌교수는 “교육자라면 다양한 사회현상에 대해 불편하게 느껴야 하고, 불편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비판적 교육’은 적용하면 답이 나오는 ‘기술’이 아니라 위계 없이 민주적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는 과정과 경험”이라고 했다. 이대훈 연구교수는 “한국에서는 더 많이 지식을 가진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 나이가 더 많거나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사람이 위계를 갖는데, 스스로 본인의 권력을 인지하고 끊임없이 낮추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배움 자체가 민주적일 때, 나이나 선후배를 따지지 않고 친구가 될 수 있고 제멋대로 서도 아름답다는 체험을 할 때, 그 상황이 훨씬 자유롭고 즐겁다는 걸 느낄 것”이라고 했다.

서로가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평화’를 닦는 중요한 기반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마이클 애플 석좌교수는 “백인 남성이자 이성애자로서 나는 늘 여성의 눈으로, 단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폭행이나 차별을 경험하는 이들의 눈으로, 가진 게 없고 가난한 이들의 눈으로 일상을 바라봐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김엘리 공동대표는 “서로가 취약하고 연결됐다는 걸 사유할 때, 적과 나라는 이원화, 적대감을 뛰어넘을 수 있다”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평화’와 ‘페미니즘’”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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