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우리 아이 몸무게 980g… ‘이른둥이’ 의료지원 사각지대에 놓이다

더나은미래x기아대책 ‘도담도담’ 캠페인

(2) 국내 이른둥이 실태 분석

재활치료를 받으려면 기본 6개월에서 1년을 대기해야 해요. 병원에 다니면서 그 다음 병원에 대기를 걸어두고, 또 옮겨갈 병원을 찾았죠.

정은진(가명·42)씨는 딸 쌍둥이 엄마다. 시험관 시술로 생긴 소중한 아기였다. 하지만 26주 만에 세상에 나온 첫째의 몸무게는 고작 980g. 폐가 약해 스스로 숨을 쉬지 못했고, 뇌병변 증세도 있었다. 2015년 1월, 그렇게 정씨의 고된 사투가 시작됐다. 정씨는 “호흡기를 달고 100일 만에 퇴원했는데, 이후 소아청소년과부터 내분비내과까지 5개 진료과로 정기 외래진료를 다녔다”며 “신생아집중치료실(NICU) 퇴원과 동시에 정부 의료비 지원이 끊겼고 시험관 아기라는 이유로 보험회사에서도 받아주지 않아 모든 비용을 홀로 부담해야 했다”고 말했다.

교정나이 27개월인 이른둥이 지훈(가명)이. 운동 신경이 약해 아직도 걸음마를 하지 못하고 몸집도 작다. ⓒ박혜연 기자

재활치료 과정은 캄캄한 터널 같았다. 시간당 6만~7만원으로 비싼 치료비도 부담이지만, 치료 과정에서 제대로 된 정보조차 얻기 쉽지 않았다. 정씨는 “수개월이 지나도 뒤집기를 못하는 아이를 데리고 외래부터 낮병동까지 재활병원만 3군데 넘게 전전했다”며 “아이가 너무 어리면 발달 상황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고 해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고 말했다. 그 사이, 상대적으로 건강하게 태어난 정씨의 둘째딸은 심리적 불안을 겪어야 했다. 정씨는 “태어나면서부터 외가에서 자란 둘째가 파괴적인 행동을 하고 심리적으로 불안정해, 지난 4월까지 심리 프로그램을 다녔을 정도”라고 말했다.

 

◇퇴원 후 찾아오는 경제적·심리적 부담

 

정씨와 같은 ‘이른둥이’ 가족들은 의료적 지원이 절실하다. ‘이른둥이’란 출생체중 2.5㎏ 미만 또는 37주 미만으로 태어난 미숙아를 뜻한다. 몸속 장기가 충분히 발달하기 전에 태어난 이른둥이는 생존에 필수적인 폐, 뇌, 심장, 면역체계 등 조직과 장기 기능이 합병증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배종우 강동경희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이른둥이는 조기에 의료적 개입을 하지 않으면 발달 전반에 영향을 받을 수 있어 적어도 생후 3년까지는 집중치료와 추적 관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른둥이 지원 체계에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시험관 시술로 3년 만에 지훈이를 얻은 이희경(가명·41)씨. 예정일을 두 달 앞두고 태어난 지훈이는 뇌수두증 진단을 받았다. 뇌에 찬 물을 빼고 관을 삽입하는 수술을 했다. 선천적으로 기관지가 약해 젖병도 빨지 못했다. 신생아집중치료실 신세를 지면서 치료비는 감당 못 할 수준으로 올라갔다. 정부가 이른둥이 의료비 지원의 일원으로(중위소득 180% 이하, 출생체중 2.5kg 미만)으로 500만원을 보태줬으나 역부족이었다. 이씨는 “시험관 시술 비용을 감당하느라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는데 국가 지원을 받고도 입원비와 수술비로 400만원이 더 들었다”며 “남편이 실직까지 한 상황에서 도저히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워 경기도 친정집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 놓인 것은 이씨만이 아니다. 대한신생아학회에 따르면, 이른둥이 한 명의 평균 의료비는 214만원. 1㎏ 미만으로 태어난 이른둥이의 경우 전체 3명 중 한 명이 최대 지원액인 1000만원을 초과하는 진료비를 혼자 감당하고 있다.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의 이찬우 생명지기 본부장은 “출생체중 1.5kg 미만 최대 1000만원을 지원하는 미숙아 의료비 지원기준은 지난 10년 동안 전혀 변화 없이 그대로다”며 “특히 한 해 3000여 명이 태어나는 1.5㎏ 미만 극소저체중아들의 의료비는 현재의 정부 지원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이른둥이 돌보는 국가 지원 체계 필요해

상황이 이런데도 현재 국내 이른둥이의 퇴원 후 관리를 돕는 시설은 서울 양천구 ‘이화-도담도담지원센터(이하 도담도담지원센터)’가 유일하다. 도담도담지원센터는 기아대책이 한화생명, 이화목동병원과 함께 2013년 설립해 운영하는 곳으로, 지역 내 1.5㎏ 미만 이른둥이에게 재활치료와 집단 놀이치료 및 음악치료, 부모교육 프로그램 등을 제공한다. 아기는 발달 상태를 체크하는 ‘베일리 검사’를 통해 단계별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부모는 같은 처지의 부모들과 교류하며 우울감을 떨치고 정보도 공유한다. 병원에서 태어난 이른둥이들은 아예 신생아집중치료실 안에서부터 음악치료와 부모 심리치료 등 조기 중재도 받는다.

지금껏 100여 명의 이른둥이 가정이 센터를 다녀갔다. 하지만 한정된 예산 탓에 현재 강서·양천구 지역 또는 병원 출생 이른둥이만이 혜택을 누린다. 이연 놀이치료사는 “부모의 우울이 아이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와 같은 프로그램이 정말 필요함에도, 이 같은 놀이 시설을 갖춘 곳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센터장인 박은애 이화목동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국내 재활치료센터가 많지 않고 소아재활을 하는 곳이 거의 없다”며 “한정된 예산 탓에 사실상 치료 인력들의 자원봉사로 운영되고 있어 타 병원 출생 이른둥이를 받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라고 했다.

이화-도담도담지원센터에서 부모와 함께 음악치료를 받고 있는 이른둥이 아기들 ⓒ박혜연 기자

반면, 일본은 지역 보건소와 병원, 지자체 행정단위가 하나의 통합 체계 안에서 이른둥이를 돌본다. 출산과 동시에 아이의 정보가 데이터베이스에 공유되고, 최소 3세까지 지역 행정보건사(간호사)가 가정을 방문해 아이 상태를 확인하고 부모 상담을 한다. 이른둥이 성장에 필요한 기간만큼 금전적, 의료적 추가 지원도 제도화 돼 있다. 박은애 교수는 “국책사업으로 도담도담지원센터 같은 시설을 전국으로 확장시키는 데는 인력과 예산의 한계가 있다”며 “일본처럼 정부 및 지자체가 각 지역 보건지소를 이른둥이 지원 거점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통합적인 이른둥이 지원체계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목소리다. 배종우 교수는 “연간 1000명이 건강한 이른둥이로 성장한다면 연간 1조2500억~3조5000억원 경제 가치가 창출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임신-분만-신생아 연계관리 인프라 구축으로, 그동안 보호자에게만 맡겨뒀던 이른둥이 지원을 국가 의료의 한 시스템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찬우 기아대책 생명지기본부장은 “현재 우리나라 이른둥이 양육 체계는 외래진료비 지원에서 ‘서울아기 건강 첫걸음 사업(서울시의 가정 방문 보건 서비스 사업)’으로 가는 지역사회 돌봄의 길목에 있다”며 “모자보건법 개정을 통해 최소한 서울시 사업 수준이라도 전국으로 확대한다면 이른둥이를 위한 건강한 사회적 안정망(Social Safety Nets)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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