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휠체어 타고 스위스 산맥 오른 KBS 최초 여성장애인 앵커, “국내 어디든 휠체어로 갈 수 있도록”

홍서윤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대표 인터뷰

 

홍서윤(31)씨의 수식어는 여러 개다. KBS 최초의 여성 장애인 앵커, 문재인 정부 국민인수위원회 국민소통위원, 그리고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대표까지. 이중 그녀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은 단연 ‘장애인 여행가’다. 홍씨는 2014년 스위스를 시작으로, 한 달간 혼자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프랑스 등 7개국을 여행했다. 기차와 유람선, 심지어 스위스 산맥까지 휠체어를 탄 채 직접 올랐다. 한국에서라면 꿈도 못 꿨을 일. 다시 한국에 돌아와 왠지 모를 우울감에 빠진 그녀를 움직인 건 한 가지 의문이었다.

왜 우리나라에선 휠체어로 산을 오르고, 유람선을 타는 일이 그리 어려울까?

이제 홍씨는 장애인뿐 아니라 누구든 ‘접근 가능한 여행(accessible travel)’을 연구한다. 늘 보호자를 동반해야 하고, 휠체어로 다닐 수 있는 여행지가 거의 없는 ‘장애인 여행 불모지’ 대한민국을 ‘무장애 여행지’로 바꿔보려 한다. 그녀가 말하는 여행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국민인수위 광화문 1번가의 해단식이 열린 지난 12일, 그녀를 광화문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났다.  

지난 5월부터 국민인수위원회 소통위원으로 활약 중인 홍서윤씨.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광화문 1번가가 오늘 폐단식이네요. 국민소통위원으로 어떤 활동을 했나요.

“지난 5월부터 50일 동안 국민에게 정책 제안을 받았고, 남은 50일은 제안해주신 정책들을 잘 분석하는 일을 해요. 저도 정책을 제안했고, 정책 제안을 망설이는 분들의 참여도 유도하고 열린포럼도 진행했죠. 시민이 원하는 정책과 정부가 원하는 정책, 그 중간에서 틈을 줄여주는 역할을 했다고 보면 돼요.”

―직접 제안한 정책은 어떤 것이었나요.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 정책’을 제안했어요. 우리나라는 모든 환경이 ‘신체가 건강한’ ‘성인 남성’ 위주로 만들어져 있어요.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장애인도, 노인도, 어린이도, 여성도 많거든요. 그들을 고려해 모두가 편한 환경이 돼야 한다는 게 유니버설 디자인의 기본 전제죠. 한 가지 예로, 왜 지하철이나 버스 손잡이의 높이는 다 똑같나요? 관광지에 있는 망원경은 왜 일렬로 서 있을까요? 심지어 계단도 있어요. 사실 (높이를) 줄여도 되거든요. 무엇을 하나 만들어도 ‘다양한 이용자가 있다’를 기본 전제로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습니다.” 

앵커답게 똑 부러지고 당당한 목소리의 홍씨지만 ‘그날’만은 아직도 날짜까지 생생히 기억한다. 10년 전인 1997년 7월 25일, 초등학교 여름방학이 시작된 바로 다음 날. 이른 아침 수영장을 간 홍씨에게 갑작스러운 마비 증상이 찾아왔다. 불과 10세에 찾아온 불의의 사고였다. 그때부터 휠체어를 탔다. 척수 신경이 손상돼 척수장애 중에서도 5%에게만 나타난다는 원인 미상의 ‘횡단성 척수염’ 진단을 받았다.   

사고 이후 10대는 어땠나요. 

“(사고 후) 심오한 사고를 많이 했죠. 철학적인 정체성 고민도 많이 했고요. 내가 장애를 가진 채로 얼마나 더 살지 모르는데 무엇을, 왜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고요. 다행히 그 시기에 좋은 선생님과 친구들을 많이 만났어요. 특히 등교할 때마다 인사해주시는 상담선생님이 계셨는데, 제 고민을 짐작했다는 듯 제게 ‘장애는 비정상이 아니라, 좀 불편한 것이다’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 말이 지금까지 힘이 된 게 아닌가 해요. 지금도 삶의 굴곡마다 은사님의 말을 생각하죠.” 

당시 장래희망도 있었나요. 

“음, 초등학교 때는 글짓기를 열심히 했어요. 동시 쓰는 걸 좋아해서 동시 대회도 나갔고요. 중학교 때는 당시 유행하던 엽기소설, 잔혹동화 등을 정말 많이 읽었던 기억이 나요(웃음). 고등학교 때 ‘사회 제도’와 관련된 것들, 제 생활과도 밀접한 사회학, 사회복지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실제 대학도 사회복지학과에 지원했죠. 어릴 때 저는 시장에서 구걸하는 분들이 보이면 꼭 10원짜리 동전 하나라도 건네고, 없으면 엄마한테 받아서라도 주는 아이였대요. 타인에 대한 관심이 확실히 있지 않았나 싶어요.”

―사회복지는 잘 맞았나요.

“사람에 대한 공부가 재밌고 잘 맞았어요. 한편으로는 왜 ‘환경’에 대한 얘기는 안 하지, 하고 갈증이 나기도 했죠. 지금은 한양대에서 관광학과 박사과정 중이에요. 여행이 단순히 경치구경만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 나라 문화를 경험하고, 내면적 발전도 하고, 휴양을 하다 올 수도 있는데, 관광이란 주제 안에 이 모든 것이 포함돼요. 저는 장애인뿐 아니라 불편이 있는 모든 관광객, 노인들이나 알러지 있는 사람들, 소수자들까지 이런 다채롭고 가치 있는 것들을 누릴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저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세계적인 트렌드이더군요. 유럽이나 미국, 호주 등 선진국들은 훨씬 발전했고, 중국도 이미 시작했고요. 우리는 논의중인 단계이고 실질적 실행 단계로 가고 있는데 아직은 부족하죠.”

광화문 1번가에서 경과보고 중인 홍서윤씨 ⓒ뉴시스

 

8의 노력과 2의 운, 앵커에서 장애인 여행가까지

 

사람과 제도에 대한 관심으로 사회복지의 길을 선택한 홍씨는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과정도 밟았다. 그러다 2013년, 돌연 TV 뉴스 앵커가 됐다. 무려 104대 1의 경쟁률을 뚫고 KBS 최초 여성장애인 앵커에 합격한 것. 이후 그녀는 2년 동안 KBS ‘뉴스12 생활뉴스’를 진행했고, 현재는 KBS 라디오 프로그램 ‘내일은 푸른하늘’에서 만 3년째 장애인도 갈 수 있는 여행지를 소개하고 있다.

―2013년에는 KBS 최초 여성장애인 앵커로 합격했는데. 어떻게 갑자기 앵커의 길을 가게 됐나요.

“어머니 소원 들어 드리기 위해서였죠(웃음). 한창 석사 하면서 바쁘던 때인데, 어디선가 공고를 보고 지원해보라 하시더라고요. 바쁘니까 흘려들었는데, 또 전화를 하셔서 단호하게 ‘죽은 사람도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지원서 하나 내는 게 힘드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서류라도 내보자 해서 썼는데 합격을 했어요. 제 모토가 또 ‘모든 일에 최선을 다 하자’거든요. 새벽 3시까지 밤새 자기소개서를 뜯어고쳐서 냈죠. 면접 때는 공부하던 거 다 팽개치고서 아나운서였던 친구 도움도 받아가며 일주일 속성으로 준비해 갔고요. 예쁘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8의 노력과 2의 운이라고 할까요.”  

―발음이 확실히 남다르네요. 앵커로 일하며 느낀 점이 있다면.

“크든 작든 미디어에 장애인이 나와서 프로페셔널한 일을 한 거잖아요. 그 자체가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해요. 이미지로 소비되기도 했지만, 일의 가치를 따졌을 때 충분히 소비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또 앵커 하면서 대외적으로 장애인 분들을 만나면 ‘귀감이 됐다”잘 보고 있다’ 하면서 참 좋아해주시더라고요. 단 한 명에게라도 좋은 영향을 끼쳐 그가 변할 수 있다면 보람된 일이죠. 라디오는 전에 있던 분이 그만두시면서 우연히 제가 이어받았는데 2014년부터 3년 넘게 하고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다른 분들한테 알릴 수 있는 게 의미 있어요. 청취율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들을 사람은 듣겠죠(웃음). 이렇게라도 하나씩 알려 드린다는 게 좋은 거 같아요. 저도 못 가본 곳을 더 다니면서 알려줄 수 있는 게 많아지고요.”

 

홍씨가 이제껏 다닌 국내 여행지를 표시한 지도. 기자가 가본 곳들 보다 훨씬 많다. ⓒ홍서윤

여행 이야기가 나오자 홍씨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휴대폰 속 사진 하나를 띄워 보여줬다. 이제껏 다녀온 국내 여행지들을 표시해주는 지도였다. 홍씨는 “원래 여행을 좋아해 가족이나 친구들과 일본, 홍콩, 동남아 등을 여러 번 다녔다”며 “하도 많이 다니다 보니 노하우가 쌓여 국내에서도 이제 어디 가면 화장실이 있고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이 있는지 꿰고 있다”고 했다. 

―노하우 중 하나만 공개해주세요.

“장애인 분들은 특히 화장실 같은 편의시설이 중요해서 고민을 많이 합니다. 대표적으로 갈 수 있는 곳은 공공기관이 있어요. 7~8년 전에는 상황이 열악해서 그 지역 가장 큰 병원을 찾아가곤 했는데 이제는 웬만한 공공기관에는 휠체어도 들어갈 수 있고 화장실도 있어요. 또 하나, 시골은 기본적으로 좌식 식당이 대부분이라서 여행 중 식당을 찾아야 할 때 저는 포장마차 같은 기사식당을 찾아요. 객관적 통계는 아니지만 그런 식당은 기본적으로 입식이거든요.”

―유명 맛집을 가는 노하우도 있나요.

“그건 저도 아직 방법을 못 찾았네요. 장애인에게 ‘맛집’은 없어요. 씁쓸하죠. 개인 사유지에 법을 통해서 강제로 바꿔달라고 하는 것도 무리고요. 차차 변화하긴 하겠죠.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어요.”

―7개국 해외여행은 훨씬 만만치 않았을 것 같아요. 어떻게 준비했나요.

“세 가지였어요. 1) 코스 짜기 2) 티켓 예매하기 3) 비행기, 호텔 예매하기. 숙소 찾기가 난제였죠. 그 도시에서 움직이기 편한 곳을 잡아야 하잖아요. 예산 안에서 충당 가능한지 봐야 하고, 휠체어가 갈 수 있는지도 확인해야 하니까요. 그러다 보니 전체 숙소가 100개여도 갈 수 있는 곳이 5곳밖에 안 남더라고요. 이걸 최종 3곳으로 압축해서 메일을 보내요. 휠체어로 이용 가능한 시설이 있는지, 여행 기간에 묵을 수 있는지, 요금까지 확인해야 하죠. 그래도 유럽은 호스텔, 게스트하우스까지 장애인 편의시설이 꽤 잘 돼 있어요.”

―우리나라에선 꿈도 못 꿀 일이네요.

“우리나라 게스트하우스에도 장애인 시설이 몇 군데 있긴 해요.  호스텔은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곳이 한군데 있긴 한데, 장애인 객실이 따로 분리돼 있다는 게 마음에 걸려요. 유럽의 경우 호스텔은 장애인 편의시설이 있어도 별도 공간으로 분리돼 있지 않고 일반 화장실처럼 장애인 화장실만 따로 있어요. ‘장애인 객실’이란 문패도 없이 그냥 ‘501호’죠. 사소한 것 같지만 사람들이 무의식적인 인식까지 배려한 거예요. 우리나라 청소년은 수학여행을 가면 장애인 객실이라고 이름 붙여진 곳에서 친구들과 떨어져 혼자 묵어야 해요. 차라리 유니버설 객실, 다양성 객실 등 다른 언어로 표현됐다면 어땠을까요? 우리나라 장애인구가 250만에 달하는 데도, 아직도 장애인이란 명칭에서 오는 ‘나와는 다르다’라는 인식이 아직도 커요.” 

스위스 융프라우 산맥에서 패러글라이딩에 도전한 홍서윤씨.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유럽,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장애에 대한 인식이 한국과 유럽의 유일한 차이는 아닌 듯하다. 유럽 7개국을 여행하고 돌아와 쓴 책 <유럽,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생각비행)에서 홍씨는 유럽에서 ‘단 한 번도 이동 방법을 걱정하지 않았다’라고 썼다. 그녀는 “‘휠체어를 한번도 벗어나지 않고 백록담을 오를 수 있다’란 명제는 국내에서는 말이 안 되지만 유럽은 가능하다”며 “유럽은 ‘남녀노소 누구나 산에 오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가 돼 있다”고 설명했다.

―유럽은 장애인 편의시설이 그렇게나 잘 돼있던가요? 심지어 스위스에서는 단 한 번도 이동 방법을 걱정하지 않았다고.

“교통이 정말 편했어요. 고속도로에도 휠체어 리프트가 있을 정도니까요. 유럽은 비장애인이 기차나 철도를 탈 수 있으면 당연히 장애인도 탈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 하에 모든 걸 만들어요. 근데 우리나라는 광역 이동이 불가능한 상황이에요. 예를 들어 목포에서 평창 가려면 장애인은 무조건 콜택시를 이용하거나 KTX로 서울에 왔다가 다시 평창으로 가야 해요. 답이 없죠. 그게 안된다면 저상버스가 더 많이 생겨야 하고, 아니면 철도라도, 철도가 안 깔리면 시외버스, 고속버스라도 탈 수 있게 해야 해요. 현재 철도, 비행기를 제외하고 대중교통으로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 시스템이 거의 0일 정도로 열악하죠. 유럽에서 느낀 것은 이동수단뿐 아니라 모든 탈 것에 대한 평등이 적용된다는 거예요. 케이블카, 산악열차, 트램, 비행기, 철도, 저가 항공이든 상관없이, 누구나 탈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네덜란드에서는 장애인 여행을 도와주는 사회적기업도 만났는데.

“암스테르담에서 사회적기업 Accessible Travel Netherlands(네덜란드의 접근 가능한 여행)를 만났어요. 유럽은 생각보다 장애인 여행가들이 활발히 움직여요. 국가 이동이 수월하기도 하고, 스위스 등 일부 나라는 바우처로 장애인 여행에 현금을 지불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상대적으로 네덜란드는 국가에서는 장애인 여행을 신경 안 쓰는데, 이런 일을 사회적 기업이 하고 있더라고요. 유럽의 ‘장애인 접근 가능한 관광 네트워크’에서 이곳을 지원하니 큰 기업들이 따라붙으면서 같이 키워나는 거예요. 접근 가능한 관광을 작은 사회적기업에만 맡기는 게 아니라 큰 회사들이 동등한 관계 속에서 협력하는 거죠. 사회공헌의 차원에서요. 굉장히 부러웠어요. 암스테르담이 원래 자전거 도시로 유명한데, 이곳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가 탈 수 있는 자전거도 직접 타 볼 수 있었어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휠체어로 탈 수 있는 자전거에 타 있는 홍서윤씨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어느 책에선가 ‘여행은 인간의 독선적 아집을 깬다’라는 구절을 본 적이 있다. 여행은 내가 사는 공간을 초월함과 동시에 틀에 갇힌 시각에서 벗어나게 하는 힘이 있다. 내가 스위스에서 받은 문화 충격은 내 가치관 전체를 흔들어놓았다. 자유로운 여행을 경험해본 장애인이 얼마나 적극적인 삶을 계획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 땅에서도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여행을 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생겼다. <유럽,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page.197

유럽에서 ‘접근 가능한 여행’을 몸소 체험하고 돌아온 홍씨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여행을 했으면’ 하는 작은 바람으로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를 꾸려가고 있다. 여전히 국내 장애인 여행 인프라는 거의 전무한 상황. 스스로 연구소의 유일한 직원이자 대표인 홍씨는 ‘화전(火田)’을 일구는 마음으로 그 기틀을 닦아가고 있다.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에서는 어떤 활동을 해왔나요.

“작년엔 몇 가지 실험들을 해봤어요. 록 페스티벌도 가보고 캠핑도 시도해봤는데, 접근 가능한 관광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굉장히 많은 제도적 장벽들을 만났어요. 예를 들어, 서울 관광을 한다 쳐도 서울에서 발행하는 관광지도 안에 장애인 관련 정보가 전무해요. 장애가 있는 외국인 관광객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겠죠. 이렇게 조금만 관심을 주면 변할 수 있는 사소한 것들부터 변화시키는 것이 급선무예요. 장애인 여행과 관련된 활동을 하는 분들은 저 말고도 많아요. 전 이걸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보고 싶은 것이죠.”

―앞으로 계획 중인 일은.

“우리나라의 접근 가능한 관광분야는 거의 ‘화전’, 돌밭 수준이에요. 숫자로 나오는 제대로 된 통계 데이터도 없고요. 돌멩이를 치우는 작업이 급선무란 생각에 장애인 여행사, 여행가, 단체 등이랑 네트워킹을 쌓으면서 자료를 모으고 체계화하는 작업 중이에요. 하반기 때는 구체적인 자료를 만들 계획이에요. 예를 들어, 장애인 여행 관련 다양한 분들이 가진 데이터가 많아요. 이중 중복되는 걸 확인해서 기준이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있어요. 정부에서도 많이 얘기하고 있긴 한데 실제 다녀본 사람들의 경험과 정부가 가진 데이터 간의 괴리가 커요.”

―누군가 접근 가능한 여행 분야에 뛰어든다면.

” 장애인, 노인 여행은 기본적으로 비장애인 여행보다 비용이 많이 드는데도 ‘창업만 하면 잘 될 거다’, ‘여행 한번 보내주면 되는 거 아니냐’ 하며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기업들은 돈을 얼마 줬고, 몇 명을 여행 보냈다 식으로 양적인 측정을 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접근 가능한 관광도 일종의 산업이고 복잡해요. 특히 장애인 관광은 여행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시작부터 끝까지 전담하고 확인하는 섬세한 정서적 터치가 필요하죠. 그래서 전 하루 이틀 나들이 지원보다는 ‘내가 원하면 내가 떠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을 같이 고민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접근 가능한 관광지들을 지도화한다거나, 시설 투자, IT 온라인 정보나 차량, 숙박 등을 지원하는 것도 도움이 되겠죠. 관광 또는 복지 분야에 연구비를 줄 수 있고요. 지금 당장 100명이 가는 것도 중요할 수 있지만 투자를 통해 미래에 1000명이 갈 수 있다면 훨씬 의미 있는 일이겠죠.”

―계획을 넘어 더 멀리 그리는 큰 그림이 있나요.

“산업 측면이나 제도 면에서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관광이 가능하면 교육도 되고, 문화도 되고, 개인적 경험은 말할 것도 없고 여가까지 가능해요. 다른 지역에서 내가 원하는 만큼 보고 오면, 그것이 궁극적으로 한 사람의 삶을 바꾸는 일이 될 수 있어요. 저는 여행이 좋은 예술작품 같다고 생각해요. 한 사람이 어딘가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돌아와서 그걸 내 걸로 만들어서 다시 개인적, 사회적으로 환원하게 된다면 사회가 아름답게 변하겠죠.”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앞에서 포즈를 취한 홍서윤씨.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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