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음식물 쓰레기는 줄이고, 포장 쓰레기는 늘리고?

쿠킹박스의 딜레마, 직접 체험해보니

‘식스레시피’의 쿠킹박스 내용물 ©6Recipe

상자를 열어보니, 식재료들이 가득했다. 쌀 100g, 다진 소고기 100g, 콩나물 170g, 비빔장 100g, 참기름 9ml, 조미김 4장. ‘소고기 콩나물밥’ 2인분 재료들이다. 상자 속엔 쉽게 설명된 레시피도 들어 있었다. 한 줄 한 줄 읽어내려가며 식재료를 도마 위에 올렸다. 레시 피대로 콩나물과 쌀을 씻어 밥을 짓고, 참기름에 고기를 볶았다. 콩나물밥에 볶은 고기와 부순 김을 얹고 비빔장을 곁들이자, 20분 만에 소고기 콩나물밥이 완성됐다. 간편함, 신속함으로 승부하는 ‘쿠킹박스’의 매력을 느끼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쿠킹박스’는 셰프의 요리를 집에서 쉽게 재현할 수 있도록 레시피와 식재료를 배송해주는 서비스다. 미국에서는 이를 ‘밀키트(meal-kit)’라 부른다. 최근 전세계 트렌드로 떠오른 쿠킹박스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자, 국내 한 쿠킹박스 업체의 메뉴를 주문해봤다. 6단계로 단순화된 레시피를 보며 차근차근 만들었다. 콩나물, 밥, 고기 등 손질‧계량된 재료들을 ‘조립’했을 뿐인데 맛도 모양도 그럴 듯한 한 끼 식사가 차려지니, 요리가 갑자기 만만해진다.

음식물 쓰레기, ‘0(제로)’?  

‘테이스트샵’ 쿠킹박스 이미지컷 ©Tasteshop

요리할 때 가장 고민되는 점은 바로 ‘음식물쓰레기’. 반면 쿠킹박스로 요리할 땐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재료들이 필요한 분량만큼만 배달되기 때문에, 해당 재료들을 받은 만큼 남김없이 쓰면 된다. 남은 콩나물이 냉장고에서 시들어가다가 결국 버려지거나, 김이 찬장에서 눅눅해져 애물단지 될 일이 없으니 홀가분하다. 

대신 다른 쓰레기가 잔뜩 나왔다. 쌀이 담겨 있던 지퍼백, 다진 소고기가 들어있던 진공포장 비닐팩, 작은 아이스팩, 은박 보냉팩, 콩나물이 들어있던 사각 플라스틱팩과 방습제, 비빔밥용 고추장이 들어있던 비닐팩, 참기름 소포장 비닐팩 두 개, 조미김 비닐포장지, 재료들을 전부 담은 비닐봉투, 큰 아이스팩 3개, 에어캡 그리고 스티로폼 상자까지. 소고기 콩나물밥 2인분이 남긴 쓰레기였다.

이 중에서 재활용이 되는 쓰레기는 많지 않았다. 비닐, 플라스틱은 분리수거를 통해 재활용하는 소재들이지만 소고기‧참기름‧조미김‧비빔밥용 고추장 등이 담겼던 비닐팩은 기름기가 묻어 재활용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최근 스티로폼의 재활용이 어려워져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는 지역이 늘고 있는 추세. 수질오염 발생 물질로  분류돼 재사용하지 않는 한 그대로 일반 쓰레기가 되는 아이스팩도 문제다.

소고기 콩나물밥 2인분이 남긴 포장쓰레기 ©한승희

현재 국내 쿠킹박스 업체들이 식재료 포장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위생’과 ‘신선도 유지’다. 때문에 2중, 3중의 포장 과정이 필수적이다. 재료 대부분을 비닐팩, 플라스틱 용기 등 일회용 포장재에 개별 포장한 후 별도의 비닐봉투에 담아 에어캡으로 감싼다. 이를 아이스팩을 채운 스티로폼 상자에 넣고 냉장 상태가 최대한 오래 지속되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환경오염’과 ‘자원 낭비’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십상이다. 국내 쿠킹박스 업체인 매직테이블(Magic Table) 작년 9월부터 새벽 배송에 한해 스티로폼 상자와 아이스팩을 수거하는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지만, 서비스 대상이 확대되거나 다른 업체로 확산되지는 않고 있다. 주요 쿠킹박스 업체들에게 포장 쓰레기 배출 문제에 대해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는지 물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

재활용 포장재 자체 개발, 특허 출원까지… 미국 쿠킹박스 업체들의 앞서가는 친환경 정책 

해외는 어떨까. 쿠킹박스 시장이 1조7000억 원 규모로 성장한 미국에서도 쿠킹박스의 어마어마한 포장 쓰레기가 큰 숙제다. 이에 업체 대부분이 선택한 해결책은 소비자들에게 포장재 재활용을 장려하는 것. 이를 위해 자사 웹사이트에 ‘포장재 재활용 방법(How to recycle)’ 페이지를 별도로 마련, 포장재의 구체적인 재질‧재활용 가능 여부‧분리 배출 방법 등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선 바스켓’의 포장재들 ⓒSun Basket

자체적으로 재사용 포장 상자를 개발한 업체도 있다. 2016년 설 립된 프레시렘(FreshRealm)은 “우리는 좋은 음식을 사랑하지만 종이상자는 싫어합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베셀(Vessel)’이란 이름의 배송 상자를 고안해 특허까지 따냈다. 폴리우레탄으로 만들어진 ‘베셀’은 아이스팩 없이도 0~5℃를 유지할 수 있도록 특수 제작됐으며, 수거 및 소독 단계를 거쳐 재사용된다. 일회용 포장대를 친환경 소재로 만들어진 포장재로 대체하는 업체도 늘고 있다. 그린 셰프(Green Chef) 스티로폼 대신 삼베, 재생 면화, 옥수수 전분으로 만들어진 신소재 단열재를 사용하고 있고, 플레이티드(Plated)는 에어캡 대신 삼베 혹은 재생 데님으로 만든 완충재를 쓰고 있다.  바스켓(Sun Basket) 98% 재생지로 된 카드보드 상자와 페트병 재생 섬유로 만든 단열재, 물 98%와 Non-GMO 면화 2%로 구성된 아이스 팩을 사용 중이다.

간단하고 맛도 좋은 쿠킹박스. 다른 메뉴는 어떨까 궁금해졌다. 그러나 이내 망설여진다. 비닐팩, 아이스팩, 에어캡, 스티로폼 등 요리 후 남는 재활용되지 않는 포장재들을 떠올리니 그렇다. 편리함, 맛뿐 아니라 환경까지 생각하는 쿠킹박스가 등장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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