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쉼터 아이들은 모두 내 딸… 평범한 가정환경 보여주려 일부러 부부싸움도 했죠”

어울림청소년쉽터 김인자 소장 부부

‘잃어버렸다 찾은 내 딸이라면 포기할 수 있겠나?’

어울림청소년쉼터 김인자(55) 소장이 쉼터를 시작한 2004년 한 아이를 구제불능이라 판단하고 기대를 접으려 할 때 내면에서 들려온 목소리였다. 당시 14세였던 아이는 학교도 다니지 않은 채 정신지체 어머니와 여관에서 살다가 어머니가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하면서 쉼터로 오게 됐다. 미취학 아동만큼의 학업수행력도 없던 아이를 초등학교 6학년에 편입시키고 별도로 개인 지도를 하는 사이 김 소장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됐다.

어울림청소년쉼터 서재에서 김인자 소장 부부가 함께하고 있다.
어울림청소년쉼터 서재에서 김인자 소장 부부가 함께하고 있다.

“그런 저 자신도 너무 싫은 거예요. 아이가 나아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건데, 그걸 못 했던 거죠. 내 딸이라면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하고는 펑펑 울었습니다. 그 이후 쉼터의 모든 아이를 내 딸로 생각하고 안정을 찾고 성장하기까지 인내하고 기다리게 됐습니다.”

서대문구 어울림청소년쉼터는 가정 해체, 폭력, 학대, 방임 등으로 돌아갈 가정이 없는 여자 청소년들이 살고 있는 중장기 쉼터로, 우리나라에 있는 90개 청소년쉼터 중 유일하게 민간 개인 운영 시설이다. 어울림쉼터에 있는 아이들과 근무자들은 모두 쉼터를 ‘집’이라고 부른다. 호칭도 큰엄마, 큰아빠, 딸이다. 아이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쉼터에 가정의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김 소장의 의지와 그를 받아들인 아이들의 마음이 낳은 결과다.

김 소장은 여느 엄마와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중년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아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미니홈페이지도 이용하고 채팅도 한다. 연락이 잘 되지 않을 때 댓글을 달거나 채팅을 하면 전화를 받지 않던 아이들도 반응을 보이고 먼저 연락하곤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일 저녁 가족 모임 시간을 정해 두고 모두 함께 둘러앉아 갖가지 얘기를 나눈다. 아이들 앞에서 부부간 애정 표현도 하고, 싸움도 한다. 그러면서 부부 관계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적절한 방식으로 ‘싸우는 법’도 알려 준다. 표준적인 가정환경을 경험하지 못해 부모역할을 배울 기회가 거의 없었던 아이들에게는 하나하나가 공부가 된다.

일상적인 가정생활 외에 특별한 활동도 있다. 어울림쉼터는 한 달에 한 번씩은 반드시 아이들과 함께 등산을 가고, 일 년에 한 번씩은 지리산 종주를 떠난다. “늘 낙오된 인생으로 성취감이라는 걸 느껴 볼 수 없던 아이들에게 성취감을 맛보게 해 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라는 게 김 소장의 설명이다. 한번은 지리산 종주가 한 아이의 삶을 바꿔놓기도 했다. 집이 워낙 가난했던 아이가 빨리 자격증을 취득해 바로 취업하겠노라고 말하곤 했는데, 갑자기 “나도 대학에 가면 안 돼요?”라고 물었다. 아이의 고백은 “새벽에 지리산 정상에 올라 해 뜨는 모습을 보고 내려오니 세상에 내가 못 할 일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이후 그 아이는 하루 세 시간씩만 자면서 공부해 명문대에 합격했고, 현재는 성적우수 학생으로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다. 개인이 운영하는 만큼 어울림쉼터는 자신들의 철학대로 아이들을 키워낼 수 있지만, 충당해야 할 비용 또한 크다. 처음 시작할 때는 살고 있던 23평 아파트를 팔고 평생 모은 재산을 털어 시작했고, 그 후에는 남편 조씨가 그래픽 디자인 일을 해서 번 돈으로 비용을 마련했지만 지금은 수익이 없는 상태다. 주변의 지인들이 알음알음으로 부부의 활동에 감동해 개인적으로 기부를 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운영비 부담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형편이 어렵지만, 김 소장 내외는 요즘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있다. 18세가 되어 쉼터를 떠나야 하는 아이들이 성인으로서 2~3년가량 자립훈련을 받을 수 있는 별도의 자립관을 만드는 일이다. 법적으로 성인이 됐다고 무조건 독립시킬 경우 학생으로서 받았던 교정 효과가 어른으로서 속한 사회 환경에서는 유효하지 않아, 다시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어려운 상황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기 때문이다. 김 소장은 “이번에 고등학교를 마치는 아이가 세 명이라 마음이 조급하다”며, “방 두 개만이라도 있는 공간만 있으면 인력은 자체적으로 해결하면서 어떻게라도 운영해 볼 텐데…”라고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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