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목)

[기고] “마음 움직이고 사회 변화시키는 문화예술교육은 미래 비전이다”

방선규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정책관

미상_사진_문화예술교육_방선규_2011지난 8월, 베네수엘라 엘 시스테마의 수전 시먼을 만났을 때 들은 이야기이다. 엘 시스테마로 일생을 보낸 그녀에게 가장 기억나는 제자는 ‘거리의 아이’였다. 열 살 남짓한 소년은 이미 폭력 집단과 관련되어 있었다. 악기를 주며 오케스트라 활동을 권하는 그녀에게 “열다섯 살이 되면 나는 총에 맞아 죽어 있을 텐데 이런 게 무슨 필요 있느냐?”고 반문했다. 우여곡절 끝에 오케스트라 활동에 재미를 붙인 그 아이는 지금은 악기관리사라는 직업을 가진 어엿한 사회인이자 한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고 한다.

1975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허름한 차고에서 11명의 어린이로 시작한 ‘오케스트라의 꿈’은 오늘날 전국 35만 명의 청소년이 참여하는 ‘꿈의 오케스트라’로 실현되었다. 예술은 삶을 바꾸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다. 이를 단순한 수사가 아닌, 30여년의 역사로 증명해낸 것이 바로 엘 시스테마이다. 오케스트라 속에서 청소년은 소속감과 책임감을 익혔고, 연주를 완성하며 작은 성취감을 쌓아갔다. 서로 다른 악기로 화음을 연습하고, 다른 이의 연주를 들으며 자신의 순서를 기다려야 하는 오케스트라는 그래서 곧 ‘작은 사회’다.

2006년부터 우리나라에서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를 꾸준히 후원해온 하트하트재단의 신인숙 이사장이 회상하는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아들보다 하루 늦게 죽는 것이 소원이었던 장애아의 부모가 무대 위의 오케스트라 연주자가 된 자식의 모습을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모습을 보았을 때”라고 한다. 오케스트라의 경험으로 사회성과 자신감을 회복한 장애아가 우체국에 취직하기도 했고, 부모님을 모시고 해외공연을 가며 효도를 하기도 했다.

엘 시스테마는 단순한 자선사업이 아니다.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비전과 창의적인 해결방법을 가지고 전략적으로 설계된 사회참여 활동인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특성은 기업의 지속가능한 책임경영이 가져야 하는 덕목과 그대로 일치한다. 최근 기업은 단순기부에서 나아가 기업의 핵심역량을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한다. 경영전략의 대가인 마이클 포터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잘나가는 기업이 보유한 방대한 자원, 전문성과 관리능력을, 잘 이해하고 있고 관련 있다고 생각하는 문제들에 적용할 때 그 기업은 어떤 연구소나 자선조직보다도 사회적 선(善)에 훨씬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기업에도 사회공헌이란 단순한 후원 책임이 아니라 비전의 공유와 조직 성장, 차별화를 창출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기업이 문화예술을 후원하는 메세나는 흔히 경영자의 취미생활이나 엘리트 마케팅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예술은 본래 감정이입과 공감을 통하여 마음을 움직이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촉매제이다. 기업은 미래의 비전을 가지고 지역의 어린이에게 꾸준한 예술체험교육을 지원하며 영향력 있는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다. 영업시간이 끝난 대리점을 주민을 위한 인문학 강좌의 공간으로 개방하여 지역사회와의 유대관계를 강화할 수 있다. 학교 밖의 청소년에게 미디어교육을 운영하여 그 결과물이 임직원에게 새로운 시각과 영감의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려운 경제 여건에서도 문화예술교육 분야의 기업 후원 규모는 2005년 59억원에서 2010년 346억원으로 5년 사이 6배 가까이 확대되었다. 물론 문화예술교육은 정부가 법과 제도, 예산을 통해 정책 지원을 지속적으로 확대해가고 있는 분야이다. 하지만 정부는 솔로 연주자가 아니다. 사회를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는 데에는 기업과 시민사회 등 다양한 분야의 하모니가 필요하다. 기업은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공유하며 각자의 악기를 가지고 합주에 참여할 수 있다. 그래서 오케스트라는 ‘큰 사회’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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