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언어 장벽 무너뜨리고 영화로 하나 됐죠”

중국학생·재외동포 함께한 ‘2011 토토의 작업실’

CGV·문화체육관광부, 한국을 넘어 중국으로 문화예술 교류 나서
韓·中 학생 머리 맞대 톡톡 튀는 다양한 영화 10개 완성해 상영까지
“아이들의 순수한 열정 국경을 뛰어넘었어요”
“레디(ready), 액션(action)!”

슬레이트를 내리치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적막이 흐른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곱게 화장을 한 한칭(중국·15)양이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여대생이 되어 중학교를 찾은 한칭이 남몰래 좋아하던 농구부 주장을 떠올리며 추억에 잠기는 장면이다. 책상 앞에 앉아 진지한 얼굴로 창 밖을 응시하던 한칭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컷!” 계속되는 ‘NG’ 사인에도 웃음이 그칠 줄 모른다. 지난 8월 24일, 중국 베이징 진천륜 중학교 제경분교에서 진행되는 영화애니메이션 창작캠프 ‘토토의 작업실’ 셋째 날의 풍경이다.

8월 22일부터 5일 동안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된 ‘2011 토토의 작업실’. 시나리오가 완성되고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갔다.
8월 22일부터 5일 동안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된 ‘2011 토토의 작업실’. 시나리오가 완성되고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갔다.

9조의 영화 ‘회상’의 감독을 맡은 강경현군(17)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우들의 연기 지도를 위해서다. 강군이 대본에 맞는 표정, 어조, 행동 하나하나 직접 시범을 보이자 더디게 진행되던 촬영에 탄력이 붙었다. 10살 무렵 중국 땅을 밟은 재외동포인 강군의 꿈은 영화배우다. 베이징 예술고등학교에서 연기, 보컬 트레이닝을 받으며 착실히 데뷔를 준비하고 있다. “직접 영화를 제작해본 건 처음이에요. 카메라 각도에 따라 배우의 모습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예술고에도 이런 수업은 없거든요.” 강군은 유창한 중국어 실력으로 한국에서 온 영화애니매이션 창작 지도 선생님과 중국 학생 사이의 소통을 도왔다.

‘토토의 작업실’은 CGV의 사회공헌 사업이었다. 매달 전국의 벽지에 있는 학교에 전문 영화인이 찾아가 영화창작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지난 8월 22일부터 25일까지 진행된 ‘토토의 작업실’은 조금 달랐다. 이번에 ‘토토의 작업실’이 찾아간 곳은 중국 베이징의 제경분교, 50명의 중국학생과 7명의 재외동포 학생들이 어울려 영화와 애니매이션을 창작했다.

카메라를 들고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영화 제작팀을 뒤로 하고 계단을 내려왔다. 복도에서부터 빨강·노랑·파랑, 다채로운 빛깔의 꽃과 나비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교실 문을 열자 바삐 움직이는 아이들의 손가락에 시선이 갔다. 굵은 철사에 컬러 클레이를 붙인 뒤 이리저리 만지자 군인, 요리사, 학생이 뚝딱 만들어졌다. “중국으로 놀러 온 한국 친구에게 중국 문화를 소개하는 내용이에요. 아침 일찍 톈안먼광장에서 국기게양식을 보고, 점심으로 베이징 오리를 먹은 뒤 만리장성에 올라가요. 나중에 한국 친구가 놀러 오면 중국의 멋진 예술문화를 꼭 소개하고 싶어요.”

바쁜 손놀림으로 캐릭터 인형을 제작하고 있던 마제위(중국·15)군은 “다음엔 한국 친구들과 함께 창작 연극에 도전하고 싶다”며 한국 학생과의 지속적인 문화교류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2년 전 베이징시 연극대회에서 우승했던 경험을 나누고 싶다는 것이다.

①6조 '상상'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 ②, ③1조가 만든 클레이 인형 현장.
①6조 ‘상상’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 ②, ③1조가 만든 클레이 인형 현장.

이번 ‘토토의 작업실’이 한국을 넘어 중국으로, 기업의 사회공헌을 넘어 국가 간의 문화교류 사업으로 확장된 데에는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진흥원)과의 연계가 중요했다. 문화부의 지원으로 진흥원은 5000여 명의 문화예술교육 강사와 함께 학교 문화예술교육, 지역사회 공동체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올해 사업 범위를 재외동포를 대상으로 하는 문화예술교육으로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이번 ‘토토의 작업실’은 그 일환으로 기획됐다. CGV의 영화창작멘토 5명과 진흥원의 애니매이션 예술강사 5명은 서로가 축적해 온 교육 노하우를 공유하며 ‘토토의 작업실’ 전체 프로그램의 질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국 학생과 한국의 재외동포 학생이 어우러진 와중에 한국에서 온 예술강사들이 수업을 진행한다니 불편은 없었을까. 사실상 언어가 다른 건 문제되지 않았다. 창작의 과정에서는 눈빛, 손짓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이 전달되고 있었다. 그리고 7년 이상 베이징에 거주한 유학생 열세 명이 통역봉사자로 함께 했다.

5조 창작멘토 호중훈 선생은 “아이들에게 깜짝 선물을 받았다”며 노란색 도화지를 펼쳐보였다. 미소 짓고 있는 6명의 아이들 사진 밑으로 검은색 글씨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아이들이 직접 쓴 편지예요. ‘웃는 게 이렇게 행복한 것이란 걸 깨달았다’란 글귀를 보고 코끝이 찡했습니다.”

8월 26일, 학생들이 제작한 10개 작품이 상영되는 날의 열기는 대단했다. 학생들이 제작한 영상은 베이징올림픽경기장 CGV의 스크린을 통해 공개됐다. 학생들의 가족과 친구는 물론 김익겸 주중한국문화원장과 CJ그룹 중국 본사 임원, 중국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등 주요 관계자들의 참석으로 300석이 넘는 좌석이 가득 메워졌다. 캠프 내내 뜨거웠던 중국 현지 언론의 관심도 여전했다.

영화가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감탄이 새어나왔다. 시각장애인의 희망과 사랑을 담은 ‘행복을 주는 사랑의 멜로디’. 로빈슨을 따라나선 ‘토토 표류기’, 도둑과 경찰의 숨 막히는 결투 ‘천하무적외전’, 한 소년의 여름밤 판타지 ‘악몽’, 지구에 나타난 이상 물체에 얽힌 소동을 보여준 ‘외계인대전’, 한국 학생과 중국 학생의 우정을 그린 ‘매미 우는 여름’, ‘사랑과 우정 사이’ 등 작품마다 학생들의 끼와 개성이 가득했다. 아이들이 직접 멜로디를 만들고 연주까지 한 뮤직비디오 ‘상상’도 눈길을 끌었다. 상영회에 함께 한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직접 제작했다는 게 믿기지 않다”며 놀라워했다.

모든 일정을 마친 창작 멘토들은 “5일 동안 함께 한 아이들의 얼굴이 좀처럼 사라지질 않는다”며 “아이들의 순수한 열정과 그 열정을 담은 눈빛은 국경을 뛰어넘고 있다”며 이번 ‘토토의 작업실’의 의미를 되새겼다.

베이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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