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Cover story] 물 한 모금 때문에 그들은 목숨 걸고 사막 건넜다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케냐
최악의 가뭄으로 3만명은 목숨 잃고 40만명 영양실조
이미 정원 꽉 찬 케냐 다답 캠프로 매일 1500명 와 캠프에 닿기도 전 길에서 목숨 잃어
이렇게 도울 수 있어요_기근에 고통받는 아이들에게 단 1만원으로 1년치 비타민을

케냐 북부의 ‘코어’지역을 찾아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나이로비 공항. 다시 군용 트럭을 타고 7시간을 달렸다. 온 사방이 캄캄해졌다. 가로등도 없는 도로는 밤이면 산적들로 위험하다고 했다. 도시가 끝나고, 사막이 시작하는 낯선 도시 ‘이시올라’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커튼이 내려진 창 밖에는 마약에 취한 사람들이 어슬렁거렸다. 케냐 북부, 소말리아 등으로 마약을 실어 나르는 차들이 집결한다고 했다. 조그만 소리에도 놀라 깨다 동틀 무렵 다시 트럭에 올랐다.

기아대책에서 지원하는 급식을 먹기 위해 아이들이 길게 줄을 섰다. 이 한끼가 아이들을 살리는 하루의 유일한 식사다.
기아대책에서 지원하는 급식을 먹기 위해 아이들이 길게 줄을 섰다. 이 한끼가 아이들을 살리는 하루의 유일한 식사다.

길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비포장도로는 몸을 공처럼 튕겨냈다. 태양이 너무 강해 눈이 시렸다. 전날에 이어 다시 6시간을 달려 목적지인 코어에 도착했다. 섭씨 45도가 넘는, 숨 쉬는 것조차 힘든 이곳은 사막이다.

멀리서 사막 한가운데 주저앉아 있는 아이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이는 뜨거운 태양을 피할 힘도 없어 보였다. 기아대책 최인호 봉사단원은 “극심한 식량난으로 며칠째 한 끼도 못 먹은 사람들이 많다”며 “여기 사람들은 60년 만에 겪는 최악의 재난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1년에 3~4차례 오는 비는 이곳 사람들의 ‘생명수’다. 하지만 지난 6개월 동안 비는 단 한 방울도 오지 않았다. 케냐, 에티오피아, 소말리아를 포함한 아프리카의 뿔(Horn of Africa)이라고 불리는 동아프리카 지역에 지난 한 해 내린 비는, 15년 평균 강수량의 30%도 채 안 됐다. 땅이 갈라지고 농작물이 쓰러졌다.

“극심한 가뭄을 겪으면 동물들이 먼저 죽어나갑니다. 그러다 아이들 차례가 오지요. 이곳에 사는 연약한 아이들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최인호 기아봉사단원의 목소리가 떨렸다.

UN은 이 지역의 극심한 가뭄으로 현재 3만여 명이 숨을 거둔 것으로 추산했다. 어른 1만명당 7.4명이 죽은 셈이다. 아이들은 1만명당 13명이 숨졌다. 서울 인구와 맞먹는 1200만명의 사람들이 ‘굶어 죽는’ 위기에 처해 있다.

미상_사진_국제구호_기근_2011아프리카 최악의 기근이라고 불리는 이번 재난의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두 가지를 꼽고 있다. 첫 번째는 기후 변화다. 비가 오지 않으니 농작물이 죽고 식량 값이 천정부지로 뛴다. 이들이 주식으로 먹는 밀, 카사바 등의 가격은 전년 대비 최고 2.5배까지 올랐다. 케냐 지역에서만 40만명이 넘는 아이들이 영양실조를 겪고 있다.

재난의 또 하나의 원인은,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나눔이 더디다는 것이다. UN이 이 지역에 공식 기근을 선포한 것은 불과 한달여 전. 그전에 이미 2만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국제 구호단체들이 모금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극한의 상황에 몰려 있는 사람들을 돕기에는 크게 부족하다.

이 때문에 가뭄이 가장 극심한 소말리아 남부에서는 아예 국경을 넘는 ‘탈출’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정치적 불안정으로 구호단체의 손길이 닿기 어렵다고 생각한 주민들이 케냐, 에티오피아 등으로 피신하고 있는 것이다. 혹시 물이라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구호 물품이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 희망을 찾는 사람들의 수가 86만명을 넘어섰다.

케냐 북부에만 44만명이 난민 캠프 3곳에 수용돼 있다. 이미 정원의 3배를 넘긴 다답 캠프에는 매일 1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새로 온다. 이들 중 80%가 엄마와 아이다. 앉을 공간마저 부족해진 캠프는 홍역과 성폭행, 약탈과 폭행 등으로 늘 위기 상황이다.

한국 기아대책의 현지 스태프 후세인은 “그래도 캠프에 무사히 도착한 사람들은 다행”이라고 했다. 사막을 횡단하는 먼 길.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죽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이다. 우스프씨는 “먼지만 날리는 사막을 2주 동안 걷다 아이 둘을 잃었다”고 했다.

최인호 기아봉사단원은 “지구 상에 굶어서 죽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이 믿겨지냐”고 물었다. 길을 걸으며 쓰러지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면, 이 숨 막히는 땅에 직접 와보지 않았다면, 나도 고개를 저었을 것이다. 도움의 손길이 닿는 속도보다 생명이 스러지는 속도가 빠르다.

UN은 현재 5초에 1명, 하루 1만8000명의 어린이들이 가난과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다고 추산한다. 기아대책 이요셉 총괄실장은 “이번 기근을 서둘러 해결하지 못하면, 지난 몇십 년간 빈곤과 질병으로 죽는 사람들을 줄이기 위해 했던 숱한 노력들이 수포로 돌아간다”고 했다. 서울로 돌아가는 긴 여정이 끝나기도 전에, 오늘 본 아이들 중 몇 명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들었다.

사막에도 밤이 찾아왔다. 해가 떨어지자 곧바로 한기가 느껴졌다. 얇은 누더기 옷 한 장을 걸친 아이들이 기아대책이 운영하고 있는 목동 학교로 몰려들었다. 하루 종일 굶주림에 시달린 아이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아이들이 글자를 배우겠다며 밤마다 모인다.

3평 남짓한 교실 안에는 책상도 의자도 없다. 변변한 책과 노트도 없다. 태양 발전기로 희미하게 불을 밝힌 교실 안에서 아이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글을 읽고 숫자를 쓴다. “나는 윌리엄이다.” “1, 2, 3, 4, 5.” 삶을 기약할 수 없는 아이들이 내일의 꿈을 꾼다.

사막을 떠나며 ‘신은 왜 내게 이런 모습을 보게 하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땅 위의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삶과 죽음이 길 위에 있다.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과 함께 케냐·우간다·남아프리카공화국·모잠비크·짐바브웨·말라위 등 아프리카 6개국을 한 달여 일정으로 다녀왔습니다. 20~30대 노동력과 풍부한 자원을 목적으로 세계 각국의 아프리카 지원이 엄청났습니다.

특히 중국의 투자는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가는 곳마다 중국이 무상(無償)으로 건설해 주고 있는 도로와 국회의사당, 경기장, 호텔 등이 눈에 띄었습니다. ‘경기장 외교(Stadium diplomacy)’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입니다.

반면 동아프리카의 뿔이라고 불리는 케냐·에티오피아·소말리아 지역은 벌써 3만명의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국가 내에서도,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 대한 지원보다는 고위 관료와 투자 가치가 있는 지역에 대한 후원이 많았습니다.

이 때문에 현지에서 만난 아프리카 사람들은 “우리를 식민 통치하고 자원을 빼앗아 갔던 서구나 지금 원조를 하겠다고 나오는 중국·인도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조건 없이’ 자신들을 돕는 한국 사람들의 예를 들며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또 “우리도 전쟁 폐허에서 일어난 한국을 배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식민 지배와 내전의 상흔을 모두 겪어내고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전환한 우리에 대한 감탄과 존경이었습니다.

60년 전, 우리나라도 하룻밤 자고 나면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아이들의 시체가 쌓였습니다. 그때 우리를 도왔던 사람들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들어본 적도 없는 먼 나라의 이방인이었습니다. 생명을 살리겠다는 마음 하나로 돈을 모았고, 80년대 후반까지 수십만명의 한국 어린이들을 도왔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해야 할까요. 모잠비크에서 만난 이상범 기아봉사단원은 “우리가 아프리카를 돕는 모습은 서구나 중국과 달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프리카처럼 식민 지배를 겪고 내전의 경험도 있는 우리가 만들어낸 기적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거래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 진정한 ‘나눔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한민국, 한국인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높아지는 것이 진정한 사람 투자라고 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밥 한 끼가 없어 숨지는 아이들을 위해, 기아대책과 조선일보 더나은미래가 ‘STOP HUNGER(굶주림은 그만)’ 캠페인을 펼칩니다.

1만원이면 아이들의 1년치 비타민을 사줄 수 있습니다. 10만원이면 한 가구가 6개월 동안 먹을 수 있는 밀가루 6포대를 살 수 있습니다. 100만원이면 한 마을이 먹을 수 있는 옥수수 150포대를 살 수 있습니다.

기아대책은 여러분의 정성과 함께 ‘사람’을 보냅니다. 여러분이 보내주시는 관심과 사랑을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달하겠습니다. 한 사람의 관심이, 한 아이의 생명을 살립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미상_사진_국제구호_가뭄_2011식량 기금 정기 후원 및 일시 후원 이렇게 해주세요

●전화: (02)544-9544
●ARS: 060-700-0770(한 통화당 2000원)
●문자: #95441016(1건당 2000원)
●계좌: 하나은행 353-933047-42037(예금주: (사)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온라인 신청: 홈페이지(www.kfh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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