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아이티 참사 잊기엔 아직 일러… “60년 전 은혜 되갚을 차례”

국제NGO ‘굿네이버스’ 구호 활동

아이티 대 지진 참사가 난 지 벌써 100일이 지났다. 우리나라를 포함, 전 세계 사람들이 참사 직후 아이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여러 노력을 펼쳐 왔다. 100일 동안 아비규환 상태의 도시는 조금씩 정돈돼 가고 있다. 하지만 아이티 재건까지는 10년 정도가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참사는 한순간이지만, 재건은 험난한 과정이다. 참사 직후부터 한국을 대표해 아이티 현장에서 사람들을 도와 온 국제구호기관 굿네이버스 노경후 아이티 사무장을 통해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서울에서 꼬박 24시간을 날아 도착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흑인 공화국 아이티. 참사 전에도 인구 900만명 중 절반 이상이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최빈국이었다. 참사 직후 도착한 아이티는 시체 썩는 냄새로 참담했다. 전체 인구의 3분의 1인 300만명이 지진으로 피해를 입었고, 38만명의 아이가 부모를 잃고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

아이티의 가장 절박함은 먹는 것이다. 굿네이버스의 식량 배분에는 3000여명이 몰렸다. /굿네이버스 제공
아이티의 가장 절박함은 먹는 것이다. 굿네이버스의 식량 배분에는 3000여명이 몰렸다. /굿네이버스 제공

내가 속한 굿네이버스는 고통받는 아이티 이재민들을 돕기 위해 지진 발생 25시간 만에 아이티에 긴급구호팀을 급파했다. 수도인 포르토프랭스 (Port-au-Prince)를 중심으로 재난 초기에 긴급하게 수행해야 하는 식량 및 식수 배급과 의료지원, 텐트 지원, 방역 등의 구호활동을 3개월간 집중적으로 실시했고, 요보호 대상 중에서도 가장 보호가 필요한 싱글맘들을 위한 캠프를 포르토프랭스에 최초로 마련했다.

지난 3월 31일에는 굿네이버스가 지원하는 라리뎀션(Ra Redemption) 초등학교가 레오간에서 최초로 임시학교를 개학했다. 아직도 지진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해 시멘트로 된 교실 대신 학교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수업을 시작했다. 임시학교는 교과목이 아닌 심리 치료 교실로 운영됐다. 심각한 재난을 경험한 사람들은 신체적인 상처보다 심리적인 문제로 더욱 고통받는다.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이하 PTSD)’이다. 굿네이버스는 총 30회기에 걸친 PTSD 치료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 싱글맘’캠프에서 아이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시간도 밥 먹을 때이다. /굿네이버스 제공
‘ 싱글맘’캠프에서 아이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시간도 밥 먹을 때이다. /굿네이버스 제공

클로레스꼬엔더스(Clolescoenders·남·10세)는 임시학교 미술 치료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얼굴을 펑펑 우는 모습으로 묘사했다. 친구들 앞에서 그림을 설명해보라고 하자 “지진이 너무 무서웠다”며 아이는 그림과 같은 눈물을 쏟았다. 어떤 학생은 차가 전복되고, 꽃이 꺾이고, 시체들이 널려 있는 그림을 그렸고, 어떤 학생은 종이 한가득 피로 범벅된 다리를 그렸다. 그렇게 내면의 상처를 외부로 표출하면서 지진으로 인한 심리적인 상황을 직면하고, 아이들은 조금씩 회복되어 가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관심이 아이티에 집중되고, 지원 물자와 도움의 손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원들이 제각각 이뤄진다면 중복지원 문제가 발생하거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는 피해지역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혼선을 막고, 좀 더 효과적인 지원을 하기 위해 국제 NGO들은 ‘국제연합 인도주의 업무조정국(The United Nations Office for the Coordination of Humanitarian Affairs, 이하 UN OCHA)’ 회의를 열고 있다. 나 역시 매주 이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UN OCHA 회의에 참석하면서 가장 감격스러운 점은 굿네이버스가 세계 유수의 국제 NGO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아이티 재건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유일한 한국 국적의 국제 NGO라는 점이다. 굿네이버스는 한국에 국제본부를 두고 전 세계 24개국에서 활동하며, 한국 최초로 UN이 NGO에게 부여하는 ‘최고 지위’를 획득했다.

아이티 재건까지는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장 막스 벨레리브 아이티 총리는 재건에 10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굿네이버스는 이곳에 지부를 설립하고, UN OCHA 회의를 통해 레오간 지역 중에서도 보알람(Bois Lame), 비노(Binaud) 2개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할 계획이다. 도움이 필요한 300세대, 1,500여명을 선정해 주거, 교육, 의료 시설이 완비된 ‘굿네이버스 빌리지(Good Neighbors Village)’를 조성한다.

60년 전, 아이티는 6·25 전쟁 발발 직후 우리나라에 2000달러를 보내왔다. 오늘날의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약 800만달러, 우리 돈 90억원에 해당하는 큰돈이다. 60년 전에 받은 은혜를 이제는 되갚을 차례다. 아이티 대지진 참사. 비운의 역사로 잊히기엔 아직 너무 이르다.

아이티를 도우려면 국제구호기관 굿네이버스(www.gni.kr ), 02)6717-4000번으로 문의하면 됩니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