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자포자기 삶 살던 영훈이 엄마… 그녀를 일으킨 이웃 관계망”

미상_사진_이웃관계망_손_2011‘사회복지사업은 마중물과 같다.’ 몇 년 전, 한 선배 사회복지사에게 들었던 말이다.

사회복지사업의 목표 중 하나가 사람들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볼 때, 사회복지사 혹은 사회복지사업이 마중물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광주광역시의 한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김영훈(가명·초 6) 아동의 어머니는 장애를 갖고 있는 아들 영훈이와 딸 영미를 키우고 있는 한부모 가정의 가장이다. 한 때 우울증을 앓고, 주변 사람들과의 왕래도 전혀 없던 영훈이 어머니는 한 사회복지사의 적극적인 방문을 통해 도움을 받게 됐다.

이 과정에서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같은 임대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한부모 가정 어머니들의 자조모임인 ‘아이사랑’에 참여한 것이었다고 한다.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이웃들과의 정기적인 만남을 통해 공감하고 위로하고 지지받으며 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영훈이 어머니는 “우리 집, 남의 집, 내 아이, 남의 아이 구분하지 않고 가족처럼 서로 돌보고 돕는 사람들이 생겨 이제 저는 살아났어요. 지금은 행복해요.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우리아이 희망센터(영훈이 어머니가 이용하는 사회복지기관)가 계속 되게 도와 주세요”라고 말한다.

놀랍게도 영훈이 어머니의 변화는 자신과 자기 아이들의 삶을 개선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영훈이 어머니의 관심은 주변에 있는 방임된 아동의 삶의 문제로까지 확대되었다. 영훈이 어머니를 비롯한 ‘아이사랑’ 참여 어머니들은 같은 아파트 단지의 한 아버지 가정 아이들이 의식주를 비롯한 기본적인 생활환경이 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한 가정이 1~2명씩의 아이들을 맡아 저녁마다 집으로 불러 함께 식사도 하고, 숙제도 봐 주는 일을 하고 있다.

영훈이 어머니는 이 같은 활동을 하게 된 동기를 “내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그 도움을 누군가에게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잖아요. 저녁에 애들 봐 주는 일은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어서 시작하게 되었어요”라고 말한다.

영훈이 어머니가 우울증을 극복하고 새롭게 아이들과 살아갈 힘을 얻게 된 동력은 서로를 지지해 주는 견고한 ‘이웃 관계망’이다. 이 관계망은 사회제도나 사회서비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영훈이 어머니의 경우처럼 자신이 속해 있는 가족, 모임, 집단, 지역사회, 그 밖의 다양한 환경 안에 존재하는 사람, 재능, 시간, 동기 등이 구성원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상호 교환되며 형성된다.

이러한 관계망 속에서 나타난 개인의 변화는 사회적 참여와 변화 창출이라는 파급 효과를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영훈이 어머니의 경우, 지역아동 야간보호활동을 통해 아동방임문제를 해결했고 저절로 이와 관련된 사회적 비용, 예컨대 방임아동서비스 비용, 야간보호프로그램 운영비 등과 같은 예산 절감의 효과도 가능하게 하였다. 서비스를 받는 사람인 동시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기도 한 영훈이 어머니에게서는 ‘복지병’의 증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지역사회 전체가 구성원 하나하나를 위한 동력원으로 작동하는 촘촘한 관계망으로 변화하는 것이 사회복지사업의 효과를 지속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본다면, 앞으로 사회복지사업에서 이 일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 사회복지사업의 반성이 필요하다. 사회복지서비스 공급자 입장에서 단시간에 양적 통계를 보여줄 수 있도록 매뉴얼화된 프로그램 중심으로 사업을 운영하도록 요청받고 있는 현실을 반성하고, 사회복지서비스 이용자를 중심으로 생태적인 복지환경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아이 희망네트워크(wooriai.childreninhope.net)가 사업 5주년 사업 보고대회를 21일 오후 1시부터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엽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문의 (02)2274-96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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