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메이드인 희망’… 철학이 담긴 제품을 팝니다

사회적 기업 ‘잡 팩토리’

사회적 기업 ‘잡 팩토리(Job Factory)’가 위치한 스위스 바젤은 전 세계 300여 갤러리와 2500여 명의 아티스트들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의 아트 바젤(Art Basel)로 유명하다. ‘잡 팩토리’는 이런 예술의 도시 중심가에서 불과 15분 거리에 있었다. 트램(전차)을 타고 풍경에 빠져 있다 보니 금세 파란색 건물이 눈에 띄었다. ‘잡 팩토리’의 대형 상점이다.

미상_사진_잡팩토리_잡팩토리건물_20101층으로 들어가니 상점 전체를 담당하고 있는 매니저 니치 보흐간(Nicci Vaughan)씨와 홍보 담당자 소냐 슈흐마흐어(Sonja Schumacher)씨가 반갑게 맞아 줬다. 카페테리아, 인테리어 용품점, 옷 가게, 미용실, 레스토랑 등 다양한 업종이 한 건물 안에 있었다.

니치씨는 “인턴들이 다양한 직업을 체험할 수 있도록 공간을 다양화했다”고 말했다. 건물 곳곳에서 20여 명의 직원과 30여 명의 인턴이 웃는 얼굴로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소냐씨는 “하루 평균 500명 정도가 매장을 찾는다”고 했다.

‘잡 팩토리’ 건물은 마을에서도 인기 있는 곳인 듯했다. 비교적 이른 시각에 회사를 방문했는데도 손님이 많았다. 특히 2층과 3층의 의류 매장이 북적댔다. 니치씨는 “시내 중심가에서 15분 정도 거리 안에 있어야 손님들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해 의류 할인매장을 열었던 것이 효과를 봤다”고 했다. 최근 리(Lee), 무스탕(Mustang) 등 몇몇 브랜드들이 ‘잡 팩토리’의 철학에 공감, 제품을 저렴하게 공급해 주면서 손님이 더 늘었다.

의류 매장 곳곳에는 예쁘지만 조금은 서툰 포즈의 모델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니치씨는 “직원들과 청소년 인턴들이 모델을 했다”며 “고객도 즐거워하고 청소년들도 스스로 뿌듯해한다”고 말했다.

건물의 가장 꼭대기 층에는 멀리 독일까지 바라다보이는 전망 좋은 레스토랑이 있었다. 이곳은 2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어, 결혼식과 생일파티, 워크숍 등의 행사에 자주 사용된다고 했다. 주방은 전문 요리사들이 맡고 있지만, 분주한 홀을 누비며 친절하게 서빙하는 청소년들은 모두 인턴들이다.

이렇게 고객과 바로 맞닿은 현장에서 매일 인턴으로 일하며 손님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는 것이, 바로 ‘잡 팩토리’가 청소년들에게 주는 가르침이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태도, 친절한 서비스 정신 등이 저절로 몸에 배게 되는 셈이다. 지하 1층에서부터 레스토랑에 이르기까지 두어명이 모여 노닥거린다거나 혹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고객을 방치하는 인턴은 한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니치씨는 “잡 팩토리가 고객과 맞닿아 있는 사업 분야로 계속 확장해 나갈 수 있는 것도 이런 현장 교육 때문”이라고 말했다.

파란 건물을 다 둘러보고 뒤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또 하나의 건물로 들어섰다. 이 건물에는 부엌가구 브랜드 ‘데이비드 퀴첸(David Küjchen)’, 브로셔와 포스터 등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잡 팩토리 프린트(Job Factory Print)’, 웹 개발 및 디자인 등을 담당하는 ‘잡 팩토리 인포마틱(Job Factory Informatik)’ 등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별도의 브랜드까지 갖추고 있는 데이비드 퀴첸은 매년 500~600개 디자인의 부엌가구 제품을 제작해 개인과 건축업자들에게 팔고 있다. 소냐씨는 “이런 사업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인턴들은 고객의 중요성, 약속과 책임감, 철저한 품질 관리 등에 대해 저절로 체득하게 된다”고 말했다.

▲ 팩토리의 불빛은 늦게까지 꺼지지 않았다. 늦은 시간까지 남아 공부와 작업에 몰두하는 청소년 인턴들 때문이다. 성실과 책임감. 아이들은 이 두 가지로 희망을 만들고 있었다
팩토리의 불빛은 늦게까지 꺼지지 않았다. 늦은 시간까지 남아 공부와 작업에 몰두하는 청소년 인턴들 때문이다. 성실과 책임감. 아이들은 이 두 가지로 희망을 만들고 있었다.

인턴들은 평균 6개월, 최장 1년 동안 이곳에서 인턴 프로그램을 수행한다. 정부 기관이나 사회복지 단체 등이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이곳에 오는 청소년들은 이민자 가정의 자녀나 경제적 극빈층 자녀가 많아 학업을 중단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턴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아이들은 과정에 따라 평균 3~4일을 일하고, 나머지 1~2일 동안은 다양한 교육을 받는다. 학력 수준이 취약한 아이들이 대부분이라 작문, 수학 등의 기초학문 교육부터 이력서 작성법, 비즈니스 에티켓 등 취업을 위한 교육까지 다양하다. 또 정서적 문제나 가정적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위한 상담 프로그램도 있다.

인턴들이 지켜야 하는 규칙들은 지식과 기술적인 측면보다는 시간 엄수, 공손한 어법, 단정한 복장 등 태도와 자세에 대한 것이 더욱 많았다. 코칭과 교육을 담당하는 안드레아 지페러(Andrea Zipperer)씨는 “기본적인 태도 및 사회성을 가정 및 학교에서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경우가 많아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보완하고 있다”고 했다.

이곳에서 9개월째 인턴을 하고 있는 다니엘라(Daniela·19)씨는 “처음엔 쓸모없는 사람들만 모이는 곳 같아 오기 싫었는데, 막상 와서 홍보물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것을 배우면서 성격도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이곳에서 배운 것 중 가장 중요한 건 책임감이에요. 예전엔 조금만 아프거나 늦잠을 자도 학교에 결석했었는데, 지금은 어떤 경우에도 제시간에 와서 참여하거든요.”

인턴이 끝나고 무역 회사에 취직할 예정이라는 그녀는 마치 한국 사람처럼 “첫 월급 타면 부모님 선물부터 사겠다”며 웃었다.

바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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