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3일(화)

[보니따의 지속가능한 세상 만들기] 밤새 그물을 끌어 올리는 사람들

“물어도 준치 썩어도 생치”

“가을 전어는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

“10월 갈치는 돼지 삼겹살보다 낫고, 은빛 비늘은 황소 값 보다 높다.”

도대체 얼마나 맛있으면, 짓무르거나 상해도 값이 나가며, 집 나간 사람도 돌아오게 만들고, 소고기 보다 더 비싸다고 하는지, 먹어 보고 싶게 만드는 표현들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정월은 도미, 2월은 가자미, 3월은 조기. 매 달 대표하는 생선이 있을 만큼 우리는 예로부터 해산물을 사랑했습니다. 전 세계 해산물을 맛 볼 수 있는 지금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참치와 마요네즈의 환상적인 궁합을 자랑하는 삼각김밥, 입안에 넣기만 하면 사르르 녹는 연어 샐러드, 따끈한 밥에 올려 입에 넣으면, 톡하고 터지는 날치알까지. 해산물은 어느새 우리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됐습니다. 일상에서 자주 먹는 해산물,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얼마나 많은 해산물을 먹고 있을까요?

오늘 날, 해산물 전문 식당까지 생겨났을 정도로 해산물을 찾는 인구는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 9.9kg였던 전 세계 1인당 수산물 소비량이 2009년에는 18.4kg으로 배가 되었습니다. 그 양도 어마어마합니다. 세계식량기구(FAO)에 따르면, 2014년 식용으로 사용된 어류의 양만해도 1억 4,600만 톤이라고 합니다. 2005년 1억 만 톤에 비해 50%가량 증가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상황은 어떨까요? 1980년 1인당 해산물 소비량은 27kg에 불과했지만, 2014년 58.9kg으로 껑충 뛰며, 해산물 소비 강국이라고 불리던 일본을 제치고 당당히 전 세계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는 전 국민이 매일 150g짜리 자반고등어 한 마리를 구워 먹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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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물을 많이 먹게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소비 수준이 높아지고, 건강에 대한 관심도 증가한 것도 중요한 원인이지만, 활발해진 무역으로 해산물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진 것도 한 몫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내에서 생산되는 해산물은 333만 톤, 해외에서 들여온 해산물은 550만 톤으로, 60%이상을 수입하고 있습니다. 세계화 바람이 불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마음껏 먹을 수는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물을 끌어 올리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해산물을 찾는 사람들은 늘어나는 데 반해, 바닷속 해양 생물들은 텅텅 비어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산업 분야는 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3D 업종에 해당해 인력난까지 겪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마트 어디를 가나 값싼 해산물이 넘쳐납니다. 해산물 천국인 태국만 해도 80만 명 이상이 수산업계에 종사하며, 수출하는 해산물만 6조 8천억 원이 넘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요?

학교에 가고 싶어요

평일 오전, 미얀마에서 태국으로 건너온 15살 하리(Hari)는 또래 친구들과 달리 학교가 아닌 새우작업장으로 향합니다. 이 일을 시작한지 어느덧 4개월. 이제는 새우 껍질을 벗기는 것도 제법 익숙해졌습니다. 이런 생활은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지속되는데, 하루에 적게는 6시간 많게는 17시간 정도 작업을 합니다. 하리처럼 작업장에서 하루 종일 새우를 까는 이주민 아이들은 태국 사뭇 사콘 지역에만 10,000명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받는 돈은 일하는 양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일주일에 4-5만원 남짓입니다. 하지만 서류비와 같은 이런저런 비용을 제하고, 작업에 필요한 고무장갑과 목장갑, 부츠, 칼, 가위 등의 장비를 구입하고 나면 실제로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이보다 적습니다.

 

저임금보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의 신분입니다. 엄연히 노동자로 일을 하고 있지만,서류상으로는 여전히 불법 체류자입니다. 밖에 나가면 언제든지 체포될 수 있는 상황이기에 마음대로 거리를 활보하지도 못합니다.

살고 싶었습니다

캄보디안인 산(San)씨는 태국에 가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태국행을 결심했습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오게 된 곳이 바로 원양어선이었습니다. 배 위에서의 삶은 그야말로 처참했습니다. 하루에 한 시간 정도 밖에 잠을 자지 못한 탓에 체력은 점점 바닥나기 시작했습니다. 산씨를 비롯한 인부들이 지쳐가는 모습을 보이자, 선원들은 물에 타먹는 가루를 내밀었습니다. 하지만 산씨는 가루의 정체가 수상하다고 느껴져, 먹지 않고 그대로 바다에 버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루를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구타를 당했고, 어쩔 수 없이 가루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가루를 먹으면 피곤하지도 않고 밥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가루가 마약으로 분류되는 암페타민의 일종일 거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마법의 가루도 영양실조와 수면부족을 당해내지는 못했습니다. 그 결과 아픈 사람이 생겨났고, 선원들은 환자는 곧 쓸모 없는 사람이라며 바다로 내던졌습니다. 산씨는 동료 로티안(Laotian)이 바다에 던져지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언젠가 저렇게 될 수 있다는 극도의 불안감을 느껴, 배가 육지에 도착한 날 목숨을 걸고 배에서 도망쳐 나왔다고 합니다.

한국이 이럴 줄 몰랐습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13번째로 어획량이 높은 나라입니다. 문제는 수산업 강국이라는 명성만큼 어업 종사자들에 대한 처우가 부실하기로 유명하다는 것입니다. 그린피스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인 선원은 평균 14시간가량 일을 하지만, 임금은 한국인 선원의 1/3수준인 1,112,000원밖에 되지 않습니다. 욕설이나 폭언을 당하는 것은 다반사이며, 신체적인 폭행뿐만 아니라 심한 경우 감금을 당하기도 한다고 외국인 선원들은 증언했습니다. 이 때문에 바다에서의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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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무리한 조업과 외국인 선원 인권 착취, 그리고 이 결과 외국인 선원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오양 75호에서 일했던 인도네시아인 수기토(Sugito)씨는 구타와 성추행, 폭언이 너무 심해 이를 한국의 문화로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거듭되는 사건으로 ‘인권 후진국’이라는 평을 받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강제 노동에 대해 여전히 관대한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게다가 국제노동기구의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에 가입하지 않아, 국제 사회의 빈축을 사고 있습니다.

수산업에서 벌어지는 인권 문제,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1) 수입을 금지합니다

“강제 노동이나 아동 노동으로 만들어진 제품은 수입할 수 없습니다.”

올해 초 미국에서 통과된 관세법 개정안 내용입니다. 미국은 어떤 나라에서 만들어지는 제품이 성인과 아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만들어지고 있는지 조사해 정부 홈페이지에 올리고 있을만큼 노동자 인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결국 이런 노력이 쌓여 지금의 개정안이 나온 것입니다. 개정된 관세법에 따르면 강제 노동과 아동 노동 목록에 올라온 국가들은 인권 상황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해당 제품을 앞으로 미국에 수출할 수가 없습니다. 미국은 식품과 동물 사료 등에 사용되는 수산물의 90%를 수입하고 있을 정도로 큰 시장이기 때문에 이 법안이 시행될 경우, 수산업 분야에 큰 변화를 가져 올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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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학생들에게 인증된 생선을 제공 하세요

대다수의 나라가 영양에 초점을 둔 학교 급식 지침을 제시한다면, 건강뿐 아니라 환경, 더 나아가 인권을 고려하는 지침을 만드는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영국입니다. 학교 급식에서 공정무역 제품을 사용하고, 지역에서 생산되는 식 재료를 사용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더 나아가 해양보존협회(MSC)의 인증을 받은 해산물 사용을 권하고 있습니다. 이 결과 현재 영국 초등학교 6개 중 1곳에서 인증 받은 생선만을 사용하면서 64만 명의 초등학생이 지속 가능한 생선을 먹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일은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영국의 학교 급식 지침서를 만드는 데 참여한 헨리 딤블비씨가 말합니다.

“많은 학생들이 지속 가능한 생선을 먹고 있는데, 이는 어업의 지속 가능성을 지지하는 일이자 해양보호를 배우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매우 훌륭한 유산인 것입니다.”

좋은 밥상의 조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좋은 밥상이라고 하면,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등 5대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간 균형 있는 식단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대형 농장이 일반화 된 이후, 밥상을 바라보는 기준이 달라졌습니다. 다양한 영양소는 우리를 건강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제초제, 방부제, 항생제의 남용이 건강을 해친다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입니다. 이후 사람들은 화학약품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기농 밥상이 좋은 밥상이라고 말합니다.

세계화 시대인 지금, 또 다시 밥상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이제는 만드는 사람이 행복한 인권 밥상이 좋은 밥상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값싼 재료는 그만큼 많은 대가를 치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생산하는지도 모르는 값싼 재료들은 당장 우리 입을 즐겁게 해줄지 모르지만, 이렇게 가다가는 머지않아 자원이 바닥나거나, 열악한 처우에 노동자들이 모두 떠나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어떤 밥상을 마주하고 있습니까?

비영리단체 보니따(BONITA)는 ‘좋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자(Bon Idea To Action)’라는 뜻으로, 세계시민교육, 캠페인, 개발협력 프로젝트, 출판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모두에게 이로운 세계화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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