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잘나가는 건설사 회장에서 ‘집짓기봉사 首長’ 된 사나이_켄 클라인 국제 해비타트 이사회의장

“집짓기의 진정한 의미? 땀의 가치와 자립용기 일깨워 주는것”

오혜정기자_사진_해비타트_켄클라인_2011집이 없다는 것은 삶의 첫 단추를 꿸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뜻이다. 집은 가족의 건강과 마음, 그리고 의지를 키우는 요람이다.

1976년에 설립된 해비타트는 전 세계인 모두가 집을 가지는 날을 꿈꾸는 비영리조직이다. 작년 한 해에만 7분에 한 채씩 집을 지었고, 7분마다 한 가족에게 새로운 희망과 출발을 선물했다. 지미 카터 전(前) 미국 대통령이 매년 참가하는 ‘카터 워크 프로젝트(Carter Work Project)’를 비롯해 전 세계 100개국에서 진행하는 여러 프로젝트들을 통해, 설립 후 지금까지 40만 세대 이상을 지어 공급했다. 이 과정에는 70만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함께했다.

이달 초 한국을 찾은 켄 클라인(Ken Klein, 67·사진) 국제해비타트(Habitat for Humanity International) 이사회 의장을 만나 그간의 여정을 들어봤다.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클라인씨는 주택건설회사 KLEINCO Properties의 회장으로, 미국 주택건설업협회(NAHB) 부회장, 오클라호마주 올해의 중소기업인 등에도 선출된 바 있는 주택건설 분야의 베테랑이다.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 관심은 많았지만 딱히 돕고 참여할 방법은 알지 못했던, 그래서 비즈니스맨으로서의 삶만 영위하던 그가 해비타트와 연을 맺게 된 것은 10여 년 전, 해비타트 총재(밀라드 풀러, Millard Fuller)와의 만남 덕분이다.

“제 삶을 바꾼 만남이죠. 건설업자인 제 재능과 경험을 살려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고,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방법도 알게 됐죠. 제 신앙이 제 직업, 제 일과 만나는 최초의 순간이었습니다.”

클라인씨는 그 후로 플로리다·텍사스·네바다·캘리포니아 등 미국 전역의 집짓기 봉사에 참여했다. 자신의 지역에 위치한 해비타트 털사 지회 자문 이사 및 국제이사회 이사로 참여하며 자신의 재능, 시간, 네트워크를 모두 기부했다.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해비타트의 프로젝트에 참여하지만, 여전히 집짓기 현장 봉사가 가장 설렌다. 단순히 물리적 건축물로서의 ‘집’ 이상의 가치를 짓는 기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해비타트 국제이사회의 켄 클라인 의장이 태국 치앙마이에 서 집짓기 봉사에 한창이다. /한국해비타트 제공
해비타트 국제이사회의 켄 클라인 의장이 태국 치앙마이에 서 집짓기 봉사에 한창이다. /한국해비타트 제공

“재작년, 태국 치앙마이를 비롯해 메콩강 유역 5개국에서 카터 워크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모두 174세대의 집을 짓는 큰 프로젝트였죠. 저는 치앙마이에서 3자녀를 둔 가족의 집을 함께 지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 처음 며칠간은 서로 아무 말 없이 일만 했죠. 게다가 워낙 집짓기 초반 과정은 땅을 고르고 다지는 작업들이니 뭐가 뭔지 잘 몰랐겠죠. 그러다 시작한 지 4일째 되는 날 오후였습니다. 앞문이 세워진 순간이었죠. 집다운 집을 가져본 적이 없는 가족에게 ‘첫 번째 문’이 생기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의 감동이 살아나는지 클라인씨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갑자기 가족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어요. 그제야 ‘집’을 갖게 된다는 의미를 깨닫게 된 거죠.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문과 창문, 화장실 등이 있는 진짜 집이 지어진다는 것을 그제야 이해한 거예요. 그날 오후부터는 울며 웃으며, 흥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며 집을 지었어요. 언어는 다르지만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마음으로 알 수 있었어요.”

집을 지어 돈을 벌 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집짓기의 의미’를 그는 해비타트를 통해 발견하고 있다.

촉촉해진 눈을 반짝이며 클라인씨는 ‘집짓기’의 의미를 설명했다. “집은 단순한 물리적 건축물 이상의 의의를 갖습니다. 집은 추위나 더위, 재해, 사고, 범죄 등으로부터의 보호를 의미합니다. 가족이 함께 모여 시간과 삶을 나눌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하고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기회,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꿈과 희망을 선물하기도 합니다. ‘집짓기’를 통해 ‘집’ 이상의 가치를 짓는 것입니다.”

‘집짓기를 통해 빈곤을 퇴치하는 꿈’ 때문에 항상 설레는 클라인씨. 그래서 그는 도전을 멈출 수도, 쉴 수도 없다. 최근에는 집짓기와 병행해 마이크로빌드 펀드(Microbuild Fund)를 시작했다. 가난한 사람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마이크로크레디트의 하나로, 집짓기 대신 문이나 창문, 지붕, 화장실 등의 신축과 보수 등 주거환경 개선 자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빌려준다. 장기간에 걸쳐 낮은 이자로 상환되는 돈은 다시 다른 누군가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데 사용된다.

“작년부터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의 슬럼가에서 마이크로빌드 펀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슬럼가다 보니 위생상태가 말할 수 없이 열악하죠. 16가족, 즉 83명을 위한 공공 화장실 건축을 위한 소액대출 사업을 시작했죠. 태어나 처음으로 깨끗한 화장실을 갖게 된 사람들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죠. 가족 모임의 대표 격인 한 아주머니가 이렇게 말씀하더군요. ‘해비타트는 단순히 화장실을 지어준 게 아닙니다. 체계적으로 재정을 관리하고 계획성 있게 돈을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줬습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법을 알려줬습니다.’ 제가 왜 멈출 수 없는지, 왜 쉴 수 없는지 알겠죠?”

여세를 몰아 국제해비타트는 작년부터 캐피탈 캠페인도 시작했다. 2014년까지 전 세계 해비타트 주택 조성 규모를 연간 10만가구로 확충하기 위해 39억달러를 모금하는 캠페인이다. 계속 성장하는 해비타트의 비법을 물으니, 클라인씨는 ‘파트너십의 원리’로 답했다.

“가장 큰 비법은 무상 원조가 아니라 자립을 지원하는 시스템에 있습니다. 홈 파트너(주택을 받는 수혜가정)는 집짓기에 함께 참여할 뿐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건축원가에 해당하는 금액을 상환합니다. 즉 그냥 받은 집이 아니라, 자신의 땀과 노력의 대가로 번 집입니다. 홈 파트너 역시 존엄성, 자부심을 지킬 수 있는 시스템이죠. 게다가 홈 파트너의 상환금은 다른 홈 파트너의 집짓기에 투입됩니다. 홈 파트너 역시 다른 누군가의 자립 지원을 돕게 되는 셈이죠. 그 보람과 기쁨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인터뷰를 마무리하려는 기자에게 클라인씨가 “긍휼의 용량(Capacity of Compassion)을 키우려면 집을 지으러 와보라”고 권한다. “나눔의 기쁨은 직접 실천할 때에만 누릴 수 있죠. 그 실천을 통해 우리들의 긍휼의 용량이 커집니다. 우리 모두가 타인의 어려움과 힘듦, 아픔과 외로움에 공감하고 참여하며 적극적으로 돕는 사람으로 자란다면 세상이 좀 더 좋아지지 않을까요? 해비타트 집짓기 현장으로 오세요. 어느새 자신의 긍휼의 용량이 늘어나 있을 것입니다.”

●해비타트 집짓기 봉사 및 후원 참여는 홈페이지( www.habitat.or.kr )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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