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캔 파운데이션 ‘아트버스’ 프로젝트_예술창작이 필요한 곳에 ‘노란 버스’가 달려갑니다

서울시 노원구 월계동 연지초등학교의 운동장 안으로 노란 버스 한 대가 미끄러지듯 들어와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아이들 몇 명이 왁자지껄 수다를 떨며 차례차례 버스에 올라탔다. 내부를 개조해서 작은 공부방 같은 버스 안은 아이들이 조금만 떠들어도 웅웅거렸다.

“1층에는 무당벌레, 2층에는 딱따구리, 3층에는 부엉이…. 어, 두더지 그리고 싶은데 어떻게 그리지?” 새나 벌레 등 학교 운동장에 살고 있는 동물들을 위한 집을 생각해보라는 말에, 여덟살 우섭이는 ‘동물 아파트’를 그리고 있었다. 이날 수업을 진행한 조각가 김재환(37)씨가 우섭이의 그림을 보고 “멋있네, 정말 잘했다”라고 칭찬하자 아이는 몸을 배배 꼬며 미소를 지었다.

예술가들이 아이들과 어울려 미술 작업을 하고 있다.
예술가들이 아이들과 어울려 미술 작업을 하고 있다.

아이들이 올라탄 노란 버스의 정체는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을 찾아가서 문화 창작 수업을 하는 일명 ‘아트버스(art bus)’다. 이 버스 안에서는 10주 동안 젊은 예술가와 아이들이 함께 공동의 창작물을 만드는 ‘아트버스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실력 있는 미술 작가를 발굴하고 이들의 해외 교류와 전시 등을 지원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캔 파운데이션(Contemporary Art Network Foundation, 국제시각예술교류협회)이 기획한 이 프로젝트는 2009년 6월에 시작돼 벌써 2년째를 맞았다.

지난달 19일부터 시작된 김씨의 수업은 자신의 주변에 사는 동물들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주제다. 버스에 올라탄 아이들은 컴퓨터와 TV를 통해 여러 벌레와 새들의 사진을 보고, 운동장으로 나와서 화단과 연못 등을 둘러봤다.

김씨를 비롯해 다른 지도교사의 말을 잘 듣던 저학년 아이들과 달리 고학년 아이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저런 낙엽 밑에는 뭐가 있을까?”라는 김씨의 물음에 몇몇 남자아이들은 관심 없다는 듯 화단을 툭툭 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아이들이 조금씩 말을 꺼냈다. 현성(11)이는 “저번에 저기(소각장)서 매미가 허물 벗다가 못 벗어서 죽었어요”라고 흥분된 목소리로 말을 하기도 했다.

하준(11)이의 그림에는 땅속 개미집을 지키는 탱크와 대포가 수십 대였다. 하준이 같은 남자 아이들 그림 대부분에는 탱크와 대포가 등장한다. 애들이 자주 접하는 게임이 원인이다. 김씨는 “게임을 많이 한 고학년 아이들의 그림에서 특히 많이 등장한다”고 말했다.

주된 취미가 게임인 우리나라 아이들의 그림 대부분에 무기가 등장하는 것처럼, 한 사회의 분위기는 그 나라의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예술가가 ‘예술은 사회를 벗어날 수 없다’거나 ‘사회가 발전하면 예술도 진보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반대로 문화가 발전하고 문화적 소양을 갖춘 사람들이 늘어나면 사회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다 돌아간 버스에 앉아 김씨는 “지금처럼 사회 양극화가 심할 때,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문화적인 것에서 나와요”라고 말했다. 개인이 문화적으로 진보해 있으면 물질적으로 풍요하지 않더라도 양질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화적 소양을 갖춘 사람들이 많아지면 사회도 자연스레 변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캔 파운데이션을 만든 김성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부교수가 취약계층 아이들을 위한 미술교육인 ‘아트버스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도 김씨가 말한 그런 이유에서였다. 가정폭력에 시달리거나,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유능하고 젊은 예술가들과 자유로운 창작 작업을 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거나 사람들과 소통하는 능력 등을 익힌다. 자연스레 문화적 소양을 갖춘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김 교수를 비롯해 아트버스에 참여하는 모든 예술가와 관계자의 바람은 ‘연계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한 차수에 한두 명씩 나오는 천재성을 가진 아이들을 계속 지원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아이들의 꿈이 초창기에 좌절되지 않도록 연계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게 기업이나 정부의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