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비영리활동가의 일과 삶의 균형] 관계가 풀려야 활동도 풀린다 ⑥

“인간관계로 고민하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사이가 나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자기와의 사이가 나쁘기 때문에 고민한다” – 조셉 머피(Joseph Murphy)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장 행복한 순간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할 때라고 한다. 행복이라는 것이 참으로 소박하고 정겹고 쉬워 보인다. 그런데, 직장회식, 조찬모임, 동기모임, 동호회, 동창회 등등 수많은 모임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속에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다. 무엇 때문에 만나는 목적성의 만남들은 또 하나의 일이고 부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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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가장 가깝고 편한 가족들과의 만남조차도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 명절 때 스트레스를 받는 건 대한민국의 며느리들만은 아니다. 입시를 앞둔 고3생들,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 대학을 졸업한지 1-2년이 넘었는데 취업을 못한 취준생들, 서른이 훌쩍 넘은 3,40대 싱글들, 결혼하고 3-4년이 지났는데 아직 애가 없는 부부들까지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친지들이 던지는 걱정과 관심에 오히려 멘탈이 너덜너덜해진다. 상대방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없다면 모 건강식품 광고처럼 ‘올 추석엔 어떤 말보다 엄지척’ 해주는 것으로 끝내는 게 최선이다.

사람은 자의반 타의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관계를 맺는 모든 사람들과 동일한 친밀도를 가지지는 않는다. 관계의 질이 개인의 삶의 질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관계 안에는 진심으로 같이 기뻐해주고 같이 슬퍼해줄 수 있는 친구도 있고, 다소 거리감이 있는 어퀘인턴스(acquaintance: 아는 사람)들도 있다. SNS와 휴대폰 주소록에 수 천 명의 아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개인의 행복을 의미하지 않는다. 마음을 터놓고 애기할 수 있는 1-2명의 친구만 있어도 행복한 인생이고 성공한 인생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든 관계를 인간관계라고 한다. 인간관계는 행복의 근원이자 불행의 근원이 될 수 있다. 행복과 불행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원인 중 인간관계가 85%나 차지한다. 직장을 그만두는 이유 중 상당수가 직장 내 인간관계, 특히 상사와의 관계를 이유로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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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주립대 하치윌터 교수 연구팀이 700명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나쁜 보스로 인해 괴로운 직장 환경에 처한 직원은 더욱 피곤해지며 직책에 대한 압력으로 불안, 초조, 우울증, 불신 등을 키우게 된다. 이 같은 현상이 지속되면 직원은 자발적인 추가적 노력을 하지 않게 되며 봉급에 대한 불만보다 괴로운 보스에 의해 직장을 옮길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에 좋은 관계를 가지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좋은 관계를 가지고 싶지만, 막상 그들이 경험하는 것은 상처, 굴욕감, 수치심과 같은 관계의 단절을 경험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관계 속에서 점점 위축되는 경험을 하면서 점차 관계로부터 멀어진다. 즉, 관계를 갖고 싶으면서도 관계를 벗어나려는 ‘관계의 역설(the central relational paradox)’을 드러낸다.

공익을 위해 일하는 비영리활동가는 여느 직장인들보다도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많은 일을 한다. 관계를 맺고 풀어가는 것이 활동가의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값 등록금을 위해 1인 시위를 하는 활동가는 좋은 취지를 담은 피켓 하나 들고 광화문 한복판에 그냥 앉아 있지 않는다. 대학생들의 등록금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하기 위해 대학생들을 만나야 하고,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개인이나 조직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해야 하며, 이슈를 공론화하기 위해 보도자료를 만들어 기자들과 접촉하고, 제도나 법을 바꿀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정치인들도 만나 설득해야 한다. 활동가들은 관계의 역설조차 피해갈 수 없다.

활동가가 속한 비영리단체들도 수많은 이해관계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조직이 운영된다. 학계 및 전문가들로 구성된 이사회가 있고, 각종 위원회, 이슈별/사업별 부서(팀), 자원봉사자, 기부자(예, 기업, 단체, 개인 등), 사업별 파트너, 서비스 수혜자, 지자체 공무원 등 하늘의 별만큼 셀 수 없이 많은 이해관계자가 존재한다. 그러한 이해관계자를 일일이 대응해야 하는 일은 단체에 속한 활동가의 몫이다.

많은 사람들이 관계에 있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상처다. 과연 상대방이 내 진심을 알아줄까. 나를 오해하거나 미워하지는 않을까, 혹시 배신을 당하지는 않을까하는 두려움을 가진다. 아무리 사명감에 불타는 활동가라 할지라도 모든 사람들과 항상 좋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피해를 입은 시민들이나 지역사회를 도우려고 나섰다가 오히려 욕을 먹는 경우도 허다하다. 활동가가 더욱 힘든 건 관계로부터 긍정적인 경험보다 부정적인 경험을 더 많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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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들이 연결된 관계 속에서 가장 힘든 것은 어쩌면 가족일지도 모르겠다. 활동가도 누군가의 아들이고 딸이고, 누군가의 남편이나 아내이고,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회사원,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공무원, 교사, 의사, 변호사 같은 전문직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가족들에게 설명하기가 참 쉽다. 그러나,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은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이름 있는 조직, 높은 연봉, 쾌적한 근무환경을 내세울 수 없고, 하는 일이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설명하기가 참 어렵다. “이건 중요한 일이고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고 꼭 필요한 일이다”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 참 난처하다.

‘시민단체 활동가와 엄마’라는 제목의 안진걸(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씨에 대한 기사(한겨레신문, 2015.12.18.)에는 40넘은 아들에게 “사시를 언제 보냐”고 묻는 어머니의 순수함과 진한 사랑이 담겨있다. 아들은 빈말이지만 나중에 여유가 되면 로스쿨에 가보도록 노력하겠다고 어머니를 위로한다. 아들은 어머니의 소원인 사법시험을 못 봐서 늘 미안하고 죄송하지만, 좋은 세상을 앞당기는데 기여하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니 보람차서 좋다면서 이제는 부디 걱정을 거두시면 좋겠다는 속마음을 털어 놓는다. 

어머니 : “근데 너 언제 사시 볼 거냐. 엄마가 돈 보태줄게. 우리 막내가 왜 법대꺼정 나와서 시민단체 가서 저러고 있을까잉.”

활동가 아들 : “엄마, 사랑하는 어무니! 사법시험 못 봐 늘 죄송해요. 그래도 하고 싶은 일 해 보람차요. 막내 걱정은 그만하시고 흑흑.”

오래 전부터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연구들은 사회적 지원(social support)에 주목하고 있다. 사회적 지원은 인간이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유용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의미한다. 최근 일가정양립정책과 관련하여 탄력적근로시간제, 재택근무제, 스마트워크, 시차출퇴근제 등 제도적 지원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상사, 동료, 가족, 친구 등으로부터 받는 비제도적인 사회적 지원이 오히려 일-가정갈등을 줄인다는 연구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활동가들은 일과 삶이 충돌하여 갈등을 일으킬 때 이를 완화시킬 수 있는 사회적 지원이 매우 부족하다. 사회적 지원은 정서적 지원과 도구적 지원으로 구분된다. 정서적 형태의 지원은 이해와 격려, 관심, 긍정적 태도 등으로 이루어지며, 도구적 형태의 지원은 역할과 의무를 대신해주거나 정보, 지식을 제공해주는 등 직접적 도움으로 나타난다. 인력과 재정이 열악한 여건 속에서 조직도 상사도 동료도 상호간 직무협조, 정보교환, 정서지원 등의 도움을 주고받을 여유가 별로 없다. 어떤 활동가는 영리조직에서 일할 때보다도 서로 협조가 더 안 된다고 애기한다.

최근 공익활동을 접거나 자신이 하는 일에 회의를 느끼는 젊은 활동가들은 조직과 선배들이 사명과 열정만을 요구하고, 사명과 열정을 지속할 수 있는 다른 한 축인 개인의 삶의 균형을 고민하고 해결하는 것에는 너무 무관심하다고 토로한다. 개인의 삶을 희생시키고 얻은 더 나은 세상이 무슨 의미란 말인가. 개인으로서 생활인의 한 사람으로서 활동가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일과 삶의 균형을 가치 있게 생각하고 지원하려는 조직문화만으로도 활동가는 힘을 얻을 것이다.

즐겁고 활기찬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활동가들이 조직 내 뿐만 아니라 자신의 관계망 속에서 다양한 사회적 지원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가족으로부터의 인정과 지지가 절실하다. 배우자를 비롯한 가족들의 지지와 지원은 갈등을 완화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갖도록 하는 심리적 자원을 제공한다. 남편의 지원을 받는 여성중견간부들이 그렇지 않은 여성간부들보다 직장 내 몰입할 수 있는 더 많은 시간과 발전기회를 갖기 때문에 경력성취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가족들의 지지를 받는다면 활동의 성과도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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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누구에게나 힘이자 짐이고, 짐이자 힘이다. 가족들을 공익활동의 지지자로 설득시키는 것은 활동가의 숙제다. 언어, 가치, 문화가 다른 기업과 정부를 설득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 가족과 주변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고 소통의 노력을 멈춘다면 스스로 고립을 유발하게 된다. 추운 겨울 싱글들에게는 추위를 이길 애인이나 내복이 필요하고, 외롭고 고독한 공익활동의 길을 가는 활동가에게는 가족의 지지가 필요하다.

좋은 일, 정의로운 일을 하는 것이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서 해야 할 역할과 책임에 면죄부를 주지 못한다. 가족의 지원을 받으려면 자신이 먼저 가족에게 애정과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시간이 부족하다면 단체의 프로그램, 행사, 이벤트에 초대하고 자원봉사 활동에 가족을 참여시켜보는 것은 어떨까.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의 일을 이해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도 동참시키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것이 관계이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통해 서로 인정과 지원을 주고받는 관계가 원활히 이루어져야 한다. 관계가 풀려야 삶도 공익활동도 사회도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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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열망 넘치는 조직과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이 삶의 미션이다. CSR, CSV, 섹터 간 파트너십, 민관협력(거버넌스), 리더십, 전략경영, 성과평가, 소셜임팩트, 일가정양립 등의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영리와 비영리를 넘나들며 강의, 교육, 컨설팅, 연구 등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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