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누구나 안전한 사랑을 할 권리가 있다”

사회적기업 인스팅터스 인터뷰

“저희의 슬로건은 ‘누구나 안전하게 사랑할 권리가 있다’는 거예요. 청소년도 ‘누구나’에 포함될 수 있는 거죠.”

청소년이 콘돔을 사도될까? 이에 대한 사회적기업 인스팅터스의 대답은 너무나 명확하다. 이들은 콘돔이 필요한 청소년을 위해 친환경 콘돔을 반값으로 판매하고, 수익금의 일부는 위기청소년의 성교육에 활용한다. 한 달에 두 개씩 청소년에게 콘돔을 무료로 나눠주는 이벤트(프렌치레터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지난 6월 28일 수유동 사무실에서 인스팅터스를 설립한 박진아 CMO와 성민현 CEO를 만나 그들이 생각하는 ‘사랑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공동설립자인 김석중 COO는 군 복무 중인 관계로 인터뷰에 함께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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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에 관심 많던 고교 동창생, 콘돔과 사회적 기업을 연결하다

고등학교 동창인 이들은 사람은 어렸을 적부터 성에 관심이 많았다. 성은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것인데, 이를 터부시하는 우리나라 특유의 분위기 탓에 미혼모, 낙태, 영아유기 등 사회문제가 발생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폐쇄적인 성 문화 중에서도 특히 ‘약자’인 청소년이 눈에 띄었다. 현행법에 따르면 성적 자기결정권이 인정되는 나이는 만 13세부터다. 법이 정한 나이 기준을 넘어서, 청소년은 어린이가 성인이 되는 과정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청소년이 제대로 된 성지식을 습득하기 전에 ‘방생’된다.

박 CMO는 “실제로 콘돔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피임을 해야 하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한다”면서 “성인이 된 이후에는 성교육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청소년기에 건강한 성적 가치관을 확립할 수 있도록 돕고, 이들의 성적 권리를 보호해주는 게 곧 성문화 전체가 건강해지는 방향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일찍부터 경제활동을 통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경제’를 알고 있던 세 사람은 청소년의 ‘성 소외’ 문제를 사회적기업을 통해 풀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좋은 일에도 ‘경제활동’이 붙으면 보다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유지가 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비영리단체는 인간의 이타심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반면 사회적 기업은 궁극적으로는 좋은 일을 하지만, 시장경제 안에서 개인의 ‘니즈(Needs·욕구)’를 충족하기 때문에, 보다 효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성민현 CEO)

이들이 정한 사업 아이템은 ‘콘돔’이다. 법에 의하면 사정지연형, 돌기형과 같은 특수 콘돔은 성인용품으로 분류돼 청소년이 구매할 수 없지만, 일반 콘돔은 의료용구에 속하기 때문에  청소년이 구매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실상은 이와 다르다. 성 CEO는 “청소년이 콘돔을 사려해도 편의점에서 판매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고, 포털에서도 청소년의 콘돔 검색이 차단돼 온라인 구매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인스팅터스는 남녀노소 누구나 건강하게 쓸 수 있는 콘돔을 만들기로 결심, 친환경 콘돔 ‘이브(EVE)’를 개발했다. 이브는 고무에 들어있는 발암물질(니트로사민)을 제거한 콘돔으로 국제동물보호단체인 페타(PETA)로부터 ‘비건(Vegan)’ 인증까지 받았다. 비건인증은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고, 동물실험 등을 사용하지 않은 제품에만 주어진다.  

콘돔을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evecondoms.com)도 개설했다. 청소년도 이용할 수 있도록 홈페이지를 전체 이용가로 만들기 위해 대형 포털 콘돔 검색광고도 포기했다.

“홈페이지 안에 성인 인증창을 달지 않으면 검색광고 신청을 못 해요. 온라인으로 콘돔을 구매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털 검색을 통해 홈페이지를 찾는데, 인스팅터스는 가장 큰 시장인 네이버를 포기한 셈이죠. 하지만 저희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홈페이지에 성인 인증창을 달 생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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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의 性’에 대한 인식 바꾸고 파…캠페인∙규제개선요청 병행할 것”  

인스팅터스의 ‘프렌치 레터 프로젝트’는 청소년에게 콘돔을 직접 지원하는 캠페인이다. 인스팅터스 홈페이지에 청소년임을 인증하고, 일정 양식(연령∙첫 성경험 시기∙콘돔 사용 여부와 이유)만 작성하면, 한 달에 두 개씩 이브 콘돔을 우편으로 보내준다. 월 평균 50여명의 청소년이 프렌치 레터 프로젝트를 통해 콘돔을 받고 있다.

무료로 보내준 콘돔이 부족한 경우에는 경제 사정을 고려해 반값에 콘돔을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매월 10명 정도의 청소년이 절반 가격에 이브 콘돔을 구입하고 있다. 성 CEO는 “프렌치 레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청소년의 성적 권리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무시되고 있는지 실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프렌치 레터를 신청하는 친구들 중에 지방에 사는 청소년이 많아요. 지역 공동체가 작아서인지 콘돔을 사는 부담이 더 큰 것 같아요. 애인이 없거나, 성관계를 하지 않아도 콘돔을 신청하는 경우도 있어요. 콘돔이 어떤 건지한 번 보고 싶어서 신청을 하는 거죠. 폐쇄적인 성 문화 때문에 성에 대한 지식까지 막혀있는 상황이 안타까워요.” (박진아 CMO)

물론 청소년의 콘돔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이들의 시도가 쉽지만은 않았다. 예상치 못한 난관도 많았다. 콘돔을 신청한 게 들켜 아버지에게 몽둥이로 맞고 콘돔을 압수당한 남학생도 있고, 콘돔을 받은 여학생의 어머니가 ‘왜 우리 딸에게 이런 걸 보내느냐고’ 따지는 일도 있었다. 콘돔을 신청한 후, 회사로 전화을 걸어서 “절대 자기가 신청했다고 말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한 학생도 있었다. 박 CMO는 “현재 프렌치 레터를 통해 배송되는 콘돔은 수령인 이름을 신청자가 원하는 이름으로 해주고, 배송 봉투도 눈에 띄지 않는 일반 우체국 봉투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스팅터스는 현재 청소년의 피임도구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여성가족부고시 제2013-44호’의 개정을 요구하는 민원을 넣은 상태다. 청소년의 콘돔 접근성이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가 콘돔 일부를 청소년 유해물건으로 지정한 고시 때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박 CMO는 “미국, 유럽, 싱가폴 등 해외 사례를 살펴봐도 특정 콘돔에 대해서만 청소년 판매를 금지시켜 놓은 사례가 없다”고 지적했다.

“‘특정 콘돔을 사용하면 신체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는 등 관련 고시의 근거 자체가 애매모호하고 주관적이에요. 콘돔 구매가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편의점이나 온라인 쇼핑몰에서 일일이 이건 청소년이 사도 되는 콘돔, 이건 사면 안 되는 콘돔이라고 구분해서 판매하는 것도 아니니 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셈이죠.”

인스팅터스는 민원 결과에 따라서 청소년보호위원회와 해당 시행령에 대한 행정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다. 필요한 경우에는 헌법소원을 통해 현재의 콘돔관련 법이 헌법 제34조 4항 ‘국가는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에 위배되는 지를 가릴 계획이다.

두 사람은 행정소송이나 헌법소원을 통해 기존의 법이 쉽게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인스팅터스의 설립이 그랬듯, 이 같은 시도 자체가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옹호하는 데 의미 있는 한 걸음이 되길 바랄 뿐이다.  

“사실 (저희가 행정소송을 해도) 안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런 시도는 한 번도 없었잖아요. ‘콘돔은 성인용품’이라는 인식 탓에 많은 청소년이 콘돔을 구매할 때 심리적 압박감과 죄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인스팅터스가 남녀노소 누구나 쓸 수 있는 건강한 콘돔을 만들고, 청소년도 접속할 수 있는 콘돔 구매 사이트를 만든 것처럼 이번 시도 역시 청소년의 성에 대한 잘못된 사회의 인식을 해소하는 기회가 되면 좋겠어요.”

이다비 더나은미래 청년기자 (청세담 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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