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전화 한 통으로 허문 19개 언어 장벽

통역 자원봉사단체 ‘비비비 코리아’

자원봉사자 4000여명 참여 24시간 무료 통역 서비스 제공
10년 이상 장기 봉사자 1000여명 다문화 가정 등 상담 역할까지

지난해 11월 밤 11시, 60대 태국인 여성이 한국행 비행기에서 갑작스레 사망했다. 시신 수습과 장례 절차 등이 시급했지만 동승했던 유가족은 공항에서 넋 놓고 눈물만 흘릴 수밖에 없었다. 어디서도 태국어가 통하지 않는 데다 한밤중 주한 태국 대사관과도 연락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때 항공사 직원이 바로 연락한 곳은 전화로 통역 자원 봉사를 해주는 비영리 단체 ‘비비비(BBB) 코리아’였다.

곧바로 10년 차 태국어 재능 봉사자인 김형규(51)씨가 연결됐다. 그는 직원에게 항공사 매뉴얼을 설명 들은 뒤, 유가족에게 앞으로 절차와 해야 할 일들을 상세히 통역했다. 김씨는 “자국어로 위로와 도움을 받자 유가족이 마치 지인을 만난 듯 참고 있던 슬픔들을 쏟아내며 울어 함께 마음이 착잡해졌다”고 당시를 기억하며 말했다.

“통역은 단순히 언어만 전달하는 것이 아녜요. 미묘한 말 한마디로 오해가 풀리기도 하고 마음을 나누기도 합니다. 그렇게 언어 장벽을 넘어 문화 차이를 줄여나가는 게 BBB 코리아죠.”

비비비코리아_사진_나눔_비비비코리아_20160816
지난 10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비비비 코리아는 인천공항공사와 함께 ‘BBB 데이 캠페인’을 진행, 내외국인에게 단체 및 통역 서비스 이용 방법을 알렸다. / 비비비 코리아

◇19개 언어 24시간 통역 지원… 수만명 재능 기부자 힘

BBB 코리아는 2004년 설립돼 현재 영어·일본어·중국어는 물론 인도네시아어·몽골어 등 총 19개 언어를 365일 24시간 무료로 통역해준다. 이용도 대표번호(1588-5644)로 전화하거나 ‘BBB 통역’ 앱을 실행해 필요한 언어를 선택만 하면 즉시 통역자에게 연결돼 간편하다. 덕분에 해마다 이용자가 증가, 지난해에는 8만건의 통역이 이뤄졌다.

이 서비스를 이끌어가는 건 자원봉사자 4000여명이다. 모두 3단계 선발 과정을 통과한 ‘통역 능력자’다. ’24시간 전화 통역 봉사를 하겠다’는 서약서에 동의(부득이한 경우, 순차적으로 다음 통역 봉사자에게 연결)한 이들은 실전과 동일한 테스트를 받는다. 불시에 전화 연결은 물론, 실사례로 상황극을 이어가면 전문가들이 발음의 정확성·유창성 및 태도 등을 평가한다. 이후에도 온라인으로 약 1시간의 자원봉사자 교육을 이수해야만 한다.

까다롭지만 지원자가 매번 800명 이상 몰리는 건 언어 재능도 녹슬지 않으면서 일상에서 틈틈이 봉사할 수 있어서다. 10년 이상 장기 자원봉사자도 1000여명이나 된다. 12년째 BBB 코리아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이승자(74·중국어 통역)씨는 “내 시간을 조금만 할애했는데, 마지막에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국가나 문화 사이에서 다리 역할이 된 것 같아 사명감이 크다”고 밝혔다.

◇다문화 가정 화해·외국인 근로자 상담 등 일상 속 통합 이끄는 BBB 코리아

비비비코리아에는 특히 이용이 많은 인천공항 이용객을 위한 ‘핫라인’이 마련돼 있다. 지난 10일엔 ‘인천공항 특임봉사단’ 3기로 250명을 새롭게 임명했다./비비비코리아 제공

단체 활동 초기엔 월드컵이나 아시안게임 등 행사나 국제회의에서 주로 이용되던 BBB 코리아의 서비스는 점차 소문이 나면서 일상 서비스로 자리 잡고 있다. 김형규 태국어 재능 봉사자는 “경찰서나 병원뿐 아니라 다문화 가정이 늘면서 태국에서 온 며느리를 칭찬해주고 싶다는 시어머니, 수화기를 바꿔가며 싸우는 부부 등에게도 전화가 온다”며 “대화를 나누지 못해 깨질 뻔한 가족들에겐 사소한 통역이 화해의 시작점이 되더라”고 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니 익명의 상담 전화도 많다. 유지성(53·인도네시아어 통역) 봉사자는 “인도네시아 외국인들이 주로 3D 업종에서 일하다 보니 한국 생활의 어려움을 전화로 털어 놓는다”고 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제도나 절차 등을 알려주며 위로도 하지만 특히 청년 노동자들에게는 타이를 때도 많다고 한다. 그는 “조금만 버티면 되는데 쉽게 회사를 나갔다가 불법 체류자가 되는 청년이 너무 많다”며 “20대 때부터 30년 동안 인도네시아 현지 회사를 다녀 젊은이들의 어려움을 통역할 때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했다.

BBB 코리아는 더 많은 이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정부 및 기업 55곳과 협약을 맺고 이용 교육 및 홍보를 진행하고 있다. 경찰청과는 11년째 지구대 등 전국적으로 외국인 수사 과정에서 BBB 코리아를 적극 활용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인천공항공사와도 2009년부터 안내 데스크에 단체 홍보물 진열은 물론, 매년 공항에 상주하는 전 직원과 함께 ‘BBB 데이 캠페인’을 진행해 BBB를 알리는 활동을 펼친다. 특히 GS리테일과는 지난해부터 편의점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BBB 코리아 이용을 교육해 편의점을 BBB 코리아 안내 거점이 되도록 하고 있다. 최미혜 BBB 코리아 사무국장은 “BBB 코리아가 대한민국에서 시작했지만 세계인의 브랜드로 각인되고 통역이 필요한 이들이 제때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기사는 더나은미래와 동그라미재단이 진행한 ‘비영리 리더스쿨 3기’ 취재·보도자료 작성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한 박지훈 BBB 코리아 캠페인문화사업 팀장의 글을 토대로 취재, 작성되었습니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