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Cover story] 여행 통한 꿈과 희망… ‘행복의 의미’ 되돌아보는 기회로

하나투어 ‘아주 특별한 허니문’
세부 무료 신혼여행 30쌍 참가
어머니 병간호로 식 못올린 부부
세 번째 암수술 앞둔 아내 위해…

새벽 한 시, 비행기가 가볍게 세부공항의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착륙과 동시에 다섯 시간의 비행으로 인한 피로는 어느새 사라졌다. 사람들은 더운 바람이 불어오는 활주로에 서서 남국의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 가득 별이 빛나고 있었다.

신혼여행이다. 하지만 갓 식을 올린 부부들만 온 것은 아니었다. 하얗게 머리가 센 노(老)부부, 장애를 안고 있는 남편의 손을 붙잡은 아내, 한국보다는 필리핀의 공기가 더 익숙한 신부의 팔짱을 낀 남편들이 입국 심사장으로 향했다.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 본 사람도 있었다. 입국카드를 쓰는 것부터가 하나의 모험처럼 여겨지는 사람들, 이들 모두가 신혼여행을 왔다.

혼인서약식(아래 사진)을 마친 참가자들이 혼인서약서를 들고 기념촬영을 했다. 혼인서약서에는‘아주 특별한 허니문’기간 동안 촬영한 커플 사진이 담겨 있다. /하나투어 제공
혼인서약식(아래 사진)을 마친 참가자들이 혼인서약서를 들고 기념촬영을 했다. 혼인서약서에는‘아주 특별한 허니문’기간 동안 촬영한 커플 사진이 담겨 있다. /하나투어 제공

하나투어의 사회공헌사업인 ‘아주 특별한 허니문’의 풍경이다. 하나투어는 지난 4월 28일부터 5월1일까지 여러 가지 사정들로 신혼여행을 가지 못한 부부 서른 쌍을 필리핀 세부로의 여행에 전액 무료로 초대했다. 결혼식도 올리기 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어머니의 병간호를 하며 나아지지 않는 살림살이 속에서도 애틋한 인연을 지켜온 부부도 있었고, 중매를 통해 몇 번의 국제통화와 두 번의 만남만으로 혼인신고를 하곤 한국에서 20년이 넘게 살고 있는 부부도 있었다. “혼자 살던 집이라 좁고 살림도 별로 없는데, 필요한 것만 같이 장만하자”면서 앞장서서 걸어가는 남편을 따라갔더니 무허가 단칸집 문을 열고 들어가더라며 결혼 첫날밤을 기억하는 부부도 있었다.

그 속에서도 유독 눈에 들어오는 커플이 있었다. 이들은 섬 낚시 때도, 일급 호텔의 아침 식사에서도, 세부의 명물 ‘어메이징쇼’에서도 항상 붙어 있었다. 남편은 작은 아내의 팔을 끊임없이 주물렀고 야윈 아내는 삭발한 머리를 모자로 가리고 있었다.

김수연, 박지완(가명) 부부는 2000년 4월 23일에 결혼했다. 첫 결혼 생활은 지하실 단칸방에서 시작했다. “숟가락 하나 없는 방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을 때가 엊그제”같았지만 남편은 부지런했고 아내는 야무졌다. 지하실 단칸방에서 1층 단칸방으로, 다시 방 두 개짜리 집으로 옮기며 살아왔다. 그 사이 남편의 직업은 견인차 일에서 공업사 일을 거쳐 택시기사로 바뀌었고, 아이들은 3학년과 5학년이 되었다. 부부는 행복했다.

그러던 2009년, 아내가 위암 3기 판정을 받았다. 9번의 항암치료와 2번의 큰 수술을 받는 동안 암은 비장, 췌장, 신장으로 번졌다. 아내는 여행 이틀 후에 세 번째 수술을 예정해 놓고 있었다. 수술 직전, 세부로 신혼여행을 온 셈이다. 몸이 나빠지면 어떻게 하느냐는 주위의 만류가 있었지만 남편은 “국내 여행도 못 다녀보고 고생만 한 아내에게 못난 남편이 해줄 수 있는 것이 이것뿐”이라는 생각을 했고 아내는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각오로 왔다.

이들 부부에게 신혼여행의 일정이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서로에 대한 믿음이 다시 한 번 생긴 계기가 되었다. 남편은 “부부는 함께 있는 것, 그것만으로 행복”이라며 아내의 손을 잡았고 아내는 “이번 여행을 통해 남편이 정말 내 곁에 있기를 원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렇게 말을 하는 동안에도 남편은 바늘이 손가락 끝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당하는 아내를 위해 쉴 새 없이 손발을 주무르고 있었다.

미상_사진_사회공헌_신혼여행_2011세부에서의 황금 같은 허니문을 장식하는 마지막 날 밤, 호텔에서는 30쌍의 부부들만을 위한 혼인 서약식이 열렸다.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은 후, 불이 꺼진 연회장에서 부부들은 서로를 껴안았다. 어둠 속에서 어느 곳에서부턴가 울음이 번져오기 시작했다. 작게 흐느끼는 부부도 있었고 서럽게 우는 부부도 있었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수십년 동안 묵혀왔던 무엇이 이국의 어둠을 뚫고 올라왔다. 울음은 길었고 밤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 전, 세부 시내 관광이 있었다. 수연씨와 지완씨가 버스에서 나란히 앉지 않고 앞뒤로 앉아 있었다. 혹시 간밤에 안 좋은 일이 있었느냐는 기자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수연씨가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저를 자꾸 창가로 앉히고 이 사람이 제 옆에 앉으니, 이 사람이 제대로 세부 구경을 할 수 없잖아요. 이번 여행 내내 그게 너무 미안했어요. 그래서 돌아가기 전에라도 마음 편하게 창 밖을 보라고 뒷자리로 보냈어요.”

‘아주 특별한 허니문’에 참여한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행복의 의미에 대해 한마디씩 말을 했다. “조금 더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양보하고” “잘 안 되더라도 열심히 살자고 노력하라”는 덕담을 서로를 향해 주고받았다.

여행 참가자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의 인사를 받던 하나투어의 이상진 차장은 “여행은 누구에게나 꿈과 희망을 준다”며 “여행업의 특성을 살려 사회공헌 사업도 많은 이들에게 행복의 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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