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수)

[Cover story] “한국 친구들의 도움으로 건강과 꿈을 찾았어요”

한국 도움으로 건강 되찾은 우즈베키스탄의 ‘니고라’

햇살 따뜻한 지난 주말. 병원 복도에 들어서자, 시간이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링거 바늘을 손에 꽂은 채 천천히 복도를 지나갔다. 휠체어를 탄 중년의 남자는 서다 가다를 반복했다. 공기는 무거웠고, 낮은 목소리들이 웅웅거렸다. ‘이곳은 아직 봄이 오지 않았구나’ 생각하는 찰나,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8살 소녀 ‘니고라’가 활짝 핀 봄꽃처럼 웃고 있었다.

아이와 눈을 맞춘 후 시선은 바로 몸에 두른 기구로 옮겨갔다. 소녀의 여린 몸에 갑옷 같은 회색 보조기구와 머리를 고정하는 흰색 장치가 달려 있었다. 측은한 표정을 짓자 아이는 고개를 젓는다. 이 기구들은 5시간에 걸친 수술을 무사히 끝냈다는 ‘영광의 장치’들이기 때문이다.

니고라를 응원하는 모든 사람이 모인 날, 아이의 입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후원자들의 따뜻한 마음이 한 아이의 인생을 바꿨다.
니고라를 응원하는 모든 사람이 모인 날, 아이의 입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후원자들의 따뜻한 마음이 한 아이의 인생을 바꿨다.

아이는 돌이 지난 후부터 뼈가 휘기 시작했다. 커갈수록 통증은 더 심해졌다. 뼈가 장기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가난한 부부는 아이에게 “수술하자”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아빠 톨릅씨와 아내는 “아이가 큰 병을 앓고 있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생후 8개월 때 아이가 침대에서 떨어진 기억만 떠올리며, 부부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밤마다 아이를 껴안고 우는 것이, 부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러던 2007년, ‘희망’이라는 단어가 니고라에게 찾아왔다.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이 우즈베키스탄 베카밧에 장애아동을 위해 만든 유치원에 들어갔고, 니고라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한국에서 후원자들이 생겨났다. 서울 은평구 서문교회의 중고등부 학생 20여명은 니고라를 위해 두 달에 한 번씩 저금통을 깨서 2년 동안 200여만원을 모았다. 강남세브란스 병원도 돕겠다고 나섰다. 검사 결과, 니고라는 뼈가 옆으로 휘는 ‘척추 측만증’과 뼈가 앞으로 굽는 ‘척추 전만증’을 동시에 앓고 있었다.

수술을 집도한 척추정형외과장 김학선 교수는 “척추 측만증과 전만증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두면 폐가 눌려 숨이 차고 천천히 마비가 온다”고 설명했다. 특히 10살 이후까지 수술을 하지 않고 아이가 성장기에 들어서면, 뼈는 휘어진 상태에서 몸만 자라게 된다. 최악의 경우에는 아예 걷지 못하게 된다. 김 교수는 “그나마 니고라는 이른 시기에 수술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날 병실에는 오랫동안 니고라를 응원했던 후원자들이 찾아왔다.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아이에게 줄 선물도 가져왔다. 파란 꽃이 붙어 있는 머리띠와 옷이었다. 니고라는 선물을 한참 바라보고 만지작거린 후에 살포시 웃으며 또박또박 한국말을 했다. “고맙습니다.” 사람들은 니고라의 ‘한국말’에 신기해하며 박수를 쳤다.

신보경기자_사진_후원_니고라2_2011많은 후원자들 사이에는 ‘저금통을 깨서 돈을 모은’ 14살 소년 백재승군과 곽대현군도 있었다. 감정표현이 서툰 사춘기 소년답게 조금 무뚝뚝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게 시험기간 중에도 니고라를 보겠다고 달려온 속정 깊은 소년들이다. 곽군은 “전에 동영상으로 니고라를 봤을 때는 많이 아파 보였는데 수술을 마치고 나니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라며 니고라의 밝은 모습에 안도했다. 백군은 의젓한 목소리로 “돈 쓰는 것, 공부하는 것은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용돈을 모아 니고라의 수술비에 보태고, 무사히 수술을 끝낸 니고라를 만나는 것은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 생명을 살리는 데는 이처럼 여러 사람의 관심과 사랑, 병원의 후원 등이 필요했다.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은 각계각층의 정성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기아대책은 작년 9월 의료지원사업만을 전문적으로 하기 위해 ‘생명지기’라는 의료지원본부를 만들었다. 돈이 없어 질병을 치료할 수 없는 국내외 저소득층 아이들을 대상으로 의료지원을 한다. 생명지기 김성식(36) 사무총장은 “지금까지 총 8명의 아이들을 도왔고 올해 목표는 100명”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곰인형을 안고 뛰어다녔다. 통증을 참느라 하루하루 버티기 급급했던 아이는 이제 환자를 고치는 의사를 꿈꾼다. 시간이 흐르면 누구나 할 수 있고 꿈꿀 수 있는 것을 하기 위해 니고라는 꼬박 8년이 걸렸다. 작은 마음들이 모이니, 한 아이의 인생이 바뀌었다.

※ 니고라와 같이 질병을 앓고 있지만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국내외 아동을 돕고 싶으신 분들은 기아대책(02-544-9544/www.kfhi.or.kr)으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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