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Cover Story] 천재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의 이유 있는 기부

“다음엔 또 뭘 할까 고민… 나눔에도 계속 발전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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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 때쯤 태어나서 처음으로 요양원(Nursing home)에 봉사활동을 갔어요. 제 조악한 연주를 듣고 기뻐하는 분들의 표정을 보면서 처음 알았죠. ‘나눔은 어려운 게 아니구나!’ 제 인생을 바꾼 기억 중 하나예요.” 인터뷰를 마친 오닐이 자신의 비올라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박정현 사진작가·옥스팜코리아 제공

지난 10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삼성동 테헤란로. 국제구호기구 옥스팜과 이탈리안 셰프 샘킴이 함께하는 ‘푸드트럭’ 현장에 앞치마를 둘러맨 ‘천재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Richard Yongjae ONeill·38)이 깜짝 등장했다. 오닐은 샘킴이 직접 만든 파스타를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세계의 가난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1990년대와 비교해 세계의 빈곤 인구는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10억 명 가까이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어요(UN새천년개발목표보고서, 2015). 한국은 전 세계가 놀랄 만큼 멋진 일을 해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앞으로 더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말을 마친 오닐이 비올라를 켜자, 북적이던 테헤란로가 일순간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 중 한 명인 바흐의 곡과, 한국의 동요 ‘섬집아기’가 빌딩숲 사이로 울려 퍼졌다.

음악가 최고의 영예로 불리는 ‘에버리 피셔(Avery Fis her)’ 수상, 미국 UCLA 최연소 음악교수(2007~2016)이자 줄리어드 음악대학원 최초로 아티스트 디플로마(Artist Diploma·전문연주자 과정) 전액 장학금을 받은 비올리스트. ‘세상 모든 사람은 선하다’는 믿음으로 오늘도 자신을 낮추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남자. 리처드 용재 오닐의 삶과 음악, 나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박정현사진작가,옥스팜코리아_리처드용재오닐_나눔_기부_비올리스트_샘킴_테헤란로_푸드트럭_2016
“오늘 푸드트럭 현장을 방문한 시민 중 50여분이 정기후원 약정서에 사인했대요. 정말 놀랍고 멋진 일이죠? 이렇게 좋은 날, 좋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나눔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다니. 전 정말 행운아인 것 같아요.”

오닐을 다시 만난 것은 저녁 8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푸드트럭을 마치자마자 일정 하나를 더 소화한 후, 인터뷰 장소에 도착했지만 조금도 힘든 기색이 없었다. 한여름 날씨에 점심식사까지 미뤄가며 350여명에게 일일이 파스타를 건네고, 야외에서 공연까지 한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일정이 고되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앞에 놓인 물잔에 마시던 커피를 조금 섞었다.

“이 정도…. 이런 색깔의 물이었어요. 상상이 되세요? 이렇게 오염된 물이라도 얻기 위해 매일 30㎞ 넘게 걸어야 하는 삶 말이에요. 제가 갔던 케냐의 투르카나(Turkana) 지역은 모든 생활용수를 고인 물로 사용하기 때문에 수인성 전염병이 창궐해 있었어요. 영양이 부족하고, 충분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아이들에게 설사는 죽음과 연결되는 위협이었죠. 그들의 고통에 비하면 오늘 제가 한 일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힘들다고도 할 수 없어요.”

오닐은 지난해 4월 옥스팜과 함께 케냐 북부의 투르카나 지역을 방문했다. 투르카나에는 아프리카 최대 난민촌인 카쿠마 난민촌이 자리 잡고 있다. 콩고·남수단·우간다 등 인근 국가에서 발생한 난민 20만명이 이곳에 체류 중이다. 난민촌 인근 마을에서 머무른 일주일은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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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팜코리아 제공

“케냐에서 로키차라는 여성을 만났어요. 얼마 전 아이를 잃었다고 했죠. 울지도, 불평하지도 않고 담담하게 사실을 얘기하는 그 모습이…. (침묵) 전 로키차가 어떤 심정일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어요. 남편은 도시에서 일을 하느라 며칠 씩 집을 비우기 때문에 그녀 혼자 남아 다섯 아이를 돌봐야 해요. 사람들 앞에서 음악을 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건 그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정말 최소한의 일이에요. 우리는 모두 ‘하나의 인류(One race)’니까요. 당연한 책임이죠.”

그가 케냐를 후원하는 데 샘킴은 든든한 동료다. 샘킴은 오닐이 비올라를 연주할 때마다 휴대폰 카메라를 켤 만큼 그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오닐에게도 샘킴은 최고의 파스타를 만드는 셰프이자 존경스러운 친구다. 지난해 MBC 글로벌 나눔 프로젝트 ‘러브챌린지’에 함께 출연하며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이제 서로의 나눔 활동을 독려하고 있다.

“샘은 (나눔에) 강한 전략을 갖고 참여하는 사람이에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이 가난을 해결하는 데 관심을 갖게 할 수 있는지 알죠. 푸드트럭도 샘의 아이디어예요. 그거 아세요? 샘에게는 정말 귀여운 아들이 있어요. 바쁜 와중에 짬이 나면 잠시라도 사랑스러운 가족과 함께 있고 싶을 거예요. 하지만 샘은 자신의 시간과 재능을 기꺼이 사람들과 나누고 있죠. 샘은 그동안 17개 지역에서 5000명이 넘는 사람에게 요리를 대접했어요. 후원자도 많이 모았죠. 전 그를 정말 존중해요. 그런 사람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게 영광이에요.”

박정현사진작가,옥스팜코리아_리처드용재오닐_나눔_기부_비올리스트_2016◇사랑으로 성장한 천재 비올리스트 “나눔은 나의 책임”

그는 “내게 어머니를 돌볼 책임이 있듯, 우리에게는 모두 세상의 가난을 함께 해결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오닐에게 ‘어머니’라는 말의 무게는 특별하다. 그의 어머니 이복순 여사는 지적장애인으로 한국전쟁 당시 부모를 잃고, 아일랜드계 미국인 오닐 부부에게 입양됐다. 어머니는 미혼모로 아들 리처드를 낳았고, 육아가 어려운 어머니를 대신해 조부모가 그를 보살폈다. 할머니는 아흔이 넘는 나이까지 직접 차를 운전해 오닐을 레슨에 데려다 줄 만큼 지극정성으로 손자를 길렀다.

“저희 어머니는 미국인에게 입양됐어요. 그건 제가 어려운 사람을 당연히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 엄청난 영향을 줬죠. 특히 할머니는 일요일에 교회에 가는 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전부가 아니라는 걸 늘 몸소 보여주셨어요. 아무리 조그만 게 생겨도 이웃들과 나누는 분이셨죠. 제 첫 나눔에 대한 기억도, 할머니가 푸드뱅크(여유 음식을 기탁 받아 필요한 사람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복지시설)에서 큰 냄비에 수프를 끓이던 모습이에요.”

그의 나눔에 영향을 준 사람들은 조부모뿐만이 아니다.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레슨비를 마련할 수 없었던 오닐을 위해 교회 사람들은 기꺼이 주머니를 열었다. 그가 처음으로 가졌던 성인용 바이올린은 스승에게 선물로 받은 것이다.

물론 그가 만난 모든 사람이 친절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내 삶이 쉬웠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며 유년시절을 회상했다. 하지만 그는 상처에 집중하는 대신 자신이 받은 것에 감사하고, 그것을 나누는 삶을 택했다. 오닐의 어린 시절은 그야말로 거절을 모르는 ‘예스맨’이었다.

“12살 때쯤이었을 거예요. 코인 세탁소에 가던 길이었는데 길에서 어떤 여자 분이 제게 ‘돈을 달라’고 하셔서 ‘네’ 하고 빨래할 돈을 드렸어요. 그때 옆에 있던 친구가 ‘리처드, 너 왜 그래?’ 엄청 뭐라고 하더라고요. ‘저분이 돈을 달라고 해서 드렸어’ 라고 했더니 ‘넌 진짜 이상한 애다’라고 하지 뭐예요(웃음). 근데 전 항상 그랬거든요. 친구들은 ‘남의 부탁을 너무 쉽게 들어주는 게 리처드의 가장 큰 단점’이라고 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조금 후회가 되는 일이기도 해요. ‘단지 돈을 드리는 게 그 여자 분을 정말 돕는 일이었을까’ 생각이 들어서요.”

여러 번의 나눔이 준 교훈일까. 그의 선행에는 깊이가 있다. ‘좋은 일처럼 보여도 우리가 모르는 트릭(trick)이 있다’ ‘선행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가난을 비롯한 모든 문제는 유기적이다’ 등등 인터뷰를 하는 내내 그의 말에서는 나눔에 대한 통찰력을 읽을 수 있었다.

“나눔에도 계속 발전이 필요해요. 구시대적인 방법으로는 고질적인 문제를 극복할 수 없죠. 생존을 위해 생필품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가난의 고리를 끊을 수 없는 것 처럼요. 겉에서는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문제도 너무 많고요. 특히 많은 지원에서 여성은 여전히 소외당하고 있어요. 여러분이 나눔을 실천할 때 그 방법을 함께 고민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사회 시스템을 바꾸고, 인프라를 만들고, 교육을 개선하는 NGO와 함께 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용재 오닐이 전하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앞으로 노숙인 돕고파”

오닐의 선행은 이미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클래식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그가 2012년 24명의 다문화가정 아이들과 함께 만든 ‘안녕, 오케스트라’의 이름을 익히 알 정도다. 오닐은 악기 한번 잡아본 적 없는 아이들을 손수 가르치며 오케스트라로 만들어냈다. 이들의 스토리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는 ‘국제에미상’ 예술 프로그램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프로젝트로 진행됐던 ‘안녕, 오케스트라’는 현재 안산문화재단에서 정식 운영 중이다.

바쁜 스케줄 탓에 예전처럼 멘토 역할을 긴밀하게 해줄 수는 없지만, 오닐은 여전히 콘서트 수익금을 재단에 기부하고, 아이들의 정기 공연에 함께하는 등 ‘안녕, 오케스트라’를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다.

앞서 2009년에는 ‘춘천 마라톤’에 참가해 1m를 달릴 때마다 어려운 이웃에게 1원을 후원하는 도전을 진행한 바 있다. 그의 인생 첫 마라톤 완주였다. 작년에는 케냐의 식수문제를 알리기 위해 ‘가족의 달 마라톤 대회’에도 참가했다. 비올리스트와 마라톤의 만남이 조금 색다르게 들리지만, 그에게 마라톤을 통한 나눔은 특별하다.

“춘천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을 때 정말 뿌듯하고 벅찼어요. 제 인생에서 성취는 대부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함께 이뤄낸 것들인데, 마라톤만큼은 ‘나 혼자서 해냈다’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가족의 달 마라톤은 5월이었는데 정말 더웠던 게 기억나요. 얼굴이 땀범벅이 됐는데, 주변에서 사진을 많이 찍어서 부끄러웠어요(웃음). 막판에는 다리에 쥐가 나서 기록도 좋지 않았고요. 하지만 의미 있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해요. 기부해주시는 돈은 후원자 한 분 한 분이 각자의 삶 속에서 정말 힘들게 번 것이잖아요. 친구와 밥을 먹고 가족에게 선물을 주고,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쓸 기회를 다른 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요청하는데 무작정 달라고 하는 건 뭔가 공정하지 않다(unfair)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도전을 좋아하니까 제가 도전이 될 만한 어떤 행동을 약속하고,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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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용재 오닐이 케냐 주민과 팔꿈치를 마주대며 전통춤을 추고 있다. /옥스팜코리아 제공

그의 나눔 중 가장 독특한 것은 ‘크리스마스 봉사’다. 잦은 해외 공연으로 미국에 있는 어머니와 시간을 보낼 수 없는 대신,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깜짝 봉사에 나서고 있다. 모든 활동은 조용히, 개인적으로 이뤄진다. 지난해에는 ‘절친’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과 ‘라파엘의 집’을 찾았다. 서울 종로구 체부동에 위치한 라파엘의 집은 중증 장애를 가진 20여명의 아이들이 함께 생활하는 보호센터다.

“장애를 가진 어머니가 있다는 건, 전혀 다른 경험을 줘요. 저희 어머니는 아주 아름다운 분이지만, 몇몇 사람은 그녀를 편견으로 대했어요. 저는 별종이 된 것 같았죠. 하지만 그때의 기억은 제게 정말 중요한 가르침을 줬어요.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함부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 말이에요. 저는 늘 그 문제(편견)에 대해 생각해요. 제가 라파엘의 집에서 만난 분은 모두 천사 같은 분이었어요. 장애가 있는 아이를 돌본다는 건 엄청난 시간과 노동력이 드는 일이죠. 너무 슬프게도 어머니와는 함께할 수 없었지만, 라파엘의 집에서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어서 뜻깊었어요.”

2014년 진행했던 ‘번개 봉사 모임’은 ‘사람은 모두 도울 의지를 갖고 있다’는 그의 믿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에피소드다. 크리스마스 이브 하루 동안 두 공연을 소화한 오닐은 숙소로 돌아온 새벽 1시, 자신의 개인 SNS에 한 가지 제안을 올렸다. “즐거운 성탄절입니다. 하지만 오늘 밤, 적어도 100명이 넘는 분들이 종이박스에서 추운 겨울밤을 나야 해요. 저는 성탄절의 축복을 을지로역에 계신 노숙인분들과 함께하려고 해요. 저와 함께하실 분들은 옷가지 등을 가지고 와주실 수 있을까요? 반드시 도움이 될 거예요.” 오닐의 SNS를 본 지인들은 ‘말도 안 되는 짓’이라며 그를 나무랐다. 하지만 친구들의 걱정은 ‘기우’에 그쳤다.

크리스마스 당일 저녁, 을지로역에는 30명이 넘는 사람이 모여 그와 함께 물품 기부를 진행했다. 그중에는 오닐을 모르는 남학생도 포함돼있었다. “제 팬이어서 오신 분들도 있었지만, 순수하게 자신의 크리스마스를 다른 사람과 나누기 위해 와주신 분도 있었어요” 그에게 2014년 크리스마스는 작은 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이디어가 실현됐다는 게 놀랍죠. 전 그날 제 캐리어 속에 있는 옷을 몽땅 비웠어요. 양말 한 짝까지 전부요. 다시 겨울시즌에 한국에 오게 되면 이런 봉사 이벤트를 더 해보려고요. 시멘트 바닥의 한기를 막아줄 수 있는 방습매트를 드리고 싶었는데, 다음번엔 그걸 준비하고 싶어요. 제 꿈이에요.”

크레디아_리처드용재오닐_비올리스트_2016그는 나눔에 대한 몇 가지 계획을 더 갖고 있다. 지금 당장은 하루가 1분 같은 스타 비올리스트로 살고 있지만, 여유가 생기면 하고 싶은 ‘기부 플랜’이 한가득이다.

“지금의 제가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지만, 다음 스텝을 생각 중이에요. UCLA도 최근 관뒀고, 언젠가 일을 많이 하지 않게 되면 다음에는 뭘 할 수 있을까? 그런 것들요. 제가 살고 있는 LA는 대도시이지만, 10명 중 1명은 가난에 시달리고 있어요. 중심가를 벗어나면 빈민가가 형성돼있죠. 그들이 자립해서 살 수 있도록 돕는 게 아마 제 다음 목표가 될 것 같아요.”

한편 오닐은 다음 달 3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2016 디토페스티벌-혁명가들’을 통해 팬들과 만난다. 오닐은 이번 공연에서 그가 소속된 세계적인 앙상블 ‘에네스 콰르텟(Ehnes Quartet)’과 함께 베토벤의 현악4중주 사이클에 도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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