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3일(화)

[Cover story] 방글라데시 유아 교육률

‘가난의 대물림’ 끊을 수 있는 꿈을 심어줍니다
아이들, 폐품 줍고 벽돌 깨서 돈 벌어… 초등교육도 사치… 문맹률 50% 넘어…
슬럼가에 자리한 지역아동개발센터… 사립학교 10%도 안 되는 교육비로…
슬럼가 아이들에게 ‘미래 꿈’ 심어줘…

방글라데시의 길거리를 걸을 때는 바짝 긴장하는 것이 좋다. 사람·릭샤(인력거)·자동차가 어지럽게 뒤섞여 차선도 인도도 없이 내달리는 게 이곳의 일상적인 거리 풍경이기 때문이다.

쌀쌀한 겨울 아침, 거리에서 만난 릭샤꾼 모하미드 조이날쉭(50)도 한 차례 질주를 마친 참이었다. 몸무게가 꽤 되는 손님을 내려준 그는 지친 얼굴로 릭샤에 기대서 있었다. 빛바랜 상의를 세 겹씩 껴입었지만 고된 노동으로 깡마른 몸만은 감출 수 없었다. 치마처럼 생긴 전통복장 룽기 사이로 여자 팔목만큼 가느다란 발목이 보였다. 하루 종일 거리를 달리느라 새카맣게 그을린 그는 퀭한 두 눈만 반짝반짝 빛났다.

방글라데시 도시 빈민들이 사는 쿨나시의 슬럼가에는 월드비전이 돕고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아동개발센터가 있다. 월드비전 방글라데시의 한 직원은 "아동개발센터에서 리더, 수퍼바이저, 교사를 맡고 있는 엄마들은 대학도 나오지 못했고 주부로서 평생을 살아왔지만 지금도 센터를 잘 운영하고 있고 앞으로도 틀림없이 잘 해낼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아동개발센터는 지난 몇 년 동안 슬럼가 아동의 초등학교 진학률을 혁신적으로 높여 왔다. / 사진 최세미 더나은미래 기자
방글라데시 도시 빈민들이 사는 쿨나시의 슬럼가에는 월드비전이 돕고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아동개발센터가 있다. 월드비전 방글라데시의 한 직원은 “아동개발센터에서 리더, 수퍼바이저, 교사를 맡고 있는 엄마들은 대학도 나오지 못했고 주부로서 평생을 살아왔지만 지금도 센터를 잘 운영하고 있고 앞으로도 틀림없이 잘 해낼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아동개발센터는 지난 몇 년 동안 슬럼가 아동의 초등학교 진학률을 혁신적으로 높여 왔다. /사진 최세미 더나은미래 기자

“한 달에 4500타카(약 7만 원) 벌어요. 그 중 2000타카(약 3만 원)가 릭샤 렌트비랑 집세로 나가고요.”

형편이 어떤지 묻자 마디 없는 목소리로 이렇게 답했다. 도시 슬럼가에 사는 그의 가족은 한 달에 겨우 4만원 남짓한 돈으로 연명한다고 했다. 무표정한 그가 딱 한 번 감정을 내비친 건, 기자가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 하고 있느냐”고 물었을 때였다. 초점 없던 그의 눈빛이 가볍게 흔들렸다. “열다섯 살, 열세 살 먹은 아들놈 둘은 학교에 안 다니고, 열두 살 먹은 딸은 6학년이다. 돈이 없어 딸도 올해까지만 학교에 보낼 예정이다.” 내뱉듯 답하고는 무거운 시선을 땅바닥에 툭 떨어뜨렸다. 조이날쉭의 두 아들도 언젠가 그처럼 앙상한 다리로 릭샤를 몰며 거리를 내달릴지 모른다. 교육받지 못한 슬럼가 아이들이 흔히 그렇듯이. ‘가난을 대물림’하는 것이다.

조이날쉭은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에서 육로로 7~8시간 떨어진 도시 쿨나(Khulna)에 산다. 쿨나는 방글라데시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이지만 학교·병원 등 공공시설이 매우 열악하다. 일자리를 구하려고 도시로 몰려든 빈민들로 인해 곳곳에는 슬럼가가 형성되어 있다. 조이날쉭 같은 릭샤꾼들은 바로 그 슬럼가에서 화장실·주방은 물론 전기·수도도 없는 대나무집을 빌려 산다. 이들에게는 자녀의 초등교육도 사치다. 아이들은 일찍부터 거리를 헤매며 폐품을 주워 모으거나 공사장에서 벽돌을 깨며 돈을 번다. 실제로 방글라데시의 아동 노동 비율은 5~9세 1.98%, 10~14세 27.37%, 14~17세 39.75%에 달한다. 문맹률이 50%가 넘는 이 나라에선 부모들부터 교육의 중요성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국민의 교육수준을 높이기 위해 초등교육을 의무화하고 무료로 바꿨지만 초등학교를 최소 1학년이라도 마친 아동이 전체의 60%밖에 안 된다.

교육과 아동노동은 동전의 양면이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전 세계 17세 미만 아동 중 2억1500만명이 학교에 가는 대신 아동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이 중 아프리카·아시아 지역 아동이 90%다. 초등학교에 입학도 못하는 아이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46%, 남아시아는 27%에 달한다. 이 통계대로라면 유엔이 결의한 ‘새천년개발목표(MDGs)’ 중 하나인 ‘보편적 초등교육의 달성’은 먼 훗날의 이야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직 희망은 남아 있었다. 쿨나에서 찾아간 ‘아동개발센터(ECD Center·Early Childhood Development Center)’는 그런 희망을 보여주는 좋은 모델이었다. 국제구호개발 NGO 월드비전이 운영하는 이 지역 아동개발센터는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인 3~5세 유아를 대상으로 한 유치원이었다. 슬럼가 곳곳에 자리한 센터는 일용직 노동자나 릭샤꾼 등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저렴한 비용만 받고 교육을 하고 있었다. 딸을 이곳에 보내고 있다는 릭샤꾼의 아내 라키(24)는 “다른 유치원이나 사립학교에 보낸다면 한 달에 300~500타카가 들 텐데, 이 센터는 20타카면 된다”고 말했다. 센터에서 수업을 듣는 아이에게는 월드비전이 일대일 결연후원을 연결해줘서 고등학교에 졸업할 때까지 매달 얼마간의 학비도 지원받을 수 있다.

직접 방문한 센터는 생각보다 더 비좁았다. 4평 남짓한 비좁은 방에 열다섯 명의 꼬마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표정은 밝았다. 선생님을 따라 체조를 하고 영어와 벵갈어로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수업을 시작한 아이들은 알파벳을 배우고 시를 암송하고 폴짝폴짝 춤을 추면서 2시간 수업을 꽉 채웠다.

최세미기자_사진_아동_방글라데시_2011언뜻 봐서는 보통 유치원과 다를 것 없는 이곳에는 특별한 점이 있다. 바로 지역 주민이 스스로 운영하는 자치조직(CBO·Community Based Organization)에 의해 운영된다는 점이다. 주민들은 직접 센터의 리더·수퍼바이저·교사 역할을 맡아 센터 운영을 총괄하거나(리더), 수업의 질을 정기 모니터링하거나(수퍼바이저), 일정한 선발과정을 거쳐 아이들을 가르친다(교사). 이런 체계적인 시스템을 처음으로 만든 것이 바로 월드비전 방글라데시 선더번 사업장이다. 월드비전은 주민들이 직접 센터를 운영할 수 있도록 교육과 재정 지원을 해왔다. 최종 목표는 2014년까지 지역 주민에게 이 지역 아동개발센터 50곳의 운영권을 100% 넘겨주는 것. 이를 위해 지원금을 점차 줄이는 대신 주민자치조직이 스스로 모금을 할 수 있도록 조언을 해주고 있다. 작년 12월 기준으로 주민들은 센터 운영에 필요한 기금의 10%를 스스로 모금했다. 월드비전 방글라데시 선더번 사업장의 총책임자인 조지 사카르(39)는 주민들이 성공적으로 센터를 이어받을 것을 확신했다.

“아동개발센터는 지금도 지역 주민들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월드비전은 그저 돌볼 뿐이지요. 이게 바로 센터 성공의 ‘마술’입니다. 우리 꿈은 월드비전이 이 지역을 떠나도 지역 주민 스스로 센터를 발전시키는 것이고, 꼭 그렇게 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지역 주민들은 센터를 위해 집도 선뜻 내줬다. 내 집 거실·침실·베란다를 센터로 쓰라고 무료로 빌려준 것도 모자라 학생들을 위한 화장실이나 식수 시설까지 만들어주겠다는 주민들이 줄을 이었다.

센터에선 일주일에 한 번 지역 사회 엄마들을 대상으로 건강·영양섭취 등 자녀양육에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는 ‘엄마 교육’도 실시한다. 아동개발센터의 리더인 프로팁하 비스트리(47)는 “엄마가 교육받지 못하면 아이도 교육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센터의 성과는 ‘초등학교 진학률’로 나타나고 있다. 방글라데시 전체의 초등학교 진학률은 87.9%이지만 아동개발센터를 수료한 슬럼가 아동들의 초등학교 진학률은 거의 100%에 가깝다.

센터의 아이들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띤니(4)는 대뜸 “어른이 되고 싶다”고 답해 모두를 웃게 만들었다. 아빠는 릭샤꾼, 엄마는 가정부라는 가이파(4)는 “과학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수줍게 대답했다. 건설노동자의 아들인 아쉬라풀(6)은 “아픈 사람들에게 약을 주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꿈은 고스란히 엄마의 꿈이 됐다. 엄마들에게 “자녀를 대학까지 마치게 하고 싶은 학부모는 손들라”고 말하자 15명 중 10명이 손을 번쩍 들었다.

아동개발센터가 슬럼가 지역 주민을 위해 한 것은 ‘교육’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센터가 해준 가장 큰일은 ‘내 자식이라도 가난을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꾸게 해준 일일 것이다. 방글라데시 슬럼가는 지금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있다.
※’착한카드 캠페인(good.chosun.com)’에 동참해 착한카드를 만들면 월드비전에서 운영하는 방글라데시 아동개발센터를 도울 수 있습니다. 직접 센터를 돕고 싶으신 분은 월드비전(www.worldvision.or.kr, 02-2078-7000)으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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