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Cover story] 귀화자 10만명 시대

“우린 외국인 아닌 한국인… 이젠 가슴으로 받아들여 주세요”
“다문화라는 말이 되려 꼬리표처럼 느껴져… 한국인 情으로 품어주세요”
투표해봤느냐는 질문에 “당연한 걸 왜 묻는 거지?”
이민 2·3세에 대한 고민 필요…
학교에서 ‘다문화’로 불리면 아이들 소외감·큰상처 받아

한국 사람이 되고 싶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외국인 수가 지난달 24일 기준으로 10만 명을 넘어섰다. 귀화자 10만 명 시대, 귀화 한국인들은 ‘다문화사회’ 한국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어떻게 느낄까. 귀화 한국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사회를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가야금 소리가 잔잔히 울려 퍼지는 인사동 전통찻집에 귀화 한국인 네 사람이 찾았다. “여기 유자차 둘, 매실차 하나, 녹차 하나 주세요.” 유창한 한국말로 주문하는 모습이 내 집처럼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귀화한 지 최소 3년에서 13년이 된, 한국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한국인들’이다.

KBS ‘러브 인 아시아’의 고정패널이자 다문화가정 네트워크 ‘물방울 나눔회’의 사무총장인 필리핀 출신 이쟈스민(34)씨, 세종대 교양학부 부교수이자 ‘독도 문제 전문가’로 알려져 있는 일본 출신 호사카 유지(54)씨, 여자축구단인 고양 대교눈높이 캥거루스의 수석코치 겸 골키퍼 코치인 타지키스탄 출신 신의손(50)씨,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컴퓨터 디스플레이 연구원으로 일하는 러시아 출신 사베리에프 블라디미르(56)씨는 전통차를 홀짝이며 화기애애한 대화를 이어갔다.

'귀화자 10만 명 시대'를 맞아 한자리에 모인 귀화 한국인 (왼쪽부터) 이쟈스민, 사베리에프 블라디미르, 신의손, 호사카 유지씨는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귀화자의 수가 급증한 데다 출신국가도 중국 동포 일색에서 미국, 유럽, 러시아, 아프리카 등으로 놀랄 만큼 다양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신민경 객원기자
‘귀화자 10만 명 시대’를 맞아 한자리에 모인 귀화 한국인 (왼쪽부터) 이쟈스민, 사베리에프 블라디미르, 신의손, 호사카 유지씨는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귀화자의 수가 급증한 데다 출신국가도 중국 동포 일색에서 미국, 유럽, 러시아, 아프리카 등으로 놀랄 만큼 다양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신민경 객원기자

“한국에 왜 귀화했느냐고요? 축구하려고요. 옛날에는 외국인 골키퍼는 경기에 못 나간다는 규정이 있었거든요.”(신의손)

“독도 관련 연구를 하려면 일본보다 한국이 좋았어요. 직접적인 동기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이 너무 멋져 보였던 거고요.”(호사카 유지)

“한국은 컴퓨터 디스플레이를 연구하기에 최고의 나라니까요.”(사베리에프 블라디미르)

한국에 왜 귀화했느냐고 묻자 전문직을 가진 세 사람이 앞다퉈 대답했다.

“다들 일이 좋아서 귀화하셨네요. 전 남편이 좋아서 했어요.”

이쟈스민 씨가 빙그레 웃으며 농담을 던지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이씨는 지난 1995년 필리핀에서 만난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으로 와서 아들과 딸을 낳았다.

실제로 귀화 한국인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이씨 같은 결혼이주여성들이다. 2009년 귀화자 2만5044명 가운데 약 68%인 1만7141명이 결혼 귀화자로, 이들 중 대부분이 여성이다. 결혼이주여성의 뒤를 잇는 것이 중국 동포들(조선족). 그러나 최근에는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전문 인력들의 귀화도 늘고 있다. 정부도 외국 우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나섰다. 올해부터 바뀐 국적법에 따라 과학·경제·체육·문화 등 각 분야에서 우수한 능력을 보이는 외국 인재에게는 국내거주 기간에 관계없이 귀화가 허용(특별귀화)되고 복수국적(이중국적)도 허용된다.

귀화 한국인으로서 ‘내가 진짜 한국인 다 됐구나’ 싶은 때는 언제인지 물었다. 이씨는 “필리핀에 사는 어머니와 통화를 할 때”라고 답했다. 그는 “전화를 할 때 필리핀 말을 하다가 한국말로 바뀐 줄도 모르는 때가 있어요. 어느 순간부터 엄마가 조용해져요”하고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주장하는 독도종합연구소의 소장인 유지 교수는 “내가 일본 출신인데도 일본이 독도 문제를 언급할 때마다 무조건 화가 난다. 그럴 때 아, 내가 한국 사람이구나 싶다”라고 말해 좌중에 큰 웃음을 선사했다.

이들은 한국인으로서 투표권을 행사해본 적이 있을까. 기자의 질문에 다들 ‘뭐 그런 당연한 걸 묻지?’하는 표정을 지었다. 가장 최근에 귀화한 블라디미르 연구원조차 두 번의 투표 경험이 있었다. 그에게 한국인도 요즘 잘 안 하는 투표를 한 이유가 뭐냐고 묻자 “(투표를) 하는 데는 이유가 필요 없다. 안 하는 데는 이유가 필요하겠지만”이라는 의미심장한 답변이 돌아왔다. 유지 교수는 해외출장을 갔던 때를 제외하고는 꼬박꼬박 투표를 해왔다.

“한국에서 하는 선거는 반드시 하려고 해요. 한국 사람이 된 하나의 징표로 생각하거든요. 귀화 한국인에게 투표는 의무가 아니라 특권이잖아요. 특권은 누려야죠.”(유지 교수)

그러나 귀화 한국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늘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귀화 한국인을 똑같은 한국인으로 봐주지 않아 서운할 때가 있다.

“입국 심사장은 ‘한국 여권 소지자’ ‘외국 여권 소지자’ 이렇게 두 줄로 나뉘잖아요. 물론 저는 당당하게 한국 여권 소지자 줄에 서죠. 그런데 직원이 꼭 절 불러서는 외국 여권 소지자 줄로 가라고 하는 거예요. 여권을 보여주면 그때서야 ‘아~’ 하죠.”

신 코치의 말에 다들 “나도, 나도”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외모도, 이름도 외국인이 분명한데 대한민국 여권을 들고 있는 그들이 낯설어 보이기도 했겠지만, 한국 사회가 아직 다민족국가로서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귀화 한국인 중 가장 많은 결혼이주여성은 이들을 무시하는 주변의 시선이 힘겹다. 필리핀의 남부럽지 않은 가정에서 자라 명문 의대를 다닌 이씨도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에 오는 순간부터 ‘결혼이주여성’을 대하는 차별적인 시선과 마주했다.

“한국 사람들은 제가 필리핀에서 온 결혼이주여성이라고 하면 무조건 ‘못살았을 거다, 못 배웠을 거다’라는 편견을 갖고 대하시더라고요.”

이씨는 씁쓸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이씨의 지인 가운데는 베이징대와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4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중국 출신의 결혼이주여성이 있다. 그 역시 한국인을 만나 결혼하고 나서는 자신을 보는 주변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걸 실감하게 됐다. 이씨는 “그분은 그걸 ‘신분 추락’이라고까지 표현했다”며 “결혼이주여성을 보는 한국 사람들의 시선이 얼마나 부정적이면 그렇게까지 느꼈겠느냐”고 안타까워했다.

몇 년 전부터 정부나 언론매체에서 유행처럼 쓰기 시작한 ‘다문화’란 말도 귀화 한국인들에게는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다문화’라는 울타리로 굳이 귀화 한국인과 한국인을 구분 짓는 것 같아서다. 가장 큰 문제는 얼떨결에 ‘다문화’라는 꼬리표를 단 귀화 한국인 자녀들이다. 자신을 한국 사람으로 알고 자란 아이들은 학교에 들어가 처음 ‘다문화’로 불리게 되면 큰 상처를 받고 소외감을 느낀다고 했다.

“우리 같은 이민 1세들은 오히려 큰 문제가 없어요. 우리는 스스로 귀화를 한 거니까요. 그렇지만 이민 2, 3세들은 달라요. 부모 따라온 것뿐인데 아무 죄도 없이 차별의 대상이 되니 얼마나 고통스럽겠어요. 한국 사회는 이민 2, 3세에 대한 고민이 좀 더 필요해요.”(유지 교수)

이들은 “다문화라는 말 자체에 단일민족국가로서의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일종의 위기의식과 문제의식이 들어가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귀화 한국인으로서 이들이 한국 사회에 바라는 점은 무엇일까. 이쟈스민씨는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우리를) 머리로 이해하지 말고 가슴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말했다.

“예전에 제가 알고 지내는 분이 ‘외국인 며느리를 맞아도 좋을 것 같아. 착하고 애들도 잘 돌보고’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그런데 막상 소개시켜 드리겠다고 하니까 바로, ‘우리 아들은 한국 여자랑 결혼할 거야’라고 말을 바꾸시는 거예요. 머리로는 받아들이는데 여기(가슴을 가리키며)로는 못 받아들이는 거죠.”

이씨는 “한국 사람들이 단일민족주의에서 벗어나 조금만 더 열린 마음을 가지면 외국인들로부터 얼마든지 좋은 것을 가져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지 교수는 ‘다문화사회’로서의 한국의 미래를 밝게 내다봤다. ‘한국인의 정’ 때문이다. 그는 “한번 정이 들면 가족처럼 챙겨주는 ‘한국인의 정’이 귀화 한국인 10만 명과 체류 외국인 125만 명까지 따뜻하게 끌어안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차가운 밤거리로 나섰을 때, 사람들의 흘긋거리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말 잘하는 외국인들이 신기한지 몇 번이고 돌아보는 사람도 있었다. 네 명의 귀화 한국인은 그런 시선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힘차게 큰길 한가운데로 걸어나갔다. 그들은 그렇게 낯선 시선들과 맞서며 한국 사회에 조금씩 녹아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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