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환경보호·反부패도 투자 핵심요소로… 오늘의 선택이 미래 바꾼다

마틴 스켄케 UN PRI 의장… 글로벌 사회책임투자 트렌드 Q&A

“투자자들의 선택이 미래를 바꿉니다.”

마틴 스켄케(Martin Skancke·사진) UN PRI 의장이 사회책임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UN PRI(책임투자원칙·Principles of Responsible Investment)는 ‘환경·사회·지배구조(이하 ESG) 이슈를 투자에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투자 대상 기업에 ESG 정보를 요구한다’ 등 6가지 책임투자원칙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협력하는 투자자들의 글로벌 네트워크다. 현재 59조달러 이상 자산을 운용하는 전 세계 1440개 연기금·대형보험사·자산운용사들이 동참하고 있다. 500조원을 운용하는 한국의 국민연금(NPS) 역시 2009년 PRI에 서명했다. 지난해엔 1년 만에 약 1조2600억원에 달하는 최대 규모 기부금을 모금한 하버드대가 미국 대학 최초로 UN PRI에 가입해 지속 가능한 투자를 약속하기도 했다.

마틴 스켄케 의장은 노르웨이 재무부에서 8000억달러(약 972조5600억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국부펀드 GPFG(노르웨이 정부 연기금)를 운용하는 총책임자로 일한 사회책임투자 분야 전문가다. 2010년부터 2년간 세계경제포럼 산하기구인 ‘공공과 기관투자자 어젠다회의(Public&Institutional Investors Industry Agenda Council)’ 의장을 역임했다. 지난달 22일, 유엔글로벌콤팩트한국협회와 PRI 본부가 공동으로 개최한 ‘사회책임투자(SRI) 세미나’ 기조 강연을 위해 방한한 그를 만나, 글로벌 책임투자 트렌드에 대해 들었다.

편집자

마틴 스켄케 UN PRI 의장
마틴 스켄케 UN PRI 의장

-최근 한국에도 국민연금이 투자할 때 ESG 등의 요소를 고려할 수 있는 법률안이 개정됐고, 지난 12월 한국거래소가 ESG 평가 점수를 가중해 산출한 ‘신(新)사회책임지수 3종’을 개발하는 등 사회책임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회책임투자가 중요해진 이유는 무엇인가.

“노르웨이의 직업연금(an occupational pension scheme)을 예로 들어보자. 대개 20대에 연금에 가입하는데, 노르웨이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긴 점을 감안하면 대부분 60~70년간 연금 가입자가 된다. 이 경우 연금을 운용하는 투자자에겐 어떤 책임이 주어질까? 60~70년 후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고민해야 하지 않겠나. 눈앞의 수익만 고려하거나, 기업의 ESG 이슈를 살펴보지 않는 건 직무 유기다. 2006년 UN PRI가 출범하게 된 계기도 비슷하다. 당시 기업의 비즈니스 영역에서 발생하는 환경·사회·지배구조 이슈가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입증된 상황에서, 전 세계 금융사들은 ‘ESG를 고려하지 않으면 무책임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에 ESG 이슈를 적극 반영한 투자 원칙과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금융이 사회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유럽과 미국의 사회책임투자 규모가 시가총액의 20%를 상회하는 반면, 한국은 시가총액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약 7.6조원)이다. 규모는 물론 노하우 면에서도 차이가 날 것 같다. 사회책임투자를 잘하는 해외 연기금 또는 기관투자자들의 사례가 궁금하다.

“네덜란드 연기금 ABP는 인권·기후변화 등 다양한 분야의 책임투자 전문가들로 팀을 구성해, 이들의 의견이 실제 투자 결정에 직접 영향을 미치도록 하고 있다. 뉴질랜드 수퍼펀드(Super funds)는 콩고 광산에서 아동 노동으로 채취한 광물을 사용하는 16개 다국적 전자회사를 상대로 공급망(Supply Chain) 정책 변경을 요구하는 등 기업의 책임 경영에 적극 개입하고, 담배 산업군·핵무기 관련 기업·도쿄 전력 등 투자에서 배제하는 기업 리스트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있다. 노르웨이 정부연기금은 10년 전부터 기후변화 관련 펀드를 만들고, 기후변화 이슈에 대한 투자 리스크를 지속적으로 이해관계자들에게 알려왔다. 또한 노동자들의 인권을 침해해 논란이 된 ‘팜 오일(Palm Oil·야자수에서 추출하는 기름)’ 관련 주식을 매각했다.”

-최근 투자자들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글로벌 트렌드는 무엇인가.

“지배구조(Governance)와 기후변화, 두 가지다. 최근 UN PRI 조사 결과, 투자자들은 지배구조 이슈가 기업 가치와 수익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입을 모았다.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기관투자자가 기업의 의사 결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준칙)가 전 세계적으로 제정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UN PRI는 매년 회원사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해 올해 집중할 ESG 이슈를 선정하고 있는데, 대다수 기업이 기후변화를 꼽았다. 화석연료에서 재생 가능한 저탄소 에너지로 비즈니스를 변경하는 기업들에 투자 기관들의 장기적인 투자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투자자들이 집중하는 분야는 ‘물’이다. 앞으로 물 자원을 활용하는 각 기업의 방식에 따라 투자 시장이 재편될 것이다.”

-한국은 책임 투자가 오히려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오해도 있다. 사회책임투자는 실제 수익률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지난 12월 네덜란드의 한 자산관리사와 독일 함부르크 대학이 ESG를 고려한 투자가 수익을 향상시킨다는 공동 보고서를 발간했다. ESG 이슈와 수익률의 상관관계가 무려 62.6%에 달했다. 또한 최근 헤르메스자산운용이 기관투자자 1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지배구조 이슈가 수익률에 영향을 미친다는 답변이 90%에 이르렀다. 책임투자가 수익률을 높인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입증돼왔다. 2년 전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UN PRI에 가입한 이유를 물은 적이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금융상품에 가입한 소비자들이 ‘당신 회사의 투자상품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느냐’고 묻기 시작했다고 답했다. 또한 취업 준비생들이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책임투자 현황을 관심 있게 들여다보는 것을 발견하고, PRI 원칙을 지키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기업의 책임경영에 대한 투자자와 소비자의 모니터링이 강화되고 있다.”

-국민연금은 UN PRI의 유일한 이행 사항인 연례보고서 발행과 평가 과정 참여에 불참하고 있고, 한국의 투자자들은 단기 수익률에 따라 투자하는 성향이 높다. 이제 막 책임투자에 발을 디딘 한국에 대한 조언을 부탁드린다.

“우선 기업별 ESG 정보가 구체적으로 공개돼야 한다. 기업들이 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어떻게 이행하고 있는지 비교 분석할 데이터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는 ESG 정보공개 법안과 스튜어드십코드를 제정하고, 투자자들과 자금 운용 가이드라인을 공유해야 한다. 한국거래소 역시 ESG 관련 정보가 원활하게 공시될 수 있도록 중간 역할을 해야 한다. 자산 규모가 847억달러에 달하는 한국투자공사(KIC)와 같은 국부펀드가 적극적으로 ESG를 고려해 투자할 때, 금융시장의 다른 투자자들에까지 책임투자가 빠르게 전파될 수 있다. 또한 소비자들이 지속적으로 기업을 향해 사회적책임 이행 여부를 묻고 관심을 가질 때, 지속 가능한 시장 구조가 확산될 수 있다.”

*ESG: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약칭. 전 세계적으로 투자자 및 소비자들이 기업의 친환경적인 경영, 사회적책임, 투명한 지배구조 등 3가지 요인을 중시하면서 ESG 요소가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의 척도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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