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노하우·경험 共有로 오늘도 싱글맘 웃는다

‘해피맘’ 사업의 허브 동방사회복지회

아이 키우는 미혼모 증가하고 있지만
교육비 등 경제 부담 해소 어려워
협력 기반으로 만든 ‘자립 사업장’
서로 벤치마킹해 독자 브랜드 구축

“라떼 두 잔, 아메리카노 두 잔 나왔습니다.”

낭랑한 목소리가 카페를 울렸다. 점심시간을 갓 넘긴 오후, 12평 규모의 작은 카페가 금세 사람들로 꽉 찼다. 검은색 옷에 금빛 배지를 단 ‘바리스타’ 세 명의 손길이 덩달아 바빠졌다. 요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는 이곳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경기지역본부 1층에 마련된 ‘카페 이스턴 LH점’이다. “여기 생긴 이후 다른 카페 안 간다”는 직원이 생길 정도로 LH 직원들을 ‘꽉’ 사로잡은 주인공은 바로 6명의 미혼양육모들. 하루 판매되는 커피는 400잔 이상, 평균 80만원의 매출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 엄마들이 만든 수제 쿠키와 머핀도 금방 동난다. “맛있다고 자주 찾아주시니까 너무 기쁘죠. 더 맛있는 빵을 만들기 위해 연구 중입니다.” 정수영(가명·25·파티시에)씨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카페 이스턴 LH점은 미혼양육모 지원 사업인 ‘엄마가 행복한 해피맘(HAPPY MOM)’의 자립사업장으로 올해 10월 말 운영을 시작해 지난 15일 정식 오픈식을 가졌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늘어나는 미혼양육모, 가장 큰 과제는 ‘자립’

혼자서라도 아이를 키우려는 미혼모들이 증가하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미혼양육모의 비율은 1984년 5.8%에서 2005년에는 31.7%, 2009년에는 66.4%로 급증했다. 사회적 편견에 맞서는 엄마들이 급격하게 늘고 있지만 여전히 난관은 존재한다. 엄마들이 호소한 가장 큰 고민은 바로 경제적 어려움. 63.1%의 미혼양육모가 ‘양육비·교육비 등의 비용 부담’을 꼽았다. 실제 미혼양육모들의 경제활동 참여 비율은 출산 전 75.9%에 비해 출산 후 49.6%로 크게 감소했다.

“‘증가하는 미혼양육모들의 가장 큰 고민인 자립을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고민에서 해피맘 사업이 시작됐습니다.”(김태경 동방사회복지회 사업운영부장)

해피맘 사업은 올해 1월부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동방사회복지회를 중심으로 전국 15개 기관이 ‘미혼양육모의 자립’이라는 공통의 목표로 진행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지금까지 미혼양육모 지원 사업이 직업 교육에 그치거나 준비 과정 없이 창업 및 취업을 지원해왔던 것과 달리, 교육 이후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자립사업장’을 만든 것이 차별점이다. 현재 카페 이스턴 LH점을 포함해 인천 차량 카페, 대전 네일아트숍, 창원 복합공방 등 총 5개의 사업장이 문을 열었다.

해피맘 사업의 발판이 된 것은 동방사회복지회의 ‘나이스 싱글 마더(Nice Single Mother)’ 사업이다. 동방사회복지회는 2011년부터 미혼양육모 자조모임을 통해 직업 훈련, 자격증 취득, 자립사업장인 카페 이스턴(Cafe Eastern)과 네일 이스턴(Nail Eastern)을 운영해 왔다. 지금까지 프로그램에 참여한 미혼양육모는 700여 명. 총 3곳에 사업장을 연 카페 이스턴은 2011년 2690만원이던 매출이 올해는 12월 중순까지 1억5000만원을 돌파했다. 이처럼 성공적인 사례를 바탕으로 15개 기관이 ‘한뜻’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김태경 부장은 “동방사회복지회는 전국 미혼양육모 지원 기관들이 서로의 노하우와 경험을 공유할 수 있도록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며 “협력 관계를 기반으로 서로의 모델을 벤치마킹하면서 독자 브랜드를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해피맘 사업장 중 하나인 인천 스텔라의 집 ‘토리양 차량 카페’는 기존에 스텔라의 집이 가지고 있던 카페 브랜드 ‘토리양’에 동방사회복지회의 차량 카페 모델을 결합한 것이다.

1해피맘 사업 협력 기관인 경북 샤론의 집에서 손글씨(POP), 캘리그라피 자격 과정을 마친 엄마들의 작품. 엄마들은 “자신감이 생겼다”고 공통의 목소리를 냈다. 2직업 교육과 사업장을 통한 자립 지원 외에 양육 코칭, 상담 등의 통합적 지원이 이루어진다. 사진은 정서 교류를 위해 모래놀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엄마와 아이들의 모습. /동방사회복지회 제공
1해피맘 사업 협력 기관인 경북 샤론의 집에서 손글씨(POP), 캘리그라피 자격 과정을 마친 엄마들의 작품. 엄마들은 “자신감이 생겼다”고 공통의 목소리를 냈다. 2직업 교육과 사업장을 통한 자립 지원 외에 양육 코칭, 상담 등의 통합적 지원이 이루어진다. 사진은 정서 교류를 위해 모래놀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엄마와 아이들의 모습. /동방사회복지회 제공

◇자존감 높아진 엄마들, 눈에 띄게 달라져

정은경(가명·29)씨의 하루는 아침 8시, 잠에 취한 네 살배기 아이를 깨우고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이를 보내고 나서는 바쁘게 출근 준비를 한다. 정신이 ‘쏙’ 빠지는 아침이지만 은경씨는 “하루하루가 행복하다”고 했다. 은경씨의 직업은 ‘바리스타’. 집에서 지하철로 30분 거리에 있는 카페 이스턴 LH점에서 오전 11시부터 저녁 6시 30분까지 커피를 만든다. 당차고 밝은 은경씨지만 힘든 시기도 있었다. “단 한 순간도 손에서 일을 놓아본 적이 없지만 늘 불안감이 있었죠. 바리스타로 일하며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도 높아지고 심리적인 안정감도 생겼어요.” 카페 일을 시작하면서 구체적인 꿈도 생겼다. “제 아들이 네 살인데,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제 이름으로 커피숍을 오픈하는 게 꿈이에요. 이룰 수 있겠죠?(웃음)”

해피맘 사업에 참여하는 엄마들은 총 178명.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삶에 대한 엄마들의 태도다. 대인기피증을 앓던 조민희(가명·26)씨도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과 수익에 대한 심리적 안정이 생기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대하는 게 편해졌다”고 했다. 자립사업장을 떠나 직접 창업이나 취업을 선택할 수도 있다. 필라테스 강사, 떡공예 전문가, 손글씨(POP) 전문가 등 자신의 흥미와 적성에 맞춰 홀로서기에 성공한 엄마들이 늘고 있다. 세무사, 범죄심리학자를 목표로 대학에 진학한 엄마들도 있다.

자립 기회뿐 아니라 다방면의 통합 지원도 이루어진다. 스트레스 감소를 위한 상담과 양육 코칭, 자녀와의 나들이 프로그램이 제공되고, 자조모임과 봉사단도 꾸려졌다. 해피맘 수행 기관인 경주애가원의 최명숙(가명·41)씨는 “아이와 함께하는 체험 활동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과 책임감을 느꼈고, 자투리 시간을 절약해 만든 꽃 볼펜의 판매 수익금을 노인 시설에 전달하면서 스스로 뿌듯함을 갖게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방은숙 동방사회복지회 사무총장은 “엄마들의 진정한 자립을 위해서는 사업장 구축과 동시에 자존감 향상과 미혼양육모에 대한 인식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며 “내년에는 자립사업장과 수행기관을 각각 8곳, 20곳으로 확대하고 미혼양육모 인식 개선을 위한 전국 단위의 대규모 캠페인을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21일에는 해피맘 1년의 성과와 정책 방향을 논의하는 세미나 ‘해피 투모로, 해피 싱글맘(HAPPY TOMORROW, HAPPY SINGLE MOM)’이 열렸다. 주제 제언을 한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성인권연구센터장은 “이제 이슈는 미혼양육모들의 자녀 양육과 홀로서기를 어떻게 돕는가에 있다”며 “미혼모들 개별 욕구에 맞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진숙 동방사회복지회 회장은 “홀로 아이를 양육하겠다는 쉽지 않은 선택을 한 미혼 엄마들에게 우리 사회의 응원과 지지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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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1호 202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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